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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정신
로버트 헨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즐거운상상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생활이 곧 예술, 예술이 곧 명상

"캔버스에 가까이 다가가야 보이는 형태가 있는가 하면, 한참 뒤로 물러나야 보이는 형태가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nothing)를 캔버스 위에 올려놓고, 몇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유(something)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로버트 헨리는 미술 교육에 대한 하나의 비전을 제시한 인물이다. 우리의 대입 입시를 위한 미술 교육을 생각해 보면 부끄럽고 잘못된 부분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석고상을 수백 장 그린다고 해서 자신만의 개성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현대처럼 '창조성'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는 시점에서는. 

<광고천재 이제석>을 읽었는데, 우리나라 공모전에서 하나의 상도 못 받은 인물이 왜 뉴욕에서는 몇 개월만에 모든 공모전을 싹쓸이하는 결과를 나았을까 많이 이상했다. 몇 개월만에 실력이 급상승했던 걸까, 아니면 우리나라 공모전에 실력 있는 사람이 모여들어 그만큼 더 치열했던 걸까, 아니면 공모전 자체로는 능력 있는 인물을 발굴해 내기 어려웠던 걸까? 하여튼 모든 순간에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데만 골몰하고 자신만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있는 이제석은 그 나름대로 로버트 헨리가 얘기하고 있는 '예술의 정신'을 구축하고 있는 사람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석은 로버트 헨리가 '상업적인 평가와 수상제도의 문제점'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에 해당하는 예일 것이다.

이 책은 흡사 시선집이나 명상집, 법정 스님의 <무소유> 같은 걸 읽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나라 전통 미술에서 볼 수 있는 '여백의 미'가 느껴졌다. 그것은 이 책이 곧 미술을 하려는 사람만이 읽도록 만든 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에 대한 자세를 인간이나 사회로 바꿔봐도 읽는데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대입해서 적용해 봐도 모든 것에 적용 가능한 말들이었다. 그것은 로버트 헨리가 미술에 대하는 자세가 정직하고 성실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감수성을 개발하고 상상력을 키워라', '인물에 대한 애정이 먼저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 기질이 있다', '예술은 사물의 질서와 상대적 가치를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명상록 같은 깊이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예술의 정신'에 대한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다. 이 책은 화가의 입장에서 어떤 걸 습작하고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갖고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드는 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을 뿐, 그 이상의 지적인 재미를 주고 있지는 않은 게 한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로버트 헨리가 지은 것이 아니라 <논어>처럼 로버트 헨리가 한 말이나 강의록, 편지 같은 것을 모아서 펴 낸 책이라 이해하는 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중간에 '그림 비평에 관한 편지' 부분을 보면 누군가의 그림을 비평해 주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그 그림에 대한 정보가 실려 있지 않기 때문에 눈 뜬 장님처럼 그저 막연히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책으로 번역이 되면서 삽입된 대가들의 실제 그림이 아니라면 책의 이해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로버트 헨리도 예술가로만 국한해서 얘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생활하면서 그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명상을 한다면 누구라도 그 순간 예술가가 될 거라고 말한다. 미술을 포함하는 예술이 실생활과 멀지 않음을 꿰뚫는 식견이라 할 수 있다.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면,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이 이성이나 감성의 어느 한 부분만 자극을 주고 발달시켰던 것이 아니라 설명하고 있다. 이성이나 감성, 즉 좌뇌와 우뇌가 활발하게 상호교섭, 상호작용을 할 때만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이 약해져 슬럼프에 빠진 미술지망생뿐만 아니라 더 큰 이상을 품고 무언가에 도전하려는 시점에 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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