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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귀부인의 방탕한 옷차림과 파티문화에 대한 널리 알려진 이야기 가운데, 가장 어처구니없던 것은 늦은 밤에 시작하는 무도회에 참석하는 여인들은 몸매의 굴곡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로, 물을 충분히 적신 스커트를 입고 춤추곤 했다는 것이다. 밤새 여흥을 즐기고 새벽녘에야 돌아와 폐렴으로 사망에 이르는 일들이-
에두아르트 폭스는 『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에서 방대한 캐리커처와 여성 모드를 통해 지적하고 있는 것은, 코르셋이나 크리놀린 안에 갇혀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사회적 입지를 일관된 논조로 해석하고 있다. 16~19세기에 이르기까지 기괴하고 천박한 패션의 경향들은 대중과 예술가, 문인과 3류 언론들의 풍자와 비판의 가장 광범위한 소재가 되어주었다. 특히 폭스가 조명하는 캐리커처의 역할은, 가학적이고, 뒤틀린 형상들로 표현되는 이미지들은 오히려 순수성의 회복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한다는 데 있다.
르네상스, 절대주의, 시민혁명, 제정시대, 산업혁명, 여성해방운동 등의 거대한 격변기 안에서 여성 모드는 사회적 현상 이면의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조롱과 비난거리로 전락하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이는 ‘취약한 성’인 여성을 공박하는 것이 손쉬웠을 뿐 아니라, 남성들의 위선적 처세에 대한 풍자는 그리 효과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시큰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겹겹이 걸치는 풍성한 레이스와 버팀목 스커트에 감싸인 모드는 정숙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스커트 자락이 불편할수록 더욱 효과적으로, 더욱 과감하게 들어 올릴 수 있도록 고안된 유혹적 산물이었다. ‘데콜테’라는 유두까지 노출시키는 양식이 궁전부터 길거리에까지 만연하고, 애첩들의 호색적 드레스는 최첨단모드를 양산해낸다. 여성들이 점점 불편한 모드와 노출지향적인 최소한의 양식을 추구하는 것은 전부 ‘바지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 때문이다.
일부일처가 정착되는 가장 큰 요인은 여성들의 정숙함을 최대한 요구하여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 적자의 혈통을 보장받기 위함인데, 인류의 역사의 전시대를 걸쳐 이 제도의 불순하고 위선적인 퇴폐양상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결혼상대자에게 자신을 팔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처지라고 보기 때문에, ‘바지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은 공식적인 매춘과도 다름없다고 폭스는 단언한다.
지난 세기에 억압적 수직구조 안에서의 여성의 위상을 캐리커처로 분석해내는 폭스의 시각은 거칠 데 없이 위선과 위악을 모두 떨쳐내 버리고 확장되어 나타난다. 그렇지만 얼핏 선구적인 해석들로 비칠 수도 있는 이런 적나라한 폭로와 진단들은 폭스 자신이 시대를 바로 읽었을지는 모르지만, 시대 밖에 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에 새로운 학설로까지 진화하지는 않는다.
“여성해방운동의 목표에서 잘못된 점은 이 운동이 여성의 완벽한 정신적인 해방을 추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언급했듯이 남성과 여성의 정신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남성들에게는 능동적인 성의 특성에 맞는 창조적이고 지적인 능력이, 여성들에게는 수동적인 성의 특성에 맞는 깊은 감정이 날 때부터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인위적으로 쌓아올린 벽이 된다. 자연적인 이분법을 인정함으로써 이상적인 인류 발전의 기초를 놓을 수 있다. 이런 기호는 원래부터 다른 특성을 지닌 남성과 여성이라는 존재의 조화로운 결합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며, 인류 문화의 목표인 동시에 시작이다.”
(P715~716)
‘남성화가 덜 된 취약한 성’에 대한 폭스의 입장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도 만연한 좌파성향의 급진적 지식인의 전형이라고까지 볼 수 없지만, ‘시대와 모드와 제도’에 갇힌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때때로 과히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일각에서는 ‘바지를 차지하기 위한’ 여성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전개되고 있지만, ‘바지 없이 살아가기 위한’ 여성들의 움직임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릴까 궁금해진다.
더욱 기괴하게, 더욱 과장되게, 더욱 천박하게, 더욱 위선적으로 극대화된 캐리커처를 통해 자연스러운 미의 회복을 꾀한다는 모토를 구현하기에는, 수백여점의 캐리커처의 잔상들이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지난 시대의 그 잔상들에서 과연 얼마만큼 자유로워졌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