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세대 -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소셜 미디어가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은 이제 기정사실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였었다.

소셜 미디어의 해악도, 이 문제의 해답은 근절 밖에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뻔한 소리의 연속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차를 뒤적이다 소셜 미디어가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더 해롭다는 부분이 있어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호기심을 참지 못해 읽게 되었다.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이지만 이 책의 핵심은 상당히 간단하다.

이 책에서 내가 주장하려는 핵심은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아동이 불안 세대가 된 주요 원인이 이 두 가지 추세

- 현실 세계의 과잉 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에 있다는 사실이다.

(pg 26)

따라서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강조한 문장을 반대로 하면 된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은 후반부에 등장하고, 초중반에는 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의 결합이 이토록 파괴적인 결말을 낳았는지를 구체적인 데이터들로 증명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2010년을 기점으로 이 시기 이전과 이후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의 정신 건강 정도가 통계적으로 분명한 차이가 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시기가 바로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보급과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 미디어가 결합되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즉 데이터로 볼 때 범인은 소셜 미디어라는 점이 거의 확실하고, 이 소셜 미디어에 24시간 접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 스마트폰의 보급이 아이들의 정신을 갉아먹었다는 것이 정설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원인은 같은데 왜 여자아이에게 더 큰 악영향을 가져다준다는 걸까.

저자가 여러 이유를 제시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는 여자아이들의 경우 소셜 미디어가 계속해서 보여주는 너무도 이상적인 '모델'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매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게시물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의 정신을 앱 안에 가둬놓는다.

이에 반해 남자아이들의 경우 소셜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이상적인 '모델'에 자신을 대조하기보다는 비디오게임이나 포르노에 중독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그 밖에도 여자아이들의 폭력성이 상대의 사회적 지위를 낮추는 방향(무리에서 따돌린다던가,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등)으로 나타난다는 점, 우울의 감정이 남자아이들에 비해 더 쉽게 전염된다는 점 등의 이유들이 있다.

여하간 이러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와 스마트폰에 접근하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해결책 중 독특하면서도 훌륭한 통찰이라고 생각했던 방법이 바로 아이들에게 현실에서 놀이를 통해 위험을 무릅쓸 기회를 충분히 주라는 충고였다.

요즘은 놀이터에서도 과도한 안전제일주의 때문에 아이들이 넘치는 모험심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고, 이는 아이들이 쉬운 (신체적은 물론이고 심리적인) 허들을 넘으면서 더 큰 허들에 대비하는 훈련을 충분히 하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어른들에게 통제받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갈등을 해결하고 몸을 부딪히며 서로를 배려하는 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박탈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놀이 대신 스마트폰을 든 채 무방비로 가상 세계에 빨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휴대폰을 금지하고 놀이가 넘쳐나는 학교는 예방에 투자를 하는 셈이다.

그 결과로 현실 세계에서의 과잉보호를 줄일 수 있는데,

이것은 아이들이 안티 프레질리티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와 동시에 가상 세계의 지배력을 느슨하게 함으로써

현실 세계에서 더 나은 학습과 관계를 촉진한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하지 않는 학교는 높은 수준의 학생 불안과

씨름해야 할 가능성이 높으며, 점점 증가하는 학생의 고통에 대처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써야 할 것이다.

(pg 374)

물론 다른 학생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쓰는 마당에 우리 아이만 마냥 못쓰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놀이터를 모험이 가능한 곳으로 만드는 것도 쉽지 않기에 저자 역시 학교 차원, 지역사회 차원, 국가 차원의 방안도 열거하고 있다.

하지만 차원이 커질수록 현실 가능성은 낮아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폐해를 널리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아니라도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세대라면 마땅히 경각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굉장히 쉽게 읽히면서도 의미 있는 책이었다.

특히 초등학생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스마트폰 구입 시기는 아내와 함께 늘 고민하던 주제였는데 이 고민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저자가 강조하고 있듯이 여럿이 함께 할수록 효과가 큰 방안들이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공론화가 되어 사회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윌리엄
메이슨 코일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무심코 책상에 올려두고 잠들었다가 밤에 보면 화들짝 놀랄 것 같은 표지를 자랑하는 SF 공포 스릴러 소설이다.

앞에 수식어가 많은데 그만큼 여러 설정들이 합쳐져 상당한 재미를 준 작품이다.

작품의 주요 인물은 AI까지 포함하면 총 5인이며 공간적인 배경도 한 부부의 2층 저택으로 한정된다.

