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단편선 소담 클래식 8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라는 표현이 나오면 언제나 함께 언급되는 이름이지만 정작 작품으로 만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한 작가 중 하나인 것 같다.

저자의 대표작들은 대체로 장편들이지만 그 두께도 그렇고, 방대한 등장인물들에 대한 악명(?)이 워낙 높아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데, 이번에 그의 대표적인 단편들을 모은 책이 나와서 읽어보게 되었다.

300페이지가 넘지 않는 가벼운 분량에 '백야', '남의 아내와 침대 및 사나이', '첫사랑' 등 총 세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세 작품 모두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나, 특이하게도 세 작품의 분위기가 정말 확연하게 다르다.

첫 작품인 '백야'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읽는 과정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러시아 고전 문학이 가진 장황한 문체에 대한 인지가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 정도가 굉장히 심하게 느껴졌다.

다른 두 작품에 비해 스토리라인도 단순하고, 내용의 대부분도 남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히려 그 점이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 하더라도 실제로 사람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내용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첫 작품과의 만남에서 힘을 잔뜩 빼버려 기진맥진하게 다음 작품으로 넘어갔는데, 두 번째 작품은 매우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제목만 보더라도 매우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라는 점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겠지만, 문체나 이야기의 흐름까지도 같은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쓴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첫 작품과 대조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내용상으로도 의처증이 있는 아내의 뒤를 캐면서도 사회적 체면을 지키려고 애쓰는 한 남성이 보여주는 좌충우돌 코미디여서 읽는 내내 웃음을 짓게 된다.

상황적으로 안타깝기도 하면서, 보이는 태도로 보면 그저 어처구니없기만 한 상황을 잘 만들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성 수치심마저 자극할 정도였다.

(다만 작품 속 두 에피소드가 살짝 어색하게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 검색해 보니 본래 두 작품이었던 것을 하나로 합친 것이라 한다.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으므로 작품을 접할 예정이라면 참고하기 바란다.)

마지막 작품인 '첫사랑'의 경우 해당 제목으로는 검색이 잘되지 않는데, 국내에는 '어린 영웅' 혹은 '꼬마 영웅'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적이 있는 모양이다.

내용상으로는 두 제목 모두 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11살의 어린 소년이 한 부인에게 반한 뒤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굉장히 따뜻한 감성의 작품이어서 앞의 두 작품과 뚜렷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본 책의 수록작 중 가장 재미도 있었고 인상 깊었던 작품이었다.

나는 온몸을 풀잎처럼 떨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고 나의 최초의 자각, 내면의 발견, 내 본성의 아직 분명치 않은 통찰에

자유롭게 몸을 맡겼다.

나의 첫 유년기는 이 순간과 더불어 종말을 고했다.

(pg 266, '첫사랑' 中)

첫 작품을 제외하면 걱정했던 '장황함'이 독서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소재나 줄거리도 꽤 대중적인 느낌이었다.

따라서 '러시아 대문호'라는 타이틀에 다소 부담을 느꼈었더라도 이번 책은 가볍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의 벽돌 책들에도 다시 손을 뻗게 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거장이 주는 위압감(재미없을 것 같다는 선입견)을 상당 부분 해소시켜 준 것 같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렉 이건 더 베스트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에 출간된 저자의 책을 모두 소장하고 있는 입장에서 오셔닉 한 작품만을 위해 이 책을 산 것은 솔직히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다.
다만 아직 그렉 이건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시작점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 나쁜 사춘기는 없다 - 우리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가장 확실한 솔루션
허지원 지음 / 세이코리아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부모로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춘기 전후가 되면 자식과 전쟁을 벌이는 부모의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딸아이도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어라?' 하는 순간이 종종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애교도 부리고 말도 잘 듣는 편이지만, 이러다 사춘기가 되면 태도가 확 나빠지지 않을까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던 차에 아이의 사춘기를 제대로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책이 나와서 미리 대비하는 마음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저자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생활 습관을 잘 잡아주면 얼마든지 사춘기 시절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고등학교 이후에도 교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의 머리가 자라면 자랄수록 교정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는 사실이다.

책에서 강조하는 생활 습관 체계는 아래와 같이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1. 부모에 대한 예의와 규칙 준수

2. 생활 관리

3. 할 수 있는 자기 계발 시간의 누적

(pg 24-25)

위 세 가지는 단계를 가지고 있어서 1번이 충분히 생활화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부모가 만만하게 느껴지면 아무리 좋은 말도 먹혀들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존중이 충분히 쌓였다면 다음 단계인 '생활 관리'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스스로를 돌보는 단계인 2단계에는 자신의 위생 관리는 물론이고 자신이 머무는 공간의 청결과 정리를 포함한다.

마지막 단계인 자기 계발은 위 두 단계가 충분히 성숙해야만 의미를 갖는다.

가정에서 부모에 대한 예의와 생활 관리가 무너진 아이는

학원 강의실에서도 그저 앉아만 있다가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쏙쏙 이해되는 강사의 설명은 강사의 실력일 뿐 아이의 실력이 아니다.

