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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머니
이시다 이라 지음, 오유리 옮김 / 토파즈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와 <빅 머니>, 이시다 이라 원작의 두 편의 드라마 모두 나가세 토모야가 인상적인 주연을 맡고 있다. 젊고 방송출연이 잦아 언론에 익숙한 재기 넘치는 작가와 아이돌과 연기자 사이의 경계를 점차 좁혀가고 있는 배우(들)의 만남이 가져온 시너지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이나 강렬했다. 영상 세대를 문학으로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중견 작가와 그의 페르소나가 되어 '이시다 이라' 월드를 연기하는 스펙트럼 넓은 젊은 배우가 동시에 떠오를 정도로, 신작이 나오면 주인공을 연기할 배우를 짐작해보곤 하는 사이클이 정착되려고 하는 즈음에-
드라마 <빅 머니>의 원작소설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원제인 <파도 위의 마술사>가 아니라, 2002년에 방영된 드라마 타이틀에서 따와 『빅 머니』로 나온 연유가 넘치게 짐작이 가는 바지만, 역시 원제가 가진 은유적 암시가 묻혀버린 것이 아쉽기만 하다. 주식시세표의 급락을 그래프로 도식화하면 볼 수 있는 분석표를 떠올려보라. 첨단의 정보전과 시세표의 파고를 조합해 '빅 머니'를 창출해내는 이들을 '파도 위의 마술사'라고 명명한 메리트가 희석 되어 버렸지만, 그 파도의 낙폭마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이들이 벌이는 머니 게임은 여전히 날카롭기만 하다.
1998년은 일본의 거품경제가 무너지고 나서, 그 여파가 경기전반에 완연한 영향을 미쳐 불황이 심화되던 시기이다(우리나라가 IMF의 직격탄을 맞은 1997년 이후를 떠올려보면 되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빠찡코로 출퇴근하는 백수인 시라토는, 제 3 금융권의 실세인 정체불명의 노인의 비서로 스카우트 되어, '빅 머니'를 만들어내기 위한 숫자전에 길들여지게 된다. 마쓰바 은행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초전을 준비하면서, 숫자와 정보가 어우러져 넘실대는 파도를 제어하기 위해 '마켓 감각'을 키워나가면서, 노인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는 시라토의 성장드라마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거품이 붕괴될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부동산을 소유한 노인들에게 접근해 거액의 생명보험을 들게 만든 후, 자살자가 속출하게 될 정도로 참담한 빚을 지게 만든 마쓰바 은행을 몰락하게 만들려는 노인의 사연이 그들에게는 주어진 인간미의 마지노선이다. 오히려 노인과 시라토가 탐욕의 노예가 되어 마켓의 파도에서 표류했다 해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쓰바 은행을 쥐락펴락 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조작된 정보와 방송까지 장악하여 보도전을 펼치는 면모들이 그들을 '(파도 위의)마술사'답게 했을 텐데, 역시 이시다 이라는 작품 속에 진정한 악역을 남겨 두려하지 않는다.
이시다 이라의 젊은 주인공은 좌초는 하지만, 결코 실패자가 되는 법이 없다. 선악의 모호한 경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몇몇의 범죄행위조차 껄끄러운 수단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의 통과의례가 되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 시라토는 노인의 진정한 후계자라 할 만한 '차기 마술사'가 되어,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일본의 다음 세대에게 넘겨줘야하는 사명까지 부여받는다. 이시다 이라의 소설은, 그 주인공은, 하나의 소명을 발견하면, 그 외의 것들은 가볍게 스러지게 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머니 게임에서 승리한 이후, 다시 위험한 연애물로 돌아온 이후에도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