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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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페디먼의『서재 결혼시키기』에 등장하는 현지독서의 다양한 예에 공감하는 독자라면, 특정한 책이, 작가가,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어느 장소에 대한 애착으로 귀결되는 여행의 개념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물론 벅찬 감흥을 끌어안고『냉정과 열정사이』의 준세이와 아오이의 약속과 해후의 장소였던 피렌체의 두오모에 오르고 나서 볼 수 있는 것은, 피렌체 시가의 휘황한 풍광 대신 관광객들이 남긴,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한국어를 비롯한 각국의 언어로 된 유치한 낙서일 수도 있겠지만. 한 권의 책이 불러일으키는 여행의 좋은 예와 나쁜 예를 몸소 경험하려고 길을 나서는 이들은, 그 자체로 두어 완벽한 것의 실체, 환상을 제거하고 남게 되는 잔재를 마주하는 무모하고 열정적인 길 위의 돈 키호테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여행 또한 그렇다. "나는 여전히 어딘가를 여행하기 전에 그곳을 배경으로 한 책이나 영화로 예행 연습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것이 사랑에 빠지기 위한 구실이다. 사랑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려는 덧없는 몸부림이 아니던가. 그 덧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다. 흐라발이나 카프카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프라하를 좋아하지 못했을 것이다."(p.50) 카프카가 종일 글을 썼던 프라하 성 아래의 황금소로 거리의 하숙집을 길을 잘 못 들어 보지도 못하고 왔을지라도, 돌발적이긴 하지만 희박하지 않게 겪게 되는 여행을 여행답게 만드는 진땀나는 일임에 틀림없다.

체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의 명소들을 거치는 윤미나와 여행메이트 비노 양의 여행담은 동유럽을 소개하는 여타의 여행서와 사뭇 다르다. 길 위에서 성찰하고, 역사의 상처 앞에 숙연해지고, 이방인에게도 너그러운 잊지 못할 인연들과의 아쉬운 이별 등등이 빼곡하게 들어차있는 여행서의 매뉴얼에서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돌려 말하지 않으면 불평과 뒤끝으로 가득하다. 무리지어 다니며 원치 않는 오지랖을 발산하는 미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단호한 품평, 한밤중에 노크도 없이 속옷 차림의 투숙객에게 호통을 치는 주인의 형에 대한 원한, 잘못된 길안내를 하고서도 태연한 현지인에 대한 타박 등등. 길을 나선다고해서 모두가 구도자인 것은 아닌데도, 당연하게 감내하고 낮은 곳으로 임해야만 할 것 같은 인식은 어디서부터 만연한 것인지, 온갖 불합리에 주저 없이 눈을 흘길 수 있는 당당함이 외려 낯설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여행서라면 의례 그렇듯 빠지지 않는 것, 길 위의 사색만큼은 여느 책보다 풍성하고 할 수 있다. '번역하는 여자'는 '책 읽어주는 여자'이자 '영화로 세상 읽는 여자'이다. 이 여행자는 프라하와 두브로브니크, 블레드에 이방인의 인상 위에 촌철살인의 비평을 덧입혀 매너리즘 따위는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한다. 흐라발과 카프카의 나라, 체코에 이어, 슬라보예 지젝에 대한 탐독은 그를 슬로베니아로 안내하고, 우리를 지젝에게로 인도한다. 기차 안에서 마주친 현지 대학의 법학도라는 여학생이 정작 지젝을 모른다며(자국의 대통령 선거 후보이기도 했던 세계적인 사상가인데도!) 섭섭해 하는 모습은 동류의식의 확인이 불발되자 새어나온 '지젝 읽는 여자'의 귀여운 한숨 같기도 하다.

사소한 불의에는 목청을 높이고, 거대한 불의에는 저주를 퍼부을 줄 아는 이 여자의 여행법이 심상치 않게 다가오는 것은 인생을 사는데 본의 아니게 겹겹이 위장한 채 살아가야하는 강박증을 지적받은 듯한 기분 때문일지도. "여행을 할 때는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솔직해진다. 엄밀한 의미에서 여행은 삶의 일부일 테지만, 분명 그 두 가지는 확연히 다르다. 여행 중에는 처지 곤란한 자아를 그런 대로 참아낼 수 있고, 때로는 즐기기까지 한다."(p.140) 사방팔방의 압박에 함몰되면서도 나다운 나를 연기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시작은 힘겨웠을지는 몰라도 여행을 마치고, 또 여행을 떠나기 위해 사는 것은 길에서 꺼내놓는 제 2의 인격을 발견하고, 비로소 인생과 화해하는 법을 체득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서사는 불만의 향연이다. 묘사는 솔직함이 지나치고, 비유는 일상적이지 않다. 공감대를 나누고자 했다면 썩 성공적이지 못했을 거라고 슬그머니 예상하지만,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하듯 나만의 여행법을 하나쯤 가져야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라면 뭔가 고개를 끄덕거리고 싶다. "공부 잘하는 법, 연애 잘하는 법은 있어도 여행 잘하는 법은 정의상 성립되지 않는다. 여행에서는 치사한 합리화도 허용된다. 그래서 가장 초라한 여행조차 눈부시게 찬란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p86) 두브로브니크의 정갈한 빨간 지붕 시가지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찬사를 얹는 대신 '죽음의 666' 계단에서의 모험담이 훨씬 인간적, 아니 '윤미나'적이다. 그래서 이 여행서는 보편 대신 개성의 영역에 자리잡는다.
 

E. M 포스터의 주인공들은 '베데커 여행안내서'를 지참하고 이탈리아나 인도, 그리스를 누빈다. 그러나 당시 유럽의 공식가이드북이었던 베데커 여행안내서를 팽개치고 길을 잃은 이들만이 위선적인 중산층의 질서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성당에서 멀리 떨어진 골목에서, 여행서에서 지정한 동굴이 아닌 초행길의 사원을 맨발로 밟는 그 순간. 『전망 좋은 방』이 특별한 이유는 피렌체의 풍광을 전망 좋은 방에서 내려다 보는 헬레나 본햄 카터의 고혹적인 옆 모습이 인상적인 포스터 때문이 아니라, 베데커 여행안내서를 불신한 루시 때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번역하는 여자가 여행을 떠나게 했던 책과 영화를 길 위에서 읽어주는 이 독서여행기는 판형이 참 재미있다. 길쭉하고 좁다라한 것이 여권이며 비행기티켓을 꽂아두는 여행안내서와 닮았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은 수건 하나면 충분하지만, 우리는 이 책과는 별도로 자신만의 여행안내서와 궁국적으로는 여행안내서를 버릴 수 있는 길 떠난 이의 자기변혁이 필수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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