이 저택은 혼자서 '윌리엄'이라는 AI를 만들어낸 '헨리'와 그의 임신한 아내 '릴리'의 집이다.

두 사람 모두 엔지니어여서 집의 모든 기능을 음성으로 작동되는 자동화 시설로 갖추었음은 물론이고 유리창도 방탄으로 꾸미는 등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최고급 안전 사양을 두른 집이다.

헨리는 밖에 나가면 곧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극심한 신경 장애를 앓고 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릴리가 자신의 옛 동료들인 두 남녀를 집에 초대해 같이 식사를 하게 된다.

타인과의 일상적인 대화에도 어려움을 느끼던 헨리는 자신의 작품인 윌리엄을 소개하게 되고, 이 윌리엄이 인간을 향한 알 수 없는 적대감을 보이며 괴상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럼 프로그램이 아니면 뭔데?"

"로봇, 프로그램, 아기... 뭔가가 새로 탄생할 때는 그 존재와 더불어 '공간'이 생겨.

존재 안의 부재랄까. 짐을 싣지 않은 배가 바다로 출항하는 격이지."

(pg 173)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당연히 제목이기도 한 윌리엄이라는 'AI'와 '자동화된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사유를 확장할 수 있도록 설계한 AI가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은 그동안도 많았기에 사실 윌리엄이라는 인공지능은 참신한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강박스러울 정도로 안전을 고려해 설계한 저택이 오히려 밖으로의 탈출을 불가능하게 하는 최첨단 감옥으로 탈바꿈되는 지점은 꽤나 참신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막상 AI로 인한 공포감은 부가적인 장치고,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이 가장 적대적인 공간으로 변할 때 느낄 수 있는 극한의 공포를 제대로 경험한 것 같다.

후반부에는 나름 반전도 있어서 읽는 속도가 붙으면 책을 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었다.

"윌리엄은 인간이 아니야.

놈이 여기서 할 수 있는 일, 여기서 한 일, 다 기계적 속임수에 불과해.

화면, 카메라, 보안 시스템 모두 한 가지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의 에너지 변환일 뿐이야."

"그게 바로 영혼의 정의 아니야?"

(pg 244)

저자의 책은 처음이어서 이것이 저자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 사람들이 긴 글을 싫어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쓴 것인지 문장 자체가 매우 짧고 간결하다.

마치 영화 스크립트를 읽는 것처럼 대사로만 진행되는 부분도 많고 사건의 전개도 '걸어간다. 말한다.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와 같이 짧은 문장들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270페이지로 그리 얇은 두께는 아닌데 금세 읽어버린 것 같다.

물론 문장이 짧다는 것은 가독성을 높여주지만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을 때 흔히 기대하는 찰지고 멋진 문장을 만나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장르 자체가 그런 것을 추구하는 장르도 아닐뿐더러 유튜브 영상도 배속이 없으면 보기 힘든 이 시대에 짧고 강렬한 재미를 주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으므로 부담 없이 재미난 소설을 읽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죽음을 걷는 여자 클래식 추리소설의 잃어버린 보석, 잊혀진 미스터리 작가 시리즈 6
메리 피트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1941년에 발표된 고전 추리소설이다.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추리를 하는 캐릭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추리가 이루어진다는 책 소개에 끌려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 기대 없이 읽다가 초반에 단 한 문단만으로 사건 속에 푹 빠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던 것인데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부러지긴 했지만 높이 솟은, 당당한 대리석 기둥이 있는 드 볼터 일가의 무덤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무덤 하나, 이름과 날짜만 달랑 새겨진 비석과 함께 남은,

묘지 반대편 그 외로운 무덤이 피츠브라운이 그려준 그림이 되어

떠오르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pg 12)

형식적으로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남성 셋이 한 목사의 부인에게 오래전 미완으로 끝나버린 죽음에 대해 전해 들으면서 이런저런 추측을 내놓는다.

그리고 목사의 부인이 들려주는 오래전 한 가문에서 일어났던 의문스러운 죽음과 그 죽음에 얽힌 치정 이야기가 작품의 주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한 시골 마을 부잣집 저택에 아내와 사별한 중년 남성과 그의 두 딸, 아들이 살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살던 그들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아이들의 가정 교사 겸 자신의 연애 대상으로 한 여인을 추천받아 집에 들이게 된다.

굉장한 미모를 가진 그녀가 집에 들어오자 평온했던 집안에 갈등의 골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의 마음에서 이미 그들은 가장 소중한 존재에서 뒷전으로 물러났던 것이다.

