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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살인
아르노 들랄랑드 지음, 권수연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단테는『신곡』안에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을 모두 담아냈지만, 후세의 추종자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그가 결말에 보장한 천국에의 당도보다는, 추악한 죄악과 형형할 길 없는 형벌에 몸부림치는 지옥도에 매료당한다. 르네상스의 찬란한 인문주의 안에서도 그랬고, 노스트라다무스가 잘못 짚은 세기말에도 그러했으며, 굳이 단테에게서까지 지옥을 빌려오지 않아도 충분한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아르노 들랄랑드는 프랑스의 시나리오작가이자 소설가라고 하는데, 과연 『단테의 신곡살인』은 거대한 세트장과 현지로케가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는 영상물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인상이 절로 들었다. 단테에서 영감을 얻은 추리물들이 넘쳐나는 까닭에 “또?”라는 생각에, 기대감보다는 벌써 시들어버린 흥미도였다해도 누가 뭐라 하겠는가. <단테클럽>과 <단테의 ~살인>하는 책들이 이미 한 번 광풍을 일으키고 간 후인걸. 그래도 단테와 지옥도가 들어간 책치고 재미없을 수도 없으니, 일단은 환영이다.
그런데 뭔가, 이 작가는 베네치아라는 매혹적이며 암투가 자행하는 생동하는 무대에 너무 큰 빚을 지고 있다. 프랑스의 젊은 작가가 심취해있는 것은 ‘작가주의’나 ‘예술영화’가 아닌 것이 자명했다. 어떻게든 3시간(극장주에 따라 30~40분가량은 들어낼 수 있는)의 런닝 타임 안에 후다닥 반전에 반전과 반전에 집착하다가 해피엔딩을 위해 네러티브는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헐리웃 대형 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 시스템에 안에서 제조되는 빈약한 스릴러가 하나 늘었달까.
주인공 피에트로 비라볼타는 지금까지 만나본 히어로 가운데 가장 매력이 없고, 미숙한(그 미숙함이 인간적인 매력을 더하지는 않는다) 인물이다. 프로필에는 넘치게 과욕을 부렸으나, 매력을 증명할 문체는 구태스럽다.『신곡』에 예고된 9옥, 9개의 살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추적과 실마리를 얻는 과정 내내 기지와 직감과 추론을 발휘하기 보다는, 언제나 한 발 늦은 후에 주변인들이 넘치게 흘려놓은 단서들을 수집하는 격이다. 절친한 친우로 등장하는 ‘카사노바’가 옆방 죄수로 카메오 출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카사노바의 몫까지 페로몬을 내뿜으며 압도적인 영감으로 지옥도 안에서 인성의 승리를 쟁취해야 마땅한데도!
배교, 육욕, 식탐, 낭비와 인색함, 분노, 이단, 폭력, 사기, 배반으로 예고되고 자행되는 9개의 살인은 치밀하게 짜여 진 거미줄이 되어야하는데도, 각각의 죄악과 대상들이 그리 부합된다고 할 수 없을 만큼 구색만 맞추는 격이다.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을 생각해보라. 모건 프리먼과 브래드 피트가 7개의 대죄(단테의『신곡』은 9개의 지옥이 있지만, 크게 7개의 대죄로도 분류된다)를 예고하며 소름끼치는 살인마, 케빈 스페이시와 벌였던 헤모글로빈의 향연은 진정한 반전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테가 헐리웃에 가서도 무색해지지 않았던 참으로 멋진 승부를 보여주었건만.)
거의 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안에 피에트르 비라볼타는 활약이 없는 것에 반비례하게 전설적 명성을 구축하며, 그리 신통치 않은 연애를 전설로 만드는 사랑에서도 결국은 승자가 되지만 여전히 뒷심은 부족하며 긴장감이 한참은 떨어진다. 주인공만큼이나 온갖 트릭, 가면, 사교의식, 허장성세로 무장한 악의 축, ‘일 디아볼로’마저도 기대이하이다. 9옥에서 펼쳐지는 배신과 반전의 한판승부는 여전히 밋밋한 구석이 많고, 주고받는 대사들에서 살인극의 합당한 종결을 기대하기란 무리였다는 것을 확인했다.
굉장히 쉽게 읽힌다. 그러나 베네치아의 복합적인 정치상황과 방탕한 축제 속에 깃든 사악한 예고살인극은 극 안의 인물들만이 심각해 보이는 면모를 띈다. 익숙한 구성, 어디서 빌려온 듯한 주인공, 예측불허의 긴장보다는 허약한 우연으로 사건을 무마시키는 의미가 퇴색해버린 반전. 단테에게서 태어났을지는 모르지만, 대문호의 명성을 공유하기보다는 조금은 흠집을 내고 있지는 않았나 자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