아이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강사의 화려한 공연을 구경하고 온 관객'일 따름이다.

(pg 71)

여기에서 많은 부모들의 생각이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도 아이가 공부만 잘하면 사소한 생활 습관 같은 것들은 눈감아주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자신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노고 덕분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아이가 장기적으로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깨달음이 행동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심리학과 뇌과학의 결론은 정반대다.

깨달음은 행동의 원인이 아니라 반복된 행동의 결과다.

(pg 66)

1, 2단계가 형성되지 않은 채 아이가 이미 사춘기를 맞았다면 1, 2단계를 형성하는 것부터 아이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때 부모가 합심해서 단호한 자세로 1, 2단계를 확실히 채워줘야 한다.

그리고 세부적인 방법론은 역시나 '보상과 페널티' 체제를 가동하는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을 포함한 전자기기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굉장히 강력한 보상이자 처벌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설계가 굉장히 중요하고, 이를 위해 아이를 관찰하면서 아이의 행동을 데이터로 축적해둘 필요가 있다.

약속한 바를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를 구체적인 데이터로 정리해두면 아이와의 협상에서 감정 소모 없이 구체적인 행동 위주로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억지로 시키는 것은 폭력이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움직일 근육이 생길 때까지 부모가 대신 지지대를 세워주는 고도의 설계다.

(pg 67)

정리하고 보면 세 가지 원칙을 잘 준수하라는 것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아이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 원칙들을 실제 아이와의 관계에서 만들어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중반 이후로는 실제 아이들의 사례와 적용에서의 어려움들, 실천 과정에서 떠오르게 될 의문점에 대한 답변들까지 부모들에게 실질적인 팁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아이들이 변한 원인은 부모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중략 -

사춘기 아이들은 반드시 변할 수 있다.

(pg 235)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저자의 교육관이었다.

저자는 교육이라는 것은 곧 아이 스스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스로도 그렇게 자랐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동일한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아이가 자신을 이해하고,

이에 맞는 미래를 준비하여, 원하는 인생을 찾고 실현할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을 이끄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고등학생 자녀 교육의 방향은 결국

'자립할 수 있는 사회인으로 키우는 것'이다.

(pg 343)

교육관이 올바르니 그 길로 가기 위한 방법도 올바르게 느껴진다.

지금은 아이가 세 가지 원칙을 지금 나이에서 할 수 있는 수준에서는 충분히 잘 지켜주고 있는 것 같다.

작게는 우리 부부가 아이에게 강조하는 것들이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하기도 했고, 크게는 아이가 사춘기를 맞는 시기가 와도 지금처럼 아이와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아이를 관찰하고 필요한 것들을 쌓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도 됐다.

전반적으로 매우 만족스럽게 읽었다.

어려운 내용 없이 바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어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에게나 좋은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여러 번 강조하고 있듯이 아이가 클수록 교육에서 부모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므로 되도록이면 부모 모두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나 역시 일독을 끝낸 후 아내에게 바로 읽어볼 것을 권했다.

육아는 긴 과정이다.

그저 물질적인 부분만 채워준다고 능사도 아니고, 아이의 감정만 알아준다고 해서 아이가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도 부모 역할이 처음이기 때문에 공부가 필요한데 그 목마름을 잘 채워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향한 진정한 사랑은 따뜻한 위로가 아니라 아이의 손에 생존의 도구를 쥐여주고

거친 세상으로 등 떠미는 부모의 단호한 뒷모습에 있다.

(pg 334)

흔들리지 않는 부모가 흔들리지 않는 아이를 만든다.

(pg 3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자 텔레포테이션으로 인간을 전송할 수 있을까? - 쉽게 읽을 수 있는 양자역학
후타마세 도시후미 지음, 정한뉘 옮김 / 시그마북스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도서관 신작 코너를 기웃거리다 귀여운 표지와 함께 재미나 보이는 질문이 눈길을 끌어 읽어보게 되었다.

최근에 읽은 김보영 작가의 단편집에 양자 텔레포테이션을 다룬 작품이 있어 이를 과학적으로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물론 그 작품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순간 이동이 아니라 물질을 분해한 뒤 목적지에서 재조립하는 것이어서 '죽음 후 복사'에 가깝게 묘사되긴 했었다.)

제목의 질문은 비교적 초반에 다루고, 나머지 내용은 양자역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일반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교양서라고 보면 되겠다.

양자역학의 가장 신비로운 부분이면서 초반 진입장벽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양자의 입자성과 파동성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되고 그 유명한 이중 슬릿 실험도 간단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현재 널리 통용되고 있는 코펜하겐 해석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EPR 역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지나면 양자역학 교양 강좌에서 유명하게 활용되는 '닥치고 계산하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근본적인 원리는 불문에 부치고 '원래 그런 법'이라고 받아들이면

결과도 알 수 있고,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다.

