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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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앞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쓸쓸하게 서있는 시멘트 공장 신신양회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마무리 된다. 이야기는 주인공들을 제쳐 놓고라도 충분히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소설의 주인공인 ’나’가 되어 작품을 읽어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눈을 감으면 신신양회가 서 있는 시골이 떠오르는 듯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영화보다도 더 생생한 이미지가 되어 돌아왔다. 이것만으로도 나를 작품 속으로 이끌고 들어가기에 충분했다.

오대양 사건은 지금까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는 사건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의문 속에 죽은 채 집단 자살이라는 결론이 그렇게 신속하게 내려질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과학의 시대 라도 그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며, 단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할 뿐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새롭게 조명된 이야기는 그렇기에 더욱 흥미롭다.

’나’는 신신양회의 식당에서 일하는 언니들 사이에서 태어나서 자란다. 신신양회는 시멘트 공장으로 마을을 지탱하는 하나의 버팀목과도 같다. 하지만 신신양회는 영원할 것만 같던 경제성장의 꿈이 무너짐과 함께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결국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그’ 사건이 일어난다. 16살, 어린 나이에 눈이 먼 ’나’는 ’그’ 사건 속에 있었던 유일한 생존자이다.

아마도 ’나’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나’가 앞이 보이지 않는 다는 점 때문이었던 듯하다. 그것은 마치 이야기의 앞뒤를 알 수 없는 의문 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과도 같다. 책장을 넘기면서 뒷부분을 읽어 나가기 전에는 한치앞도 볼 수 없는 나의 모습에서 ’나’가 느끼는 생생한 감정을 일말 느낄 수 있었던 듯하다.

확실한 것 처럼 생각되는 너무도 단순한 진실이 어쩌면 오히려 설명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그렇다. A는 작품 내내 많은 억측을 하도록 만들었지만 그것은 A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현실 속의 내가 살고 있는 또 다른 소설 속의 도시와 같은 공간이 만들어 낸 습관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2년에 종로서적은 문을 닫았다. 우연히도 앞이 보이지 앟게 된 것과 비슷한 시기였다. 그 자리엔 국내 프랜차이즈의 햄버거 가게가 들어섰다고 했다. 서울 어디에서도 더 이상 종로서적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좀 추워진다. 내 추억에 딱 그것만 한 폐허가 생긴 느낌이다. 폐허엔 바람이 분다. 그해는 내가 마지막으로 거울 속의 나를 본 해이기도 하다. 거울 속의 나를 기억하고 있다. 내가 평생 가지고 갈 얼굴이다. 나는 늙지도 않는다. 

오대양 사건은 의문투성이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A가 들려주는 ’그’ 사건은 시원하게 흘러간다. 책을 읽으면서 오대양 사건에 대해 잊혀졌던 의문이 다시 표면위로 떠오른데 대한 갈증을 해갈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원한 바람, 시원한 물 처럼 그런 것이 아니라, 내리쬐는 8월의 작렬하는 햇볕 속에서 수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걸어 간 끝에 겨우겨우 마시는 물한바가지 처럼 찜찜한 시원함이다. 그리고 그러한 찜찜한을 씻어내어 버리는 것은 앞으로의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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