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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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이 남장 화가였다는 설로 세간의 이목을 끈 소설과 드라마, 영화가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들이 새롭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둘러싼 끊이지 않는 잡음이 불과 얼마 전에도 이슈가 되어 간송미술관에 수장된 훈민정음마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 문화재를 둘러싼 소요들의 중심에 간송미술관이 화두가 되는 경우는 너무도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아닐까 싶다. 간송 전형필이라는 희대의 대수장가가 평생을 바쳐 일군 업을 뜨겁게 논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세간에 머물면서도, 그의 일대기를 뒤늦게나마 접할 수 있는 평전과의 만남은 한참 늦은 격이 있다.
 

일제 강점기, 미곡상을 가업으로 이어가는 손이 귀한 무관의 집안에서 태어난 전형필이 어떻게 대수장가로 거듭나고,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개인박물관 보화각을 일구어내는지 소상하게 밝혀주는 대중적인 저작이 이토록 늦되게 완성된 것이 새삼스럽지만은 않다. 그가 모으고, 되찾아온 민족의 보고들이 가진 드라마틱한 사연들과 간송의 굴곡진 인생사가 얽히고설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풀어내야할지 어찌 망설여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다만 평전이라면 으레 기대하는 객관적인 시야를 원천적으로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지적하고 싶다. 저자 이충렬이 그려내는 간송은 너무도 찬연해서 시종 일방적인 시선을 고수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하는 저자의 항변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조선 40대 거부 가운데 하나였던 독보적인 재산가였기에 전형필은 시대의식이 상실된 한량이 되어 유유자적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교육 사업에 남다른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집안의 유지, 월탄 박종화를 비롯한 민족의식이 투철한 친인척들과의 교류, 평생의 스승인 위창 오세창의 가르침에 힘입어 자신의 시대적 소명을 젊은 나이에 깨달은 선각자가 된다. 친일파가 되어 일신의 영달을 꾀하지 않으면서도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구국에 힘쓰다 외려 우리 문화를 수호하는 대수장가의 업을 이루지 못할까 다른 노선의 애국애족의 길을 선택했기에 간송의 처세는 복잡 미묘할 수밖에 없었을 테다.


막대한 자산을 소진해가며 사들였던 서화, 고서, 도자기, 불상 등에 이르는 방대한 우리 문화재를 뚜렷한 소신으로 한 데 모으고 지켜갔던 그의 노고는 일반의 기준으로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천학매병을 둘러싼 흥정으로 오간 게 기와집 스무 채의 가격이라느니, 요즘 시가로 60억 정도는 나간다는 규모도 규모거니와, 기품 있는 수장가가 감수해야하는 거래의 규범 같은 것은 어찌해도 너무나 먼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시세에 웃나가는 고액일지라도 꼭 조선 땅에 남겨야하는 명분을 찾았다면 망설임 없이 수장하려는 승부사 이전의 문화수호가의 면모에는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보화각의 수장품들이 흩어지기도 하고, 고서점 한림서림을 꾸려가며 완성한 고서적의 총체인 간송문고가 소실되기도 하는 등의 고난, 교육 사업에 뜻을 두고 인수했던 보성중고등학교의 재정이 파탄 나서 거액의 빚을 갚기 위해 고단했던 말년까지 격동하는 시대는 거인의 안식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았다. 수장가들의 대다수는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말년에 이르러 수장품을 처분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나 간송을 생을 걸고 지켜온 수장품들을 고스란히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명품을 얻기 위한 희대의 승부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이 바로 비애에 찬 말년의 신념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문화를 지키는 것이 민족혼을 수호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간송이 희생했던 금전을 비롯한 수많은 가치들은 국보, 보물급의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간송미술관의 실체로 남아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방대한 컬렉션 뿐 아니라 지금도 유지에 따라 일년에 두 차례 무료로 개방되는 운영방침은 거인의 그늘이 여전히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세금감면의 일환으로, 자산투자의 방편으로 운영하는 재벌가의 갤러리들이 산재해 있는 작금의 실태를 되돌아보지 않더라도, 간송이 이룩한 유일무이한 문화수호사업은 비교할만한 사례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겸재, 단원, 혜원, 추사, 훈민정음 해례본, 삼국시대의 금동불상, 고려시대의 석탑, 청자와 백자 등등.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의 시대적 계보를 바로 세우고, 우수함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소신 있는 수장의 결과가 가히 독보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간송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서서 우리 역사를 복원하고 공백 없이 만나는 만복을 누리고 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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