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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의 아나키즘
노암 촘스키 지음, 이정아 옮김 / 해토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대학 초년생이었을 때 필수과목으로 들어야했던 음성학 시간을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썩 내키지 않는다. 웅얼웅얼하는 목소리로 원서에 얼굴을 파묻으시고 줄줄 해석을 해나가시는 교수님은, 학생들이 강의를 이해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시는 것으로 보였다. “설마 여기 촘스키도 모르면서 앉아있는 사람 있어?”라는 은연중의 메시지가 온통 기를 꺾어놓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내게 촘스키는 감히 도전해볼 수도 없는 아이거 북벽처럼 냉혹하며 처절한 이미지로 아로새겨 있다.
지성인들이 선택한 금세기의 지성인. 이제는 원서든 한국어저작이든 의무적으로 읽지 않아도 되는 촘스키지만, 여전히 그가 드리우는 영향력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지는 단언할 수가 없다. 칼럼을 읽고, 기획기사를 읽고, 인용문을 읽고, 인문서를 읽고, 신간 안내서를 읽을 때마다 거기 그가 있다. 너무나 많은 곳에 스며들어 있고, 자신을 과신할 필요가 전혀 없는 살아있는 전설의 구현으로, 외면하려고 애써봤지만 여전히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만을 깨닫는다.
『촘스키의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에 대한 그의 인터뷰와 서문, 강연들에서 발췌한 부분부분을 실고 있는 책이다. 무정부주의? 무정부상태의 극한의 혼돈이 떠오르기도 하고,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사이의 완충적인 중립지대가 아닐까하는 두루 뭉실하기만 할 뿐인, 결국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다는 것만을 확인한 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모두 사회주의자이지만,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무정부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정부주의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질서유지를 빙자해서 자행되는 그 모든 체제를 반대한다. 국가적 자본주의, 레닌식 사회주의, 선전주의식 미국 민주주의,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났던 민중억압의 그 모든 사례들. 광범위한 포용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까다로운 기준으로 자발적인 민중혁명을 옹호하고 있다.
촘스키를 비롯해 무정부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가장 훌륭한 무정부주의 혁명모델은 ‘스페인 내전’이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로버트가 왜 전쟁에 참여했는지 잊고 있었나보다. 키스할 때 코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까까머리 마리아만이 머릿속에 가득해서, 유럽과 미국의 지성인들이 앞 다투어 찬양하곤 하는 스페인에서의 그 전쟁을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생각해보게 된다. 또 이스라엘의 ‘키부츠’야말로 가장 건설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무정부주의 체제의 구현이라고 말한다. 민중을 세뇌하지도 않으면서 자발적인 혁명을 도모하게 한다는 것이 행동강령인 셈이다.
세계 질서의 미국식 개편과정에서 까발려진 중남미에서의 만행들은 여지없이 고발되고 있다. 민중정부를 전복시키고, 미국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의 자유 말고는 감히 무엇도 가져서는 안 되는 오욕의 피로 얼룩진 역사적 사실들은 내가 속한 이데올로기 영역에 대한 불신과 의혹을 진작 불러일으켰지만, 행동과 의식의 변화를 봉인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이즘을 갖지 못한 자의 자각은 금새 증발되어버렸다. 무책임과 의도적인 무의식은 무정부주의의 영역이 결코 아니라는 구분 정도 말고는.
『촘스키의 아나키즘』는 그의 저작 가운데 유난히 난해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전작들을 명성과 전설 속의 뜬구름으로만 훑어왔기 때문에 반쯤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루소, 훔볼트, 밀, 프루동, 레닌, 로커, 흄, 게렝, 바쿠닌...... 그리고 촘스키. 이데올로기 투쟁의 마지막 대안이 아닌 여전히 과도적이며 유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대의 커다란 사조를 차분히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준 한 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