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영원히 소년으로 남는 방법은, 딱 잘라 말하지만 그맘때의 죽음뿐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면 따분한 일들을 당연한 듯 해내야하는 것이 귀찮아서 네버랜드에 남기로 한 피터 팬만이 어른이 되는 굴레를 벗은 유일무이한 상징일 뿐(<양철북>의 오스카도 결국은 어른의 영역으로 넘어왔으니). 네버랜드를 어제의 그림자로 남겨두고, 자신들의 미숙했던 한 때를 편의에 의해 망각하고, 세상사의 기준에 맞추어 아이들을 재단하고 있는 이들과 늘 그런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소년’들에게 주고 싶은 책이 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의 주인공인 중 3 유미에게는 ‘어느 날 내 친구가 죽어버렸습니다’라는 일이 생겨난다. 어이없이 죽어버린 둘도 없는 친구, 재준이가 남긴 파란 일기장의 첫 장에 쓰여 있던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하는 문구. 반듯하고 수줍음 많던 재준이가 오토바이를 타다 죽어버릴 줄 아무도 몰랐듯, 그 죽음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것은 살아있는 이들의 자기위안일 것이다.. 영원히 소년인 채로 추억으로 머물러야하는 그 녀석 대신.

     유미는 되바라진 아이이다, 아니 그렇다고들 한다. 귀고리를 하고 학교에 가면 “너 같은 애가 자라서 술집 여자가 된다”라고 귀고리를 한 담임선생님이 호통을 친다. 재혼가정 살면서 4살 박이 배다른 동생이 있는 유미는, 남들의 “그럼 그렇지, 그런 가정에서-”라는 시선을 조소할 줄 아는, 치기, 객기, 반항기로 똘똘 뭉쳐 보이지만 자기 연출만큼 불량스러운 아이가 아니다.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속내를 보여주는, 그러니까 죽어버린 재준이만큼 유미를 이해하는 친구는 다시없을 테니,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부재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예정되고, 의도된 죽음이 아니었기에, 재준이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은 남아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결코 거기 어떤 의미가 있는지 평생 알 수 없는 것도 자명하다. ‘대체 죽음이란 의미가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인가?’ 크게 되묻고 싶다. 짝사랑이지만 순정을 다해 열심히 사랑했고, 그 애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다 추락해 부서져 버린 재준이를 일기를 통해 재구성할 뿐인 유미지만, 죽는 것 이상으로 삶이란 얼마나 치열한 고행일지, 일상과 화해 아닌 화해를 하는 유미를 보는 것은 가슴 시린 경험이다.

     포르쉐를 타고 질주하다 비명횡사한 제임스 딘과는 달리 재준이는 전설적인 청춘의 아이콘이 아니다. 세상의 너그럽지 못한 기준들이 이미 설계를 마친 레일 위를 걷는 것이 이따금 버겁고, 좋아하는 아이에게 나다움을 어필하지 못하는 소심하고, 절친한 친구에게 우정을 다하는, 채플린을 꿈꿨던 인생을 채 연출하지 못한 채 저버린 영혼이다. ‘어느 날 진짜로 내가 죽어버릴’ 줄 몰랐겠지만, 내 죽음으로 인해 한 없이 약해질 이들을 떠올릴 줄도 알았던.

     학교와 부모가 아늑한 울타리가 아니라 감옥처럼 느껴진다는 재준이와 유미에게 '배부른 소리'라고 일갈해 버릴 수만은 없는 것은, 내게도 있는 전쟁같던 그때의 기억이 스멀스멀 온 몸에 퍼져가기 때문이리라. 작가가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말처럼 "어른이 해서 나쁜 짓이 아니라면 아이가 해서도 나쁜 짓은 아니며, 아이가 해서 나쁜 짓이라면 그건 어른이 해도 나쁜 짓"이라는 몰이해와 단절을 잇는 경계없는 잣대가 절실해지는 요즘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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