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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 오래된 사물들을 보며 예술을 생각한다
민병일 지음 / 아우라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추억은 마음을 치유한다, 꿈꾸는 

꿈은 유폐된 시간 속에서도 빚어지고, 오래된 사물들의 퇴색하지 않은 감성 속에서도 생성되는 것이 아닐까? (240쪽) 

오랫동안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읽고 또 읽고. 읽으면서 파란 몽당 색연필로 줄을 그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 밑줄이 어디로 번져나가 누군가의 마음에도 푸르게 물이 들지 않을까 꿈을 꾸었다. 나도 어느샌가 가슴에 파아란 물을 들이고 중세 시대를 간직하고 있는 독일의 로텐부르크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마른 흙냄새 풍기는 길을 걷다가 노천카페에서 뭉실뭉실 하얀 거품이 일어난 독특한 맛의 독일 맥주를 '캬~' 시원하게 마시고 있었다. 아~, 떠나고 싶다. 그 독일로. 시간도 잠들어 새근새근 따뜻한 향기를 품어내는 심연의 고향으로. 

시인이라서 그런지 그리운 향기가 나는 언어의 향연이 펼쳐졌다. 순진무구한 꼬마들이 푸르른 숲에서 하나 둘 나타났다 방긋 웃고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물들은 과거의 화려했던 꿈을 간직한 채 망각되어지지 않는 꿈을 꾸고 있었다." (6쪽) / "기억 속에 남은 시간의 흔적은 슬픈 빛깔을 띠고, 먼 곳에서의 추억은 가슴을 아리게 한다." (21쪽) / "바이올린 현은 잘 여문 가을 빛쌀이 깊디깊은 강물에 살 섞을 때 처럼 쪽빛 슬픔의 소리로 변주되어 듣는 이의 가슴에 젖어들었다." (42쪽) /  "삼월은 황량하고 추웠으며 봄은 아직 농부의 신발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50쪽) / "소리의 화음에 귀 기울이면 마음의 창에 진동이 느껴진다." (59쪽) / "생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남루해졌다. 시간으로부터 도피할수록 시간은 몸을 뚫고 들어온다." (89쪽) / "창문은 세상 밖을 유영하는 몽상의 날갯짓으로, 창가를 밝히는 램프는 빛살무늬 환영으로, 골목길은 금방이라도 툭 튀어나올 것 같은 추억의 손짓으로 신호를 보낸다." (100쪽) / "황금빛 맥주는 인생의 불협화음을 위로하고, 맥주잔은 생의 아이러니까지도 수북한 거품으로 감싸준다." (127쪽) / "맥주는 인간의 여러 감정을 담아내는 숨쉬는 사물로서 삶에서 잃어버린 낙원을 꿈꾸게 한다. 그것이 비록 찰나의 환상일지라도 말이다. 맥주는 대중들의 꿈을 실어나르는 매개체가 된 지 오래다." (128쪽) / "별에게 인간의 몸은 낯선 땅이며, 별이 낳선 땅에서 고향인 우주를 회상할 때 인간의 영혼은 푸른빛의 꿈을 꾼다." (135쪽)  

이외에도 많은 언어들이 함께 어울려 아름답게 춤을 췄다. 글자들이 별빛을 받아 반짝반짝 은은한 빛을 내뿜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그리운 유년의 추억들이 떠올랐던 시간이었다. 그립고 애틋하고 아리고 가슴 저미는 느낌...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빛이 바래고 환상적으로 바뀌는 기억 속 장면들이 코 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이럴때면 우주 속에 혼자 존재한다는 고독감에 몸부림친다.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그립고 그리워서 쓰다듬으며 더운 입김을 뿜어낸다. 물건들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 강물처럼 고고하게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흐른다. 추억은 나이든 사람에게 인생의 여유를 선사했다. 내게도 점점 인생을 그립게 하는 추억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인생을 조정하는 건 나였지만 생은 내가 원하던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꿈이 길에서 소멸하거나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흩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 스스로 꿈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한 삶은 꿈을 배반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삶이란 좌절의 나락 속에서도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자신의 꿈을 데포르메 하는 것은 나 자신일 테니까. (48쪽)  

멀고 낯설었던 '독일'이라는 나라를 친숙하고 가까운 나라로 만든 책이었다. 작가처럼 독일로 훌쩍 떠나가 맥주를 마시고 '프랑켄바인'을 마셔보고 싶었다. 벼룩장터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추억을 즐기고 싶고 앤티크 상점을 돌아다니며 인연이 닿는 물건의 운명을 만나고 싶었다. 작가처럼 음악에 대한 지식은 없겠지만 나도 그 동그란 검은 판을 걸고 아련한 음에 취하고 싶었다.

특히, 책에 욕심이 있는 내게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책의 초판을 사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언젠가 꼭 구하고 싶다. 반드시... 그리고 분위기가 아늑한 카페에서 은은한 촛불 아래에서 그 책을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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