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코스키가 간다 - 제2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한재호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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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취업준비군 젊은이들을 수식하는 무수한 단어들은 더 이상 낯설지도, 익살스럽게 들리지도 않는다. 이 거대한, 시스템의 저편에 도사리는 일련의 소외된 계층에 의해 주도적으로 번지는 암울한 공감대가 날로 공고해져만 간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과 비슷한 확률로 탈출과 비상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합류하고 추락하는 세 또한 줄어드는 일 없으니, 그들을 한숨과 우스갯소리의 영역에서 종종 확인하는 일은 필수불가결한 숨구멍 같기도 하다.
 

레이먼드 챈들러와 찰스 부코우스키를 모범 삼았다는 작가의 프로필은『부코스키가 간다』의 가장 친절한, 그리고 유일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주었다. 추적과 불모. '부코스키'를 따라, 백수가 걷는 도시 여정은 추적과 불모의 응축된 시공의 한 단면이다. 무엇하나 심각할 것 없으며, 누구라도 동참가능하고, 기원을 묻는 것은 게임의 룰이 아니며, 전임과 후임이 도시전설에 필요한 만큼만 자생되는, 맨 체이싱 게임에 동참하고자 하는 이들은 진지함과 경박함 속을 누비며 일상의 누추한 모험을 지속한다.

친구의 결혼식이나 취직소식에 무덤덤한 축하를 하고, 지속적인 응모와 짜깁기 매뉴얼로 응시원서를 쓰고, 불쑥 굴러들어온 대로 그렇게 나가버릴게 빤한 같은 처지(구직)의 후배('거북이')와 동거를 하고, 도시의 외진 구석까지 흘러들어온 '부코스키 전설(비가 오면 아침 9시에 슈퍼를 닫고 어딘가로 향하는 '부코스키'라고 불리는 특정인)'에 주춤주춤 동승하는 '나'는 소설적 주인공이 되기엔 한 없이 부족하고, 그가 겪는 도시괴담조차 일상의 또 다른 연장선상이나 다름없다. 백수적인, 너무나 백수적인 백수문학의 현장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최상의 설정인 셈이다.


비가 오면 슈퍼의 문을 닫고, 검은 우산을 받쳐 쓴 채 하염없이 도시를 헤매는 부코스키를, 마지못해 한다는 식으로 미행을 일삼다가 우연히, 우연이 아님을 발견하는 사소함 속에는, 냉혹한 도시의 생존법칙이 고스란히 숨겨져 있다. 심심풀이 삼아 이 입 저 입으로 퍼져나가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태도로 흘려듣는 듯하지만, 꼭 다음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부코스키를 쫓는 나, 그런 나를 쫓는 후임자에게로, 비 오는 날 하릴없이 도시를 쏘다니는 이를 추적하는 사소한 모험이 대물림된다. 이것은 부코스키 또한 전임 부코스키를 쫓았던 것에 불과했다는, 실상을 알고 나면 식상하기 이를 때 없는 도시전설의 실체와도 같다.


기약 없는 이력서, 유명무실한 자기소개서를 쓰는 행위나, 시작이 언제인지도 모를 부코스키의 추적게임이나 지극히 비생산적인데도 끊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시 곳곳에 산재해있는 '30살 소년'들이 썩 다를 바 없는 사연들을 공유하며, 타인과의 단절과 소통부재에 시달리다 못해 희미해져가는 나날들에 대한 보고서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나'와 가장 그럴 듯한 대화를 나누는 등장인물은 수상쩍은 사연으로 동거하게 된 '거북이'도 아니고, 포장마차, 지하철 등에서 부코스키 전설을 소모적으로 나누게 되는 타인들도 아니고,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왕따 초등학생인 것이 참으로 씁쓸하다.


거대한 청년실업군, 백수들의 자화상을 목도하기 위해 백수적 일상을 타박타박 따라 걸었다. '좀비 같은' 출근행렬 속에 합류하는 것이 최종목적일 테지만 어설픈 미행으로 보내는 치기어린 하루, 또 하루의 무의미한 축척을 확인하는 난망함. "할 일 없으면 뭐라도 해요. 쓸데없는 짓 말고요. 그래도 밥벌이는 해야죠."라는 타박을 들어도 어쩔 수 없고, 왕따 초등학생한테 왠지 말이 잘 통한다는 칭찬의 말을 들어도 떨떠름할 뿐. 실체 없는 음모론 마냥 부코스키를 쫓는 30살 소년군상들 그 자체가 도심 속에 뿌리박힌 괴담의 몸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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