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사 칵테일 -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상큼한 세계사가 온다!
역사의수수께끼연구회 지음, 홍성민 옮김, 이강훈 그림, 박은봉 감수 / 웅진윙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지금까지 출판관행을 유추해볼 때, ‘감수’라는 작업에 있어 네임밸류를 빌려주는 것 말고, 정말 그 책을 철저히 점검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예를 들면 명화 읽기에 관한 책의 가장 권위 있는 감수자는 이주헌 교수이다. 한젬마의 대필의혹이 불거진 다수의 책들을 비롯, ‘감수 이주헌’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미술관련 서적들은 지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을 것이다. 일본의 헤이안 문학, 일본중세의 풍속사를 다루는 책들의 가장 권위 있는 감수자는 김유천 교수이며, 동물생태에 관한 책에서는 최재천 교수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각 분야의 가장 성공적인 명사들이 그저 타이틀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신뢰가 쌓여갈 수 있는 충실한 출판물을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
『세계사 칵테일』의 감수자는 박은봉 씨다. 청소년 대상의 역사개론서(<엄마의 역사편지>나 <한국사 편지>)로 유명하신 분인 만큼 저서 또한 즐겨 읽고 있다. 잠깐 감수의 변을 살펴보면-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내용이 충실한 역사책, 즉 ‘재미’와 ‘유익’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장점을 고루 갖춘 역사책을 발견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중략) 그런데 흥미롭게도 『세계사 칵테일』은 재미와 유익함 두 가지 장점을 균형 있게 갖추고 있다.”
과연 그런가?
소설 분야에서만 일류가 부는 것이 아닌가싶다. ‘역사의 수수께기 연구회’라는 단체는 일본 내에서 이와 유사한 가벼운 역사 읽기를 지향하는 저서를 다수 써낸 듯싶은데, 그 가벼움과 가독성이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해 역사 입문을 원활하게 돕고 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130가지 에피소드 안에 담긴 역사적 고찰에 담긴 역사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재미 삼아’ 읽고, ‘재미 삼아’ 이미 알고 있던 에피소드들을 꼽아보았다. 8할이 넘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익히 알려졌으며, 그것도 익히 ‘잘못 알려진’ 기존의 정사와 야사에서 볼 수 있었던 새로울 것 없는 해석들이었다. 저자가 아니라, 엮은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새로운 시각의 부재와 재미를 빙자한 가쉽성 에피소드만을 나열하고 있다. 참신했고, 새로웠던 유일한 것이 한국판에서 첨가한 개성만점 일러스트였다는 것에 우월감을 가져볼까 했지만 되려 씁쓸해져온다.
다시 감수사로 돌아가-
“감수를 보면서 일부는 우리의 역사관에 맞게 손을 보았다. 특히 일본에서 통용되는 용어나 개념으로 우리에게 낯선 것은 내용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우리에게 고쳤음을 밝혀둔다”
일본식 역사 용어가 기존의 한국식 역사 용어와 충동한다면 이 책을 읽는 목적성이 위태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호모 에렉투스’를 ‘원인(原人)’, ‘호모 사피엔스’를 ‘구인(舊人)’,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신인(新人)‘이라 칭하는 용어는 낯선 것을 넘어서 일본식 조어들의 역유입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든다. ’내용에 어긋나지 않아도‘ 고쳤어야 하는 부분들이 꽤 눈에 띄는 것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서가 재미있기를 바라는 요구는 타당하다. 그렇지만 번역과 포장으로 그것을 추구하는 것에는 의문점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역사 바로읽기, 뒤집어 읽기, 낯설게 읽기의 일환으로 지금도 치열하게 저술되는 국내의 역사개론서들을 더 찬찬히 살펴보고 싶어진다. 조금은 무분별해 보이는 검증이 덜 된 일본의 역사개론서들의 유입을 경계했으면 한다. 오히려 청소년층이 읽기에는 가쉽성 역사서술이 많은 부분 문제가 있었으며, 검증 없이 가짓수에만 신경 썼다는 인상이 짙다.
역사를 처음 접하게 되는 입문자일수록 가짓수가 많은 메뉴에 현혹되지 말고, 까다로운 주문자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상큼발랄하지 않으면 어떤가? 원래 장사가 잘되는 음식점일 수록 메뉴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자신 있는 추천메뉴로 승부하는 것이다. 색이 고운 칵테일을 여러 잔 가볍게 마시는 기분으로 손에 들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가장 자신에게 어울리는 맞춤 칵테일 한잔의 여운이 더 절실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