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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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 앞에서 김훈의 신작을 읽고 있노라 말머리를 꺼냈더니, 묵묵한 독서가이신 아버지께서 한 말씀하신다.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거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은 당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장철민과 맹인안마사 김복희는 대체 무슨 사이였던 거냐? 빗살무늬 토기랑 소방관은 또 무슨 상관이 있고?" 참 불친절한 데뷔작이라는 것이 아버지와 나의 공론인데, 언젠가 유력일간지에 실린 평론가의 서평에서도 비슷한 대목을 발견하고 조용히 웃어버렸던 적이 있다. 그리고 『공무도하』에는 어느 저작보다 데뷔작의 추억이 짙게 묻어나고 있음을 발견한다. 뭔가 말로써 말해버리면 점점 다른 형상의 것이 되어가는 것 같아 머쓱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던 밥상머리에서 오간 질문의 답이 과연 거기 존재하긴 할까, 의심하며 김훈식 문맥을 힘겹게 등정한다. 

 대대로 뿌리박고 살았던 이들이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으나, 갯벌은 주민들이 '공유'하는 땅이 아닌 '국가의 공공연한 땅'이기에 간척사업의 진행과정과 전망에는 그네들을 위한 자리가 없다. 미군이 10여년을 점유하며 포탄과 탄두를 가득 채워두고 떠난 바다를 돌려받는가 싶더니 방조제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자본과 투쟁해야 하는 '해망'의 이야기는 그리 낯설지 않은 짠 내음으로 가득하다. 해망에서 벌어지는 굵직굵직하고 사소한 비일상과 일상의 아귀다툼은 토박이들과 흘러들어온 이들의 밥벌이 이상의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느새 사그러 들고 마는 이슈들의 총제이다. 해망의 이슈들로 밥을 벌어먹는 신문기자 장정수와 홍수로 쓸려가 버린 창야 출신의 출판사 직원 노목희 사이에는 공유되지 않는 추억의 영역에서 동일하게 등장하는 인물군상들이 엮여져있다.

장정수가 쫓고, 적어내는 사건사고 기사들은 데스크의 "만날 똑같으니 언놈이 이걸 신문이라고 읽겠나. 터지고 무너지고 파묻히고, 뒈지고……"(p16)라는 말처럼 밥벌이에 도움이 안 되는 진부함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들의 그 비루하고 난폭한 말투는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근거 없는 적개심이거나, 위안으로 연륜을 과장하려는 허세"(p16-17)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 장정수의 기사는 "쓴 기사보다 안 쓴 기사가 더 좋다. 그게 더 진실돼. 안 그래?"(p314)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반박할 수 없음을 그도 알고, 우리도 안다. 비루한 밥벌이의 수단과 묵혀두고 덮어두어야 그릇되지 않은 일들 사이의 갭이야말로, 김훈의 문장이 때로는 진저리처지는 이유일 것이다.

창야에서 노학연대 활동을 했으나 떳떳하지 못한 전력을 가지고 해망으로 숨어든 장철수와 베트남에서 해망으로 시집왔으나 가출한 후에의 모습은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의 장철민과 김복희의 관계처럼 딱 규정지을 수 없는 유대감이 흐른다. 백화점의 화재진압을 하다 귀금속을 몰래 빼돌리고 퇴직한 소방관 박옥출은 '소방관 장철민'의 보다 세속적인 모습을 부여받은 것으로 보인다. 박옥출과 장철수가 장기밀매(신장불법매매자와 판매자)로 엮이는 것은 저 불친절한 데뷔작의 문제적 인물 장철민이 장철수와 박옥출로 분리되어 재등장하고 있는 것을, 원래는 한 몸으로 불가해한 정신을 공유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장정수는 끊임없이 해망으로 파견을 나간다. 홀로 방치되었다가 개에 물려죽은 아이의 엄마 오금자를 찾다가 멈칫하고, 대형크레인에 깔려죽은 여고생 방미호의 아버지의 방천석의 행방을 끝내 추적하지 못하고, 도난행위에다 불법장기이식을 받고 해망의 유지로 변신한 박옥출을 만나 껄끄러워하다 보니 어느새 해망발 단신들은 기사화될 가치를 잃고 만다. 장정수가 냉혹한 밥벌이와 불편한 양심 사이의 간극을 토로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상인 노목희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죽은 애 엄마도 냅둬, 그 소방관도 냅두고, 냅둬야 해. 놓아주라구.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더 불쌍한 거지"(p129) 장정수의 간극을 극히 단순화해서 위안을 주었던 노목희가 놓아버린 붓을 회복하러 스위스로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냅둠의 미학'을 알고 있는 이의 자기회복력이라고 부르면 괴이쩍은 것일까?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p35)라고 천명했던 장철수의 자기혐오로 가득 찬 추도사는 산 자가 감내해야하는 정확한 몫을 짚어내고 있다. 끝내 강을 건너 불귀의 몸이 된 백수광대의 죽음을 아내 여옥이 슬피 노래했다는 고대시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에서 김훈이 빌려오고 싶었던 것은, 자기혐오를 껴안고 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강을 건너지 못한 자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일 것이다. 김훈식 문맥을 등정하는 일의 고된 것은 정상에서 맞닥뜨려야하는 것이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게 사는 인간사'인 까닭이다. '냅두고, 냅두지 못하는 것들' 사이에서 번민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삶을 긍정하기를 단념할 수 없는' 강 건너의 건너에 머무는 동안의 치열한 분투와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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