한 물리학자는 "코펜하겐 해석은 한 마디로

'일단 슈뢰딩거 방정식을 푸는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대학에서도 양자역학을 가르칠 때 '일단 계산하라'를 전제로 두고 있다.

(pg 75)

여기까지는 '쉬운 양자역학'을 표방하는 과학 교양서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책마다 난이도 편차가 매우 크기는 하지만, 이 책은 코펜하겐 해석까지는 지금까지 읽었던 양자역학 교양서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도 반전이 있으니, 7장 중반쯤부터 블랙홀이 등장하는데 그때부터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읽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상한 할아버지인 줄만 알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은퇴한 킬러라는 설정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블랙홀의 호킹 복사부터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특히 초끈 이론부터는 검은 건 글씨요, 흰 건 종이구나 하는 느낌으로 읽지 않았나 싶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해당 부분이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이라 그 분량이 그리 길지는 않다는 것이다.

저자 역시 이 부분이 꽤나 어렵게 느껴질 것을 의식한 까닭인지 8장 도입부에서 '글만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최첨단 연구는 이런 느낌이구나 하면서 읽고 넘어가라'라는 조언을 건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진공 상태에서 쌍생성 및 쌍소멸이 일어난다는 사실과 이를 통해 호킹 복사가 밝혀졌다는 내용까지는 이해할 만한 것 같아 좋았다.

이전까지는 전에 읽었던 교양서의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기 때문에 정리하는 기분으로 읽었고 이 부분부터 진짜 독서를 하는 느낌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처음 양자역학 관련 교양서를 읽을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뼛속까지 문과로 태어난 입장에서 수식을 배제한 양자역학 책이 쉽게 다가오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지 모른다.

그나마 지금 이 정도라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그간 거쳐온 여러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 아닐까 싶다.

이 책 역시 지금까지 읽어본 양자역학 책 중에서도 손꼽히게 쉽게 잘 설명해 준다는 느낌이었고, 얇은 편이지만 다루는 범위가 넓어서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꽤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완벽한 날 워프 시리즈 12
아이라 레빈 지음, 김승욱 옮김 / 허블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믿고 읽는 워프 시리즈에서 새로 나온 책으로 1992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시리즈 전체가 다 주옥같은 작품들이었던 데다 SF의 영원한 단짝 키워드라 할 수 있는 AI와 디스토피아가 결합된 이야기라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은 그 위대한 '1984'의 세계처럼 모든 사람들이 매우 균질화된 사회를 그리고 있다.

물론 그러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세부적인 설정들은 매우 다르다.

일단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사회라는 점은 비슷하다.

하지만 '유니콤프'라 불리는 AI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회 순응적인 성격을 갖게 만드는 약물을 주입함으로써 매우 자발적으로 서로가 서로의 감시를 도와주는(?) 사회를 그려내고 있다.

해당 약물의 유효 기간이 대략 한 달 정도로 묘사되는데, 이 시점이 되면 슬슬 제정신이 돌아오려는 부작용(!)이 있어 주기적으로 약을 투여받아야 하며, 이 시점보다 빨리 약발이 떨어져 이상 행동을 보이면 주변 사람들이 '병이 든 것 같다며' 어서 빨리 치료를 받으라고 권함으로써 체제가 유지된다.

인간의 출산은 물론 직업의 선택, 여행의 시기와 위치까지 AI가 계산한 최적의 상태로만 지정이 되지만, 그러한 세상이 도래하기 전보다는 식사나 위생 측면에서 더 나은 삶이라는 인식이 해당 시스템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당연히 이러한 획일성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을 테고,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사람들이 AI와 물질적 풍요를 통한 구성원의 복종이라는 무기를 가진 거대 사회 시스템에 저항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품 속 사회에서 추구하는 제1의 가치는 바로 통합이다.

모든 구성원이 서로 배려하며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굶주림과 질병이 없는 세상이라 하면 얼핏 유토피아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이나 질투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 역시 인간이 가진 본성의 일부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한 감정들을 거세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유토피아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다 읽은 후의 소감은 역시나 매우 재미있었다.

취향 상 싫어할 수가 없는 소재들의 조합이라 세계관 자체가 매력적이었고 세계관을 지탱하는 설정들도 상세한 편이라 작품 속 세계에 금세 녹아들 수 있었다.

모종의 해결책을 찾아내나 싶으면 엎어지고, 찾아내나 싶으면 엎어지는 등 줄거리나 전개도 탄탄해서 400페이지 후반으로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읽는데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후반부에 나름의 반전이라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끝까지 흥미를 잃을 수 있었다.

저자가 생전에 그리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은 아님에도 하나하나가 모두 좋은 평가를 받는 모양이다.

영화화된 작품도 꽤 있는데, 이 작품 역시 영상화가 된다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다.

역시 읽은 후 재미가 없었던 적이 없는 워프 시리즈답게 이번 책 역시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더불어 훌륭한 작가를 한 명 더 알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저자의 다른 작품들도 계속 소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