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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는 철저하게 대중 소설을 지향하는 미스테리 소설의 거장이면서도, 다양하게 도전하는 장르의 변주에서조차 평작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는 거물 작가이다. 그가 그토록 다작을 하면서도 대중 소설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여러 매체로 확대 재생산 되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특유의 문체로 승부할 줄 아는 작가다. 가해자와 피해자, 성인과 아동, 남성과 여성, 엘리트와 비주류에 이르기 까지 작가의 관점을 편중하지 않으면서 사해적이며 인도주의로 무장한 글을 쓰려고 섣불리 자기만의 스타일을 무너뜨린 적이 없다. 언제나 건조하고, 최루적인 요소들을 철저하게 배제 시키며, 반전의 허술함마저 포장하려 들지 않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탄생한 영화며, 드라마의 숫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 둘 쯤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탈고 이전에 이미 계약이 진행되지 않을까 짐작이 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미디어 믹스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심각한 방향전환이 생겨난다. 원작이 철저하게 지양한 인간미와 최루성 요소들을 가미시켜 ‘휴먼 드라마’로 탈바꿈하려 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영상화된 두 개의 최근작, 드라마 <백야행>과 영화 <편지>를 살펴보면 그것이 극대화되는데, 시청자와 관객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하기 위해 인간적인 면모를 넘치게 가미해버린다. 원천적인 원작지상주의자여서가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를 영상화하는 것은, 곧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함을 감출 수 없어 더욱 뇌리에서 떨치지 못하는 선명한 인상을 무디게 만들어 별개의 작품인양, 어떤 결말을 수용하면 좋을지 고민에 빠지게 만들곤 한다.
<편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여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친절했달까, 신문연재소설의 특성을 살려 독자들과의 거리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포석들이 눈에 띄는, 직설적이면서도 유동적인 소설이었다. 동생을 위해서 저지른 충동적이고 계산적이지 못해 서글픈 살인으로 사형수가 되어버린 형과 그 형이 남기고 간 죄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주류에서 추방된 채 살아가야 하는 동생을 통해 “정당한 죗값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 하는가”하는 물음을 정면으로 던지고 있다. 교도소에서 한 달에 한 번 보내오는 벚꽃 직인이 찍힌 형 츠요시의 편지는 어떻게든 주류로 편입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다케시마 나오키를 좌절하게 만든다. 늘 상 편지가 발단이 되어 결혼도, 직장도, 출세도 길이 막힌다. 나오키는 희생자인가?
나오키가 받는 차별이 왜 정당한지 설파하는 노(老)사장의 이야기는 한없이 정답에 가까울 수는 있지만, 오차범위가 존재하는 이상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나오키를 번번이 경계 밖으로 내모는 많은 사람들은 나오키에게 변명하는 법이 없다. 늘 이야기한다. “살인자의 동생은 범죄자와 마찬가지다”, 그것은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과는 닮았다. 차별의 근원에 대해 모두가 다른 핑계거리를 만들어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으로 관계를 끝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입을 모아 나오키가 벗어날 수 없는 카르마를 재구축한다. 책을 읽은 독자들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지만, 변명에는 서투른 채, 평범하고 적당한 위선으로 무장되어 있어, 희망적인지, 절망적인지 모를 딜레마를 껴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과연 <편지>는 ‘휴먼 드라마’인가?
소설을 읽었을 때 받았던 무미건조해서 더 아팠던,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흐릿해서 더 각인되어 남는 결말을, 영화에서는 너무나 분명하게 ‘휴먼 드라마’여야한다는 강박증으로 끝내버리고 있는 것을 볼 때,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전히 중도적이고, 몰개성으로 희석된 채 영상화되고 있는 셈이다. 소설 <편지>를 ‘휴면 드라마’로 규정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지, 출판사의 카피여서는 안 된다. 영화를 보며 거침없이 울어버릴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던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 때문이 아니라, ‘다케시마 츠요시’를 연기하는 타마야마 테츠지 때문이었다. 소설이며, 영화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타인의 문제에서만 너그럽게 규정하는 평균치 인간인 내가, 보는 내내 불편했다는 감상에서 오히려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면 이상할까?
친절한 히가시노 게이고 씨,
인간의 본성을 ‘휴먼 드라마’의 틀을 빌지 않고서도 이야기해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