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구스타 쿠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 3
이겸 지음 / 은행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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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잘 읽지 않는다. 지난 해 양질의 여행기가 쏟아져 나왔을 때조차, 광풍에 동참하지 않은 채, 방구석에 들어앉아 서가를 채운 책들을 더 분주하게 만났다. 기피하는 장르여서가 아니라, 세상 구석구석을 돌며 길에서만 깨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의 성찰이 한 없이 부러웠기 때문에, 굳이 말하자면 속 좁은 질투 탓에. 그런 사정으로 묵혀둔 한 권의 여행기를 꺼내들게 된 것은 이즈음 다시 들려오는 가슴 먹먹한 어느 혁명가의 이름 때문이었다.

유년 시절의 쿠바는 케네디 시절의 미사일 위기, 성년에 이르렀을 때는 부에나 비스타 쇼셜 클럽과 체 게바라의 나라였다. 카스트로와 미국의 불편한 관계의 진실이랄지, 피델 카스트로의 와병 이후의 쿠바의 정치상황이랄지, 경제 제재 속의 몰락한 쿠바 경제 등등. 온통 마이너스한 이미지로 가득한 서인도 제도의 고립된 섬이, 손 리듬으로 들썩이고, 별이 새겨진 베레모를 눌러쓴 혁명가의 나라로 전환되는가 싶더니, 결국 또 거기서 정체되어 버리진 않았는지. 

쿠바에 대한 일반적 환상과 현실의 거리를 적절히 풀어내주는 너무나 반가운 한 권의 여행기, <메구스타 쿠바>. 사진작가 이겸은 한 달간의 쿠바 체류를 통해, 쿠바의 말간 맨얼굴을 가감 없이 전한다. 그의 문장은 글 잘 쓰는 블로거 이웃마냥 모나지 않은 평범함에 편안하고, 그의 사진은 현란한 기교 없이 작고 낮은 것들을 포용한다. 낡고 허름한 것들로 넘쳐나지만, 결코 남루하지 않은 소박한 멋이 일품인 쿠바는 죽은 혁명가의 성소가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을 위해 여전히 혁명이 필요한 땅이다.

쿠바로 떠나기 전 '위험한 나라'라는 진지한 조언을 들었다는 그의 인상적인 반문, "한국인이 쿠바거리를 걷는 것보다, 쿠바인이 한국의 밤거리를 걷는 것이 훨씬 위험할 것이다". 경제 제재는 부족한 물자를 최대한 이용하고, 생명이 다한 것들마저 필요에 의해 새 생명을 부여한다. 40-50년 된 연륜의 차들은 올드 카의 명함에도 내밀지 못하고, 도심을 벗어나면 공공연히 말과 마차가 다닌다. 수돗물은 수압이 형편없고, 자주 끊긴다. 바싹 마른 초지의 뼈를 드러낸 가축들에 서글퍼져오기도 하지만, 일급휴양지와 고급호텔이 즐비한 특구화한 지역도 공존하는, 평등하지만은 않은 저마다의 가난에, 자신의 편견을 수정해나가는 이겸의 시선을 분주히 따라다니게 된다.

식민지배와 혁명 기념물이 산재한 지역색 강한 쿠바의 이모저모를 둘러보는 일에 숨이 가빠와도 변하지 않는 것은 쿠바인들에 대한 호의, 즉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깨끗한 음질의 부에나 비스타 쇼셜 클럽 관련 음악에 익숙한 관광객들에게 현지음악은 그리 고도의 수준으로 들리지 않을 거라며 못내 궁금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곧이어 흥겨워하는 그네들의 춤사위와 현실을 잊고, 뛰어넘게 만드는 생활 속의 작은 예술을 찬미하는 식이다. 관광객에게만 부과되는 고도의 물가에도 관광수익 아니면 빵을 살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기도 하고. 쿠바식 민박에서 만난 할머니들을 'mom'이라 부르며 다가갈 줄 아는 이라서 그네들의 호의 또한 왜곡되지 않고 통했을 것이 분명하다. 

백인, 물라토, 흑인, 중국계 등등 다양한 인종이 얽혀 사는 탓에 인종차별이 드물고, 까무잡잡한 피에타가 서 있는 성당들이 인상적이며, 사회주의 국가답게 성차별도 느껴지지 않지만, 미래를 꿈 꿀 수 없는 고립된 섬에 사는 젊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난다. 여행길 위에서라 더욱 피부에 와 닿는 쿠바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소소한 전언들도 그 땅의 사람들을 한층 가까이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창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겸의 "메구스타 쿠바(쿠바를 좋아한다)"라는 선언에 간단히 동승해버리려다가 주춤한다. 그가 발견해낸 쿠바와는 다른, 나만의 쿠바를 알아간 후에라도 늦지 않을 고백 같기에. 여행길에 만나는 이들을 온전히 바라보려는 그의 시선 하나쯤은 가지고와도 괜찮을 것도 같고. 문 밖을 박차고 나서는 순간 쿠바의 반을 아는 것이라는 말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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