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세상에서 가장 경제적인 주량으로 취하고 마는 내 처지가 이렇게 한스러울 수가 없다. 거나하게 취해서 하늘과 땅이 하나같고, 일상과 환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 저주받은 '주당'의 세계에 발 디뎌본 적 없는 나로서는 이 소설의 정수(?)를 죄다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분하기까지 하다. 한 마디로 말해, 지나치게 말짱한 상식의 잣대와 통념을 들이대다가는 참말로 재미없어 질뿐이다. 질펀한 농이 푸닥거리는 술판에 눈치 없이 끼어들어, 혼자 에비앙을 홀짝이고 있을 뿐이라면 과연 흥을 깨는 것은 누구이겠는가?

   프랑스인들이 북아프리카를 관광할 때 가장 충격을 받을 때는, 세상의 끝에서나 볼 수 있는 궁색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는 슬럼가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자부심 넘치는 언어인 불어로 구걸을 하는 것을 볼 때라고 한다. '식민지 프랑스어'라는 어휘에 담긴 경멸과 비하를 조롱과 풍자로 맞받아치며, 그들의 언어로 블랙 아프리카를 마음껏 드러내는 동시에, 프랑스 문단의 젊은 피로 떠오른 알랭 마방쿠의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만큼 거침없이 통쾌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콩고'라는 국명을 쓰는 나라가 두 개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야 확인했다. 세계지도를 보니, 두 나라는 나란히 이웃해있는 크고 작은 나라였다.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는 프랑스령 식민지였던(커다란 쪽의 '콩고민주공화국'은 벨기에령이었다.) '콩코'에 위치한 24시간 연중무후 선술집이다. '고집쟁이 달팽이'라는 수완 좋은 주인이 경영하는 이 술집을 무대로 추레하고 패색이 짙은 사연 많은 군상들이 술독에 빠져 산다. 나라를 망치는 주적으로 지목되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거치고서도 살아남은 이 술집의 유구한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고집쟁이 달팽이’는 초등학교 선생이었던 ‘깨진 술잔’에게 노트를 건넨다.

    ‘깨진 술잔’이 써내려가는 구구절절한 사연들에는 쉼표를 제외하고 어떤 문장부호도 끼어들지 않는다. 대문자 없이 소문자로 시작해 한 번도 문단이 바뀌지 않는 ‘외상은 어림없지’의 비공식 일대기는 마치, 술잔이 비어있는 틈을 못 견디고 들입다 술을 따르고 마셔대고 따르는, 그 모양새를 닮았다. 콩고의 밑바닥 인생들을 ‘프랑스어 교사’였던 ‘깨진 술잔’이 술김을 빌어 풀어내는 딴죽걸기에는 기절초풍할 향신료가 담뿍 배어있다. 유럽과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지성의 보고인 문학작품들이 ‘외상은 어림없지’의 단골들의 추잡한 사연들과 버무려져있는 것을 보니, ‘식민지 프랑스어’가 ‘아카데미 프랑스어’에 철저히 되갚아주고 있는 형상이 아니고 무엇일까?

    전반부의 기록들이 단골손님들을 위한 술집의 연대기였다면, 후반부의 기록은 ‘깨진 술잔’의 음주기행을 담고 있는데, 그의 인생관, 문학관의 유래와 말로를 짐작케 하는 자서전이자 유작이 된다. 대륙(여기서는 프랑스)을 꿈꾸는 본토의 흑인들을 조롱하고, 콩고를 더 우매하게 만드는 군부독재의 권위를 흥겹게 격추시키고, 백인들의 신과 조상의 신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들어나는 비리의 악취들을 더욱 조장하고, 보수적이며 위선적인 식자층에 의해 고사하는 문단에 통렬한 조소를 멈추지 않는 ‘깨진 술잔’은 그저 단순한 술주정뱅이라 할 수 있을까? ‘죽어서야 제정신을 찾았다는’ 돈 끼호테와 너무 닮아서 무시무시한 그가 ‘고집쟁이 달팽이’가 부탁한 대로 마침표가 제대로 찍힌 봐줄만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취하지 않으면 결코 제 정신으로 한 시도 버틸 수 없는 쓰디쓴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보신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마침표가 상실된 술김을 빌어서야 탄생된 뒤죽박죽곤죽의 기록들. 알랭 마방쿠가 쉼 없이 계속되는 쉼표의 행진으로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취하지 않으면 못 봐줄 것 같은 꼴사나운 인생이지만, 아류의 아류가 판치는 문단에서 고고한 콩쿠르상의 권위가 감히 먹히기나 할 법하냐는 빈정거림이지만, ‘여전히 방점 없이 계속 되는 한, 조금은 살아볼 만, 조금은 읽어볼 만하지 않겠는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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