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에서 1997년에 출간되었다가 2007년에 이르러서 개정판이 나온 로빈 베이커의 <정자전쟁>은 10년의 세월 동안 빛바래고 구태스러워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위험하고 선정적으로 비친다. 꼭꼭 숨겨야 안심이 될 것 같은 구석지고 음습한 성까지 정중앙으로 끌어내 학술적인 측면으로 객관화하고 있는데, 10년 전에는 미성년이었고, 10년이 지나서는 별다를 게 없는 상식적-그리고 무지한- 성의식을 가진 본인을 비롯한 이들에게 읽는 내내 불편한 감각을 불러일으키게 될 듯싶다.


  일부일처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부부들은 매 자녀의 출산당 약 500회의 성관계를 갖는다고 하는데, 수태가 목적이 아닌 주기적 성관계는 정자전쟁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정자전쟁이란 여성의 자궁경부에 다른 남성의 정자를 물리치고 자신의 정자로 난자를 수정시키려는 종족보존을 위한 치열한 각축전을 말한다. 여성은 배우자가 아닌 외도로 만난 남성과의 단발적인 성관계에서 수태할 확률이 높은데, 주기적 성관계를 맺는 남성들은 이 정자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방어책으로 배우자인 여성들에게 자신의 정자부대를 채워 넣는다(그리고 여성의 신체는 애인의 정자부대를 편애하도록 배려할 수도 있다)고 로빈 베이커는 말한다.


  일상적인 부부들의 성적 트러블, 스와핑, 양성애, 배타적 동성애, 강간, 집단성교, 매춘, 자위행위, 오르가슴, 외도를 숨기는 효과적인 방법 등등. 쉴 새 없이 독자들에게 몰아치면서, 인간의 거의 모든 성행위의 범주를 정자전쟁의 일환으로 풀어내는 저자의 일관된 서술방식이 때로는 책을 덮어버리고 싶을 만큼 왜 그렇게 껄끄러웠나 생각해보게 된다. 반윤리적이고, 명백한 범죄행각인 성행위에서조차 종족보존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는 그 철저한 사명감이 불편했던 것이 아니라, 의사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해 사례를 검증해나가는 방식에 대한 반발심리 때문이었다. 심심찮게 터져 나오곤 하는, 유명 칼럼니스트들이 실제의 조사 없이 사례들을 조작해 칼럼의 논지들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검증해나가는 것은, 명백하게 직업윤리를 저버린 행동이다. 그러나 로빈 베이커는 이미 서문에서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례들이 주변인과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재구성으로 완전한 픽션이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픽션 이상으로 과격하고 적나라한 실제 상황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만, 재구성이라고 밝혀진 책임 소재면에서도 자유로운 장치들은 실례이상으로 생생하게 다가오고 있으니 자못 교활한 면모가 없진 않다.


  정자전쟁은 다시 말하지만,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윤리적으로 인정받는 일정 기준을 준수하는 성행위에서 오는 상식적인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종족보존율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힘껏 퍼뜨리면서도 양육의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정자전쟁의 승리자들에게 월계관을 준다. 외도의 상대방을 임신시켜 그 남편에게 양육케 하는 것, 남편의 존재는 장기적 배우자 관계에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유전적으로 더 마음에 끌리는 정부에게 정자전쟁에서 우세하도록 편애하는 것, 양성애 관계를 맺는 것이 외도를 효과적으로 은폐할 수 있는 것, 일찍이 동성애적 행위에 눈 뜨는 조숙한 아이들이 정자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다는 것 등등. 정자전쟁이 추구하는 목표는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가장 많이 갖는 세대 쟁탈전에서의 승리이지 사회의 통념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정자전쟁>은 최대 다수의 후손들을 위해 반사회적인 행위들을 습득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라는 것을 설파하기 위한 책일까? 최종장에 실린 최후의 정자전쟁의 승리자는 역설적으로도 일부일처를 통해 무수히 많은 후손들을 많은 부부이다. 모든 것은 가능성의 문제이다. 정자전쟁을 야기하는 상당수의 책임은 여성에게 있으며, 여성은 외도를 추구하도록 생물학적으로 설정되어 있다고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빈틈없는 각도에서 검증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2007년의 우리는 대체 무엇을 얻고, 변혁을 이루어야 하는가. 현상을 바로 이해하는 것과 현상을 억제하기 위해 의식화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단 말인가? 어렵사리 읽어낸 책을 통해 느꼈던 혼란스러움과 불편한 감각은 앞으로도 10년간, 그리고 또 10년간...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치열하게 계속 되리라는 선고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