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자라는 집 - 임형남.노은주의 건축 진경
임형남.노은주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실개천이 흐르는 여름, 개천에서 멱을 감을 때면 느닷없이 소낙비가 내릴 때가 있었다. 비가 올 때 큰 나무 밑에 숨으면 위험하다는 상식 조차 모르던 때이므로, 큰 나무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좋은 집이 되어 주었으며, 널찍한 이름모를 잎은 좋은 우산이 되어 주었다.

비 오는 어느 날, 홀로 생각에 잠길 때면, 누구나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짐짓 미소를 짓게 하는 어릴 적 추억이 있다. 그때 그 시절이 너무나 요원하지만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오히려, 어제 아침에 읽은 신문 기사, 통화를 했던 거래처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바로 어제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마치 나의 기억 속에 차마 발을 들여놓지도 못한 듯이...

세상은 점점 빨라지고 모두 한군데 모여 살다 보니 갈수록 사람들은 엽기와 신경질에 칡넝쿨처럼 엉켜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벽장은"은 구체적인 장소가 아닌 첨단의 디지털 문명이 만들어 준 가상의 공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공간들은 감촉이 없고 냄새도 없으며 결정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 page 40 -

"나무처럼 자라는 집"의 지은이는 건축가 부부이다. 요즘 집 한 채 짓는데 채 몇 달 걸리지 않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역시나 집을 짓는 다는 것은 우리와 관련된 일 중에서 가장 큰 행사 중에 하나이다. 집 지을 자리를 고르는 일부터 시작해서, 뼈대를 올리고, 살을 바르고, 지붕을 올리는 것 까지, 조금이라도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그 집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또한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고, 조금 소홀히 한 부분이 있디면, 언젠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라도 들통이 나고 만다. 그런 것이 바로 집이다.

이처럼 집 짓는 것을 직업으로 한 사람 답게, 그의 책에서도 역시 그러한 내음이 난다. 갈색 물결 춤을 추는 책 표지에서 부터, 수채물감으로 그린 듯한 책속 그림들까지, 모든 것이 도면 속에 그려진 건축물 처럼 오밀조밀하다는 느낌이 든다.

요즘에는 책이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외향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읽을 거리가 없는 책에 이리저리 그림으로 채워 사람을 현혹하고, 공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경우 대개가 그림과 내용이 어울리지 않아, 그림은 그림대로, 글은 글대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도심 속의 인공 폭포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인공적이지 않은 그런 느낌이어서 더욱 좋다. 

집은 사람이 짓지만 시간이 완성합니다. 집이란 짧은 시간 동안 단번에 지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집 자체가 스스로의 완성을 유보한 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완성되어 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page 20 -

지은이가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이미 10년을 넘어섰다고 한다. 일부러 책을 느리게 쓰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은이는 집을 짓듯이 그렇게 글을 써나 간 것 같다. 책 속 이야기는 지은이가 직접 보고, 느끼고, 배운 것을 토대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냐, 언제이냐가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내용이 아니다.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는 후대에 가서 빛을 발하게 된다고 말하곤 한다. 그렇듯이 우리가 경험한 오늘 이란 시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가 주고받은 대화가, 만남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닫는데 역시,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은이가 책을 쓰는데 걸린 10년이란 시간 역시 그리 긴 시간만은 아님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건축물" 안에서 보낸다. 일을 할 때도, 친구를 만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우리는 건출물 "안"에 있다.

때론 건축물 "밖"에 있으면서도 "건축물"을 보는데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일상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건축물"이지만, 우리가 기껏 "집" 관해 이야기 할 때는 ’평당 얼마더라’, ’전세가격이 얼마나 하더라’ 라는 이야기일 뿐이다.

집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무언가 격조가 있어야 한다거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집에 대해 이해할 때, 그것은 마치 자연을 이해하는 것처럼, 집과 내가 함께 더불어 살아 숨쉬고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여 주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들을 집으로 데려다 주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때론  시장에 억지로 끌려 가는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때론, 할머니의 자장가에 이끌려 스르륵 잠이 드는 아이처럼, 그렇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집과 더 가까워 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인생이 더 다채로운 색깔들로 채워질 것이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탱글탱글한 도토리 묵 보다는 진한 향이 나는 따끈따끈한 순두부 같은 책이다. 비유가 하필이면 두부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이 책 앞에서는 체면도 내려 놓을 만큼 친숙한 그런 느낌이 난다. 책을 이어가는 대강은 지은이가 설계한 집들이다. 전국을 돌며, 여러 사람의 의뢰를 받아 집을 짓는 동안, 지은이가 방문한 여러 장소, 그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진솔하게 묻어난다.

그곳은 어떤 여행 책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그런 곳이며, 그가 만난 사람들은 비록 유명인은 아니지만, 우리가 때로 고민했던 마음 속 숨겨놨던 짐의 한 켠을 받쳐주는 고마운 충고가 되어 주기도 한다.

비슷한 날 휴가를 떠나고 비슷한 시간에 귀경 길에 오릅니다. 물론 머리를 많이 씁니다. "교통량이 적은 시간을 택해 고속도로에 오르리라? 그러나 모두 고속도로에서 만납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한가한 시간이 아니라 모두 고속도로로 올라오는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 page 159 -



현실을 똑같이 그린 그림보다는 내가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솔직하게 그린 그림이 감동을 줍니다. 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의 화법으로 진솔하게 그린 그림도 감동을 줍니다.
                                                                     - page 61 -

책 속에는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도 많다. 스님이 평생 도 닦아 얻는 것이 결국 아무 생각 없음이고, 김정희가 평생 공부해서 얻은 경지가 일곱 살 대 글씨체라고 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진정 원하는 집은 어떤 집일까? 초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내가 그렸던 나의 집은 과연 어떻게 생기었을까?

건축에 관한 에세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고, 그리고 집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과 애정이 가득 배어나온다. 책의 이면 커버는 마치 화선지나 먹지 같아, 책 속의 향기가 그곳에 배어 있어, 나조차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마져 든다.

최근들어 시골로 낙향하고 싶다거나, 한적한 곳에 별장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주말이 되면 가족들을 태우고 근교로 나가지만 그것은 도시가 싫어 탈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자신들이 그간 얼마나 꽉 차인 도시 생활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몸짓 같았습니다.
                                                                          - page 93 -

인터넷을 두런두런 하다보면, 가끔 멋진 교외의 집에서 한 껏 멋낸 사진 이라든가, 화려하게 차려진 가든 파티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어떠랴 라는 마음도 들지만 한 켠으로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휴대폰을 끄거나 진동으로 바꿔주세요 하는 성우의 목소리 또는, 박물관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하는 문구, 어쩌면, 단순히, 관람을 방해하거나, 작품을 훼손하기 때문에 그런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이라면, 혹은, 자신이 마음 속으로 그리던, 혹은 자신이 정말 만족하는 어떠한 순간이라면, 잠시 다른 것은 내려 놓으라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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