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처음 하얀 가면의 제국을 손에 들었을 때 박노자라는 러시아인이 한국의 역사를 어떻게 그렸을지 많은 호기심이 생겼다. 서양인의 눈으로 본 아시아, 그리고 한국은 어떤 모습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박노자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답게 우리가 보지 못한 진실을 이야기 해주는 듯하다. 단순히 인종적 의미에서의 서양인의 눈으로 그린 아시아와 한국의 모습이었다면 박노자의 책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이것이 박노자의 책을 읽으며 첫 번째로 느낀 것이었다.
 
 사실 서구 문명에 대해 무조건 적으로 우러러 보는 인식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 것은 오래 전부터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은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비판적 문화수용이라는 말을 들은 지도 수년 전인 것 같다. 이제는 누구나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의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옷의 대부분이 인도나 동남아시아 등 3세계의 가난한 아이들이 착취당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매운동을 한다거나 목소리 높여 착취하는 쪽을 비판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런 당연한 인식과 행동이 특별한 케이스로 뉴스에서 대접을 받고 있다. 또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걸프전쟁 등 중동 관련 분쟁이 미국의 이권다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안다고 달라진 것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인식이 아직도 서구 중심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계속 읽어나가면서 그러한 인식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책을 통해 미국은 그 어떤 정권보다 강대하고 방대한 선전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알리고 진실을 은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놀라우리만큼 성공적이었다. 가장 주목을 한 것은 노벨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나라가 갖는 콤플렉스 중 대표적인 것이 노벨상을 한 명도 수상하지 못한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과도 많이 비교되면서 약점처럼 꼬리를 잡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사람들이 노벨상에 대한 권위를 아무 생각없이 떠받드는 이유가 바로 미국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나 미국의 선전에 대한 영향력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갖는 상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믿어왔다. 아카데미상, 노벨상, 그래미상, 퓰리처상 등 그 이유도 생각하지 않고 최고로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 지라도 자신이 믿고 따르는 대상에 대해서 왜 그런지 정도는 명백하게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양심적인 일본학자 또는 지한파 외국인을 보면 무조건 반갑고 긍정적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교가 서양에서 유행하는 것에 대한 좀더 사실적인 해석을 알 수 있었다. 최근에 우리 나라에도  불법수행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들도 많고 벽안의 스님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심지어는 벽안의 스님이 불교TV에 나와 우리말로 설법을 하기도 한다. 신기하기도 하고 불교라는 우리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외국인으로서 대단히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교의 서양에서의 대중화를 무조건 적으로 반길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불교 변질과 변질된 불교의 역 전파의 우려까지도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물론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학술과 종교가 있을 수 없다는 박노자의 의견은 역사적인 전례들로 증명되었지만 상당수가 선을 정신분석이나 요가와 같은 범주의 개인 정신능력 개발기술 쯤으로 소비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정치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의외였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과 오해의 가면을 벗어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면을 벗기 위해서는 매체를 통해서 전파되는 사실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사실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사실이 생겨난 연유와 배경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대해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역사적 진실을 바로보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서구중심주의 사상을 깨뜨릴 필요가 있다.

얼마전 TV를 통해 남아프리카의 경우 전문 간호인력의 해외 유출로 인해 자국 병원에 인력이 없어 중환자들을 수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아마도 이러한 인재유출은 새로운 형태의 억압이나 착취가 아닐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해외 취업 또는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 과연 해외로 가서 큰 돈을 써가며 얻어 돌아오는 것이 무엇일까? 물론 더욱 큰 가치를 가지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연 경제적인 크기로만 생각해야 할까? 그런 식의 논리라면 잘 사는 서구는 무조건 옳다는 논리와 같지 않을까? 그런 맹목적인 인식하에서 이루어진 판단과 행동이라면 당연히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지켜보고 개선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책에 나와있는 내용 중 알고 있던 내용도 있었다. 처음 박노자의 글을 읽는 입장에서 너무 완곡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사실이 드문 요즘 나머지 절반의 새로운 사실들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무조건 박노자의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가 제시한 여러 역사적 근거와 사실이 있지만 그의 생각대로 라면 이 책의 내용도 어느 정도 비판적인 시각아래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비판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가면을 벗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사실을 받아 들이며 자신의 의견과 행동에 맞는 생각의 뿌리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역사를 바라 보았을 때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하얀가면을 벗자”는 박노자의 말에서 “하얀”이라는 말을 빼고 “가면을 벗자”고 말하고 싶다. 하얀 가면을 벗고 나서 나타날지 모르는 또 다른 가면을 예방하기 위해서 라도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하얀 가면이 아니라도 충분히 사람들을 맹목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갈 가면이 많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