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영혼 1 뫼비우스 서재
막심 샤탕 지음, 이세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단테의 <신곡>은 성경 다음으로 서구사회에 영향을 끼친 한 권이라 할 수 있다. 인문학적인 가치며, 문학사적인 가치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장르문학의 굳건한 축으로 이 순간에도 그것을 토대로 삼은 미디어믹스가 진행 중이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을 두루 쓴 단테지만, 유독 지옥도의 아수라장을 계시로 삼아 연쇄살인의 헤로글로빈의 향연을 벌어지게끔 만드는 방대한 작가군들을 본다면 대체 어떤 생각을 할까?


     '단테(그리고 <신곡>)'를 타이틀 삼은, 아니 아예 타이틀 롤로 삼아 후속편을 양산되는 시리즈물이 좀체 수그러들 줄을 모르고 쏟아져 나오는 즈음이지만, 그만큼 널리 알려진 구도를 차용해 독보적 장르소설을 써보려는 작가적 야심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을 목도하는 것 또한 쉬이 질리지 않는 것도 같다. <신곡>을 완독하는 것보다, '신곡 살인'을 숨죽이며 읽어 내려가는 것이 영혼을 살찌우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무더위 속에서 체온을 냉각시키는 반가운 효과를 가져 오는 요즘이라면 더더욱.


     프랑스 스릴러 계의 총아로 급부상했다는, 막심 샤탕이 20대에 발표한 데뷔작 『악의 영혼』은 미국적 장르소설의 공식에 철저히 부합하는 작품이다. 눈을 뗄 수 없는 빠른 전개와 연속되는 사건으로 가독성을 높이고, 사지가 절단되고 사방에 피가 넘쳐나는 스플래셔 무비만큼이나 영상미가 넘치며, 젊고 매력적인 형사의 고군분투가 인상적이면서도, 히어로(와 독자)를 좌절과 경악으로 몰아가는 사이코패스인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가 여지없이 등장하는. 북미의 영상물과 여타의 스릴러의 계보를 충실히 잇고 있어, 철저하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어찌 보면 위화감이 전혀 들지 않는 '데뷔작스럽지' 않은 작품이다.


     장르소설은 더욱 잔혹하고, 선정적으로 진화해야만 살아남는다. 웬만한 설정으로는 독자가 기대하는 자극을 전달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CSI-DAY에 열광하며 거의 전문가적 수준의 범죄 수사용어에 익숙해져 있는 세대와의 파워게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그럴 만도 하다. 『악의 영혼』은 CSI 전 시리즈를 수도 없이 시청한 예비독자들마저도 감탄하게 만들 만한 치밀한 범죄수사와 프로파일링 과정을 선보이면서, 기선을 제압당하지 않을 만큼 자신감이 넘쳐난다. 과학수사기법에 대한 묘사는 영상물과 장르소설을 탐독하며 얻어진 '안락의자 탐정'식의 산물이 아니라 작가가 실제로 범죄심리학을 비롯한, 법의학연구소를 드나들며 여러 차례 부검에 입회하면서 얻어진 것으로, 작품 내의 '현장감'의 정체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있게 만든다.


     반전과 결말에 이르는 과정까지 뭔가 헐리웃 영화의 전형 같다. 오컬트를 암시하며 밀교적 주술들이 넘쳐날 듯싶던, 이미 죽은 것이 확실한 연쇄살인범의 재래가 ***라는 설정 하나로 풀려버리는 그 허무함. 주인공이 만난 운명의 여인이 끝내 희생되어버리고 말아 그에게 우수의 그림자를 안겨 더 인간적인 면모를 부여해 속편에서 활약하게 만들려는 계산. <신곡>에서 암시를 얻은 시신의 특정부위를 도륙하는 살인극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에서의 허술한 반전. 무엇보다 <신곡>을 '지옥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이야기'로 해석해내는 그 독창성(!) 하나로 악의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이란 인물이 가진 턱 없이 부족한 존재감까지.


     오리건의 포틀랜드 경찰청의 조슈아 브롤린과 그 동료들은 앞으로 발간될 두 편의 후속작에서도 활약을 볼 수 있을 예정이라니, 믿을만한 스릴러를 만났다는 흡족함을 가지고 기다려보려고 한다. 완벽에 가까운 캐릭터가 아니라, 실패와 낙담에 빠졌다가도 악에 굴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진 인간미 넘치는 인물 군상들이, 범죄수사의 치밀한 전개과정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반전이 허술하고, 악의 세력이 단순하긴 하지만, 한층 강력해진 속편 속에서 멋지게 부활할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꼭 기대에 부흥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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