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네버랜드 클래식 11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타샤 투더 그림, 공경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식민지에서 태어난 메리는 고아가 되어 영국의 외삼촌댁으로 온다. 아이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삼촌 대신 가정부와 하녀에 둘러싸여 요크셔의 황량한 평원에 세워진 저택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메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입을 모아 말한다. “이렇게 얼굴빛이 나쁘고 못생긴 아이는 처음 봐요. 엄마는 그렇게 미인이었는데. 빼빼마르고 볼품이 없군요. 못된 성질 때문에 사랑받기는 틀렸어요. 참 버릇없는 아이에요.”

    어렸을 때는 몰랐다. 어른들은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만 사랑할 때도 있다는 것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내 영혼에는 식은땀이 고인다. 살갑진 않았지만 열병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열대의 인도에서 황무지의 영국으로, 타의에 의해 살러 온 아이에게 어떤 어른도 먼저 다가서지 않는다. 그토록 거대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메리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진심으로 분개하는 내가 있다.

    콜린은 황무지 저택의 금지옥엽이다. 그저 약하디 약하게 존재해주는 것 말고는 어떠한 기대도 받지 못한다. 아버지는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반쯤은 세상을 등진 채 상실감에 붙들려 살아간다. 에밀리 브론테였다면 크레이븐씨는 신사가 아닌 광인이 되어 마땅하지만, 이 책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그 정도이다. 필요할 때는 없는 사람.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하고, 아버지처럼 등에 혹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루하루 ‘죽어가는’ 아이가 콜린이다. 아무도 콜린에게 음침한 침실을 벗어나 햇살 한 줌과 신선한 공기를 넣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버려둔 그 아이는, 자신의 고독과 죽음에 대한 집착 안에서 날로 생기를 잃는다. 사랑해주지도 않으면서 책임도 지지 않는 어른들. 『비밀의 화원』은 읽을수록 아픈 이야기이다. 그리고 끝까지 읽어야 분노와 화해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이야기.

    메리와 콜린과는 달리 디콘에게는 화원이란 절체절명의 가치는 아니다. 황무지에 흐드러지게 핀 히스처럼 또렷하고 확고한 존재감을 좀 더 거친 대자연에서 얻을 줄 아는 아이니까. 그래서 디콘은 메리와 콜린처럼 상류층의 위선 속에서 배양된 아이들에게 자연과 화해하고, 어른들의 방임에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부단한 존재증명을 해낼 수 있는 중재자가 된다.

    메리가 발견해낸 화원은 죽어가고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실은 잊혀지고 있었다고 해야 한다. 금기가 깨지는 순간, 아이의 건강한 호기심과 삶을 긍정하는 사명감이, 기성세대가 무책임하게 봉인해놓은 과거의 문을 열고 현재와 화해하게 한다. 휠체어가 아닌 두 다리로 서서 아버지를 부르는 콜린의 모습에서, 쉽사리 생의 의미를 지우는 일 없는 아이만이 가진 근원적인 에너지를 발견한다. 아이들이 살려낸 것은 화원만이 아니다. 기성세대가 감추고 싶고, 도망치고 싶었던 자신들의 과오와 회환이 빚은 ‘어제’를 나 또한 바로 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비밀의 화원』을 십대가 되기 전, 십대가 되어서, 이십 대의 나날들 사이에서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그저 단순히 메리가 사랑스런 아이로 거듭나는 이야기라고 믿어왔던 그 때에도 좋았고, 비밀의 화원의 열쇠를 발견한 그 장면에서는 여지없이 숨이 멎을 만큼 매혹되었고, 아이들이 가진 생명력과 포용력의 초신성과 맞먹는 폭발을 목도하면서 진정한 해피엔딩을 찾아낸 요즘도 좋았다. 어떤 관점으로, 어떤 기분으로 읽을지라도 책을 덮으면 초록의 에너지와 삶을 긍정하게 되는 평원의 바람을 느낄 수 있으니.

    타샤 튜더가 가꾼 버몬트의 30만평에 이르는 ‘비밀의 화원’의 일부를 이 책의 삽화를 통해 만나는 것도 흐뭇한 경험이 된다. 틀림없이 이 책의 읽기 전, 그리고 읽은 후 타샤 튜더 3부작(『아름다운 사람, 타샤 튜더』, 『타샤의 정원』,『타샤의 집 』)을 만나게 될 테니까. 타샤에게는 말 그대로 정원이 그렇듯, 인생을 향기롭게 가꿔주는 나만의 비밀의 화원과, 잊혀진 비밀의 화원의 열쇠를 발견하는 다시 없을 마법의 순간을 제발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을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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