그들의 존재는 희미해졌고 그는 계획을 세울 때 그들을 잊고 싶어졌다.

그들은 그가 그토록 열렬히 추구하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속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미래는 언제나 약속의 땅이지만 과거는 언제나 후회를 안고 있는 것이니...

(pg 79-80)

이 작품 역시 일반적인 추리소설처럼 죽음이 일어나고 그 죽음에 담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형식이다.

하지만 현시점의 인물들 입장에서는 목격자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다시 전해 듣는 상황(목격자가 딸에게 이야기했고 그 딸이 현재 시점에서 이야기를 해 주는 상황)이고 사건 역시 이미 과거의 일이기에 사건의 진상은 제한된 정보를 통해 추측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공간적으로도 대저택으로만 한정되어 있어서 독자들은 시간의 제약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사건에 숨겨진 비밀들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등장인물들이 많지 않아서 특별한 반전이 있는 스토리는 아니었지만 모든 인물들에게 다 조금씩 동기가 숨겨져 있었던 터라 누구의 범행인지 알아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옛날 작품이어서 문장이 다소 장황한 느낌이 없지 않은데 그럼에도 읽는 맛이 나쁘지 않았다.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 그리 과학적이라 할 수 없는 수사가 이루어지던 시절의 범죄 이야기라 지금 시대에는 오히려 색다른 재미를 주었던 것 같다.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분명 재밌게 읽을 수 있을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에일리언 어스 - ‘또 다른 지구’와 미지의 생명체를 찾아서
리사 칼테네거 지음, 김주희 옮김, 이정은 감수 / 쌤앤파커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SF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우주에 정말 우리만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만큼 흥미로운 질문도 없을 것이다.

일단 지금까지 알고 있기로는 태양계의 8개 행성 중 오로지 지구에서만 생물이 존재한다.

하지만 밤 하늘에 빛나는 저 수많은 천체들 중에 과연 지구와 같은 환경을 가진 행성이 단 하나도 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저자는 제목처럼 외계에서 지구를 찾는 천문학자다.

지구와 비슷한 천체를 찾는 일은 당연히 천문학자만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 분야야말로 학제간 공동연구가 필수적인 분야였다.

과학자가 당대 모든 과학 지식을 알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

이는 좋은 소식이다.

인간 1명이 배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방대한 지식이 밝혀지고,

매일 새로운 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추가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더 이상 개인이 모든 것을 혼자서 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g 199)

먼저 우리가 지구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증거다 보니 지구의 생명체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태초에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명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생명의 기원을 두고 여러 학설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도 인류가 실험실에서 생명체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유기물을 합성해 낸 경험은 있지만 생명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히 외계 천체에서의 생물 탐색도 상당 부분 예측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

또한 골디락스 존 안에 존재하는 행성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대상 천체가 수천 개에 달하고 거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항성까지 빛의 속도로 4년이 넘게 걸릴 정도로 우주는 광활하다.

이 넓은 우주를 직접 돌아다니면서 샘플을 채취하며 분석하는 과정을 거칠 수 없기에 연구의 중심 활동 역시 관측과 계산, 제한적인 모델로의 실험으로 이루어진다.

다른 행성의 생명체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일은 고도로 창의적인 활동이다.

그래서 인간 상상력이 외계 생명체의 지극히 일부분이라도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최근에 밝혀진 심해 생물을 볼 때면 그들의 놀랍고 낯설며 기괴한 아름다움을

예측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가 발견된다면 그들은 놀라움으로 가득한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pg 169)

게다가 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한 것은 지구 전체의 역사로 볼 때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관측하는 어떤 천체가 지금은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수만 년, 수억 년 뒤에는 생명으로 가득한 천체가 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지구의 역사를 토대로 각 시기별로 관측했을 때 어떤 빛이 방출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고 한다.

말로 쓰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기나긴 시간 동안 서서히 변화하는 천체의 모습을, 그것도 천체의 외부에서 봤을 때의 모습을 예측해야 하기에 많은 데이터와 분석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연구의 어려움뿐 아니라 여성 과학자로서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차별적인 시선과도 저자는 맞서 싸워야 했다.

위대한 과학자 '칼 세이건'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이끄는 수장인 저자이지만 지금도 여성이 자연과학에 종사한다는 것에 색안경을 끼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어쩌면 정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을 찾고 있는 저자답게 이러한 시각에도 당당하게 맞서며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의 연구 성과가 아닌 나라는 사람을 의심하는 동료 과학자를 여전히 만날 때마다,

나는 한 선배 과학자가 들려준 대단히 유용한 조언을 떠올린다.

