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함께한 그해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박광자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도시탈출을 꿈꾸는 소시민들에게 '자연'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일탈? 도피? 회귀? 원점? 모체? 인간성의 회복? 어쩌면 그 모든 것을 얻을 최후의 기회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휴가 기간에 맛보는 막간의 자연이 아니라 뭔가 더 원초적이고 압도적인 풍광 속에서라면 더 쉽게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우리네와 달리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자연을 영유하며 사는 핀란드에서조차 '자연'이란 지친 도시인들의 최후의 보루로써 치열하게 갈구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핀란드의 국민작가라는 아르토 파실린나의 『토끼와 함께한 그 해』은, 일상과 습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도시적 삶에 찌든 중년남자가 야생토끼 한 마리와 마주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탈극이다. 3류 잡지에 시류에 편승한 적당한 기사를 쓰며 닳고 닳아버린 바타넨은 우연히 야생토끼를 치게 되는데, 토끼를 안아든 순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던져버리고픈 충동에 사로잡힌다.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은 끝내고, 꿈도 없는 직장도 내팽개치고 달랑 토끼 한 마리를 대동하고, 핀란드의 오지를 구석구석 누비는 유랑이 시작된다.

     단순노동자가 되어 벌목꾼이 되고, 별장수리를 하고, 부랑자나 위험인물로 오인 받으며 '되는대로' 살아가면서 진정한 희열을 맛보는 바타넨은, 점차 야성을 넘치게 회복해 절대 도시적 삶으로 복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토끼의 야생성이 바타넨에 의해 희석되어 갈수록, 바타넨의 야수성은 점차 짙어지는데, 핀란드 전역을 누비며 벌어지는 여정 속에는 범죄라고 볼 수밖에 없는, 정도를 지킬 수 없는 일들이 늘어만 간다. 실제로 곰을 쫓아 러시아국경을 넘어버린 바타넨은 국제문제를 야기 시키며 구속되는데, 교도소의 벽조차 바타넨과 토끼 콤비의 한 번 풀려버린 야(수)성을 가둬둘 수가 없다.

     바타넨은 과연 위험인물인가? 자연을 소비하고 도시로 복귀할 뿐인 이들에게 바타넨은 위험인물이다. 위선과 위악의 경계가 무너져 본능이 극대화 되어버리는 바타넨의 일탈은, 그네들의 내면에 잠들어있는 본성을 스스로 포기해버렸음을 일깨우기에, 그의 폭주가 부러워죽을 것 같으면서도 질서유지의 명목 하에 처단해야만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야성이 깨어나는 것과 비례해, 자연조차도 설계하고 질서를 부여해야만 하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대다수의 사람들은 위기의식을 느낀다. 바타넨은 이제 도시로도, 도시의 연장선상에서의 유사자연으로도 돌아갈 수가 없다.

     핀란드 현지인들은 바타넨의 여정을 따라 읽는 재미가 유별날 듯싶다. 오지에서 오지로, 국경마저 넘나드는 그의 행각을 생생히 그려볼 수 있는 자국민들에게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리라 짐작해본다. 불쑥 야생토끼(가 있을 리가 없지만) 한 마리와 조우한다 해도, 마음 내키는 만큼 유리걸식할 만한 야성을 깨울만한 일탈에 서슴없을 수 있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바타넨은 그런 의미에서 질시와 기피대상이 되어 마땅한, 실로 위험천만한 우리의 봉인된 야성의 화신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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