"이렇게 생각하라. 누군가가 당신을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주목할 만한 일을 성취했음을 의미한다."

(pg 222)

기본적으로 외계의 천체를 어떻게 연구하는지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게끔 쉽게 쓰인 과학 교양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망원경으로만 관측하면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과 그 항성의 빛을 굉장히 강하게 반사하는 행성 정도만 관측할 수 있기에 항성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은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항성의 빛이 주기적으로 약해지는 빈도와 시간을 계산해서 숨어 있는 행성을 찾아내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여러 천문학 지식도 전문적이지만 읽어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소개되어 알찬 독서가 된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 확실하게 생명체의 징후를 보이는 천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불과' 10광년 거리에서 적합한 행성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빛의 속도로도 10년이 걸릴 어마어마한 거리이므로 쉽사리 가볼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천체를 꼭 찾았으면 좋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바람이 생긴다.

우주의 시간은 인간의 수명에 비하면 영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길지만, 우리가 매일 보는 태양조차도 언젠가는 그 수명이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100년간 인류가 이룩한 수많은 성과들을 볼 때, 그리고 우리의 항성이 사라질 때까지 아직 수억 년이라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시간이 남아 있다고 할 때 언젠가는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숙론 - 어떻게 마주 앉아 대화할 것인가
최재천 지음 / 김영사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우리나라에 '통섭'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던 저자가 최근에 강조하는 단어가 바로 '숙론'이다.

흔히 우리는 토론을 할 때 반드시 상대를 꺾어 내 생각대로 만들어야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언제나 내 생각이 옳을 리 만무하고 사람들 사이의 의존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기에 상대와 함께 협력해 나가기 위해서는 발전적인 토론이 필수적이다.

'토론'이라는 단어에 이미 상대와의 싸움이 전제되어 있으므로 저자는 새로운 용어로 '숙론'을 제안한다.

숙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른지 숙고해 보고 자기 생각을 다듬으려고 하는 행위다.

서로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식 수준을 공유 혹은 향상하려

노력하는 작업이다.

숙론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는 과정이다.

(pg19)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숙론 방식의 수업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토로한다.

그저 앞에서 떠드는 것을 듣고 시험 때 외운 정보를 토해낸 뒤 까먹어버리는 방식의 교육만 받아온 학생들이 서로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에 익숙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저자가 몸담은 대학에서는 숙론 방식의 수업을 정착시켰고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고 한다.

특히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닌 팀 단위의 성과와 개인 성과를 모두 반영하고 학생들이 서로를 평가하게 하는 평가 방식도 흥미로웠다.

이어 다수의 위원회 활동에서 숙론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었던 사례들을 소개한다.

그중 돌고래 '제돌이'를 방류하기 위한 위원회 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였던 위원회 구성원들이 치열한 숙론 끝에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나서 후련하게 웃는 모습을 보였는데, 숙론을 통해 서로 할 말을 모두 토해 냈기에 후회가 남지 않아서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숙론은 사회 갈등을 해결함에 있어서도 효과적인 과정이기에 저자는 우리 사회에 이제 '숙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세대마다 시행착오와 발견을 반복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출발선을 이전 세대가 전진한 곳까지 옮겨놓고

거기서 시작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pg 7)

이러한 숙론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진행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책 후반부에는 좋은 숙론 진행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들이 소개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철저한 준비와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소극적이어서 의견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너무 발언권을 독점하는 사람들을 유연하게 저지하는 등 경험치가 있어야만 가능한 스킬들도 있었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나라임에도 한국 사회는 유독 갈등이 많은 사회다.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는 지역 갈등부터 요즘에는 남녀 갈등, 세대 갈등, 계층 갈등까지 인터넷을 조금만 돌아다녀도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숙론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무엇이든 빨리 배우고 빨리 적응하는 민족이기에 숙론의 문화 역시 그럴 것이라 전망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자만큼 긍정적으로 전망하지는 않지만, 그가 강조하는 숙론의 문화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었던 터라 그다지 새로운 내용을 알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저자의 최근작을 서너 권쯤 읽은 독자라면 나와 비슷한 감상을 얻을 것 같다.

하지만 내용도 좋고 저자의 책답게 술술 읽히는 맛도 좋았다.

이제 막 '최재천'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