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 소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지연리 옮김 / 창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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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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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영원한 동화 어린 왕자를 다시 읽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판본이 많은 작품은 어떤 판본으로 읽느냐가 독서 경험에 많은 영향을 준다.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읽어봤을 것이기 때문에 출판사마다 차별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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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판본의 차별점은 뭐니 뭐니 해도 디자인이다.

표지의 소재부터 책의 머리와 배, 밑부분으로 이어지는 별 그림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에서 신경 쓸 수 있는 부분은 모조리 다 신경 썼다고 느껴질 정도로 받자마자 피부와 눈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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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판본의 역자와 삽화가가 동일 인물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생텍쥐페리의 그림을 그대로 수록하거나 삽화가와 번역가가 다른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번역과 삽화 모두를 한 사람의 시각으로 작업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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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그림부터 시작하는 작품이므로 이 작품에서 그림이 갖는 역할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삽화에 들인 공이 상당하다는 것이 잘 느껴진다.

원작의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따뜻한 파스텔톤으로 재해석한 삽화가 작품의 따뜻함을 더욱 잘 살려준다.

삽화를 보며 읽게 되는 글 역시 따뜻한 어조로 되어 있어 책장을 넘기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아무리 협업을 잘 한다 하더라도 삽화가와 번역가가 다르다면 이렇게까지 일관된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여.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pg 128)

번역이 경어체로 친절하게 되어 있어서 본 작품을 처음 접하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

단순히 어린 왕자가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고 왔다는 건조한 서술이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가 따뜻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감각적인 책 디자인 덕분에 옛날 책이 주는 고루한 느낌도 없으니 선선해진 요즘 따스한 감정을 충전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자신에게 주는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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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의 언어 - 소리, 몸짓, 냄새로 소통하며 진화해 온 생물들
롭 던 지음, 송근아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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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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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와 이로 인한 생물 다양성 감소가 심각한 문제라는 이야기는 이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다른 생물의 도움 없이 홀로 생존할 수 있는 생물이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지금 공생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주는 이 책에 관심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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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는 바로 '상리공생'으로 서로 이익을 보며 공생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자연에는 상리공생뿐 아니라 편리공생(한 쪽만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은 이익도 불이익도 없는 관계), 편해공생(한 쪽만 불이익을, 다른 쪽은 이익도 불이익도 없는 관계), 기생(한 쪽은 이익을, 다른 쪽은 불이익을 입는 관계)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관계가 있지만, 저자는 상리공생이야말로 인류뿐 아니라 생물의 진화 과정 전체에서 가장 흔하게 관찰할 수 있는 관계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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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먹이사슬로 대표되는 자연의 관계에서는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책에서는 상리공생을 통해 서로 번성하는 수많은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식물은 개미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개미는 식물의 번식을 돕는가 하면, 과일이라는 형태로 유인원들에게 먹이를 제공한 식물들은 유인원 덕분에 뿌리를 내린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한계를 극복하고 여러 지역으로 뻗어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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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간 역시도 수많은 상리공생 사례를 통해 진화해왔다.

불과 몇 세대 전만 하더라도 아프리카에서 발견되는 꿀잡이새와 인간의 관계가 돈독했다고 한다.

밀랍을 좋아하는 꿀잡이새가 소리로 인간을 부르면 인간이 와서 꿀을 따고 보답으로 새에게 밀랍을 남겨주는 방식의 거래였다. (본 책의 원제 역시 '꿀잡이새의 부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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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계가 비교적 직접적인 소통을 통한 방식이라고 한다면, 효모와 인간의 관계처럼 그저 취향과 진화의 방향이 맞아떨어져 발생하는 상리공생 사례는 더욱 많다.

효모가 주는 독특한 맛과 향, 알코올 등의 부산물은 인간을 끌어들이고 여기에 길들여진 인간은 양질의 효모를 번식시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의 진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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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술의 발달은 자연과의 많은 상리공생 관계를 깨뜨리는 방향으로 이어져 왔다.

설탕이 값싸게 공급되기 시작하자 더 이상 꿀잡이새의 소리에 인간이 반응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고, 질소 고정을 위해 콩과 다른 작물을 번갈아 심으며 지력을 유지하던 농법도 화학 비료로 대체되었다.

우리는 야생의 새와 맺었던 경이로운 관계를 버리고, 그 대신 거의 무한한 사탕수수와

그로 인해 태어난 거대한 노예제와 잔혹한 제국들,

그리고 결국 옥수수 시럽으로 그 관계를 대체했다.

(pg 133)

물론 이러한 변화가 인류의 숫자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킨 주요 원인임에는 틀림없다.

관점에 따라서는 지금 우리가 관계 맺고 있는 옥수수나 밀, 닭이나 돼지와 같은 동식물들과 새로운 상리공생 관계를 만들어왔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조류는 닭인데, 생물학적으로는 자손을 남길 가능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종은 번성했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야생 닭은 이미 멸종했고, 인류의 손이 닿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닭의 현재 모습이 과연 '번성'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지만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농업이 시작되었던 당시 인류가 맞닥뜨렸던 변화보다 훨씬 거대한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 시기 못지않게 풍요로운 '생각'의 번식이 필요하다. - 중략 -

어떤 공생 관계는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만들어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올바른

공생의 조건, 그리고 올바른 문화나 정책이라는 맥락에서만 가능하다. - 중략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공생을 선택할 것인가?

(pg 249)

그리하여 46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기나긴 여정의 결론은 무엇일까?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지금 이 순간이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할 순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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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지속가능성에는 수많은 동식물뿐만 아니라 균류, 미생물을 포함하는 거대한 생물군과의 상리공생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어떤 관계가 어떤 이익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생물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또 그들과의 상생을 위해 창의력이 필요하기에 과학자뿐 아니라 예술가나 요리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협업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희망하는 바는 우리에게 이익을 주는 생명 종들이

더욱 번성하는 세상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존재들을 이롭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에게도 이로운 세상 말이다.

(pg 464)

꽤나 두꺼운 책이지만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

생물들의 사례도 많고 서술적인 측면에서도 저자가 현학을 빼고 꽤나 유머를 곁들이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아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생물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명제는 참이지만,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는 책이라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좋은 교양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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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2027 편한 가계부 ㅣ 2027 편한 가계부
소울하우스 지음 / 소울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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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손으로 가계부를 쓰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싶지만 오히려 자동화되는 것이 많아질수록 직접 무언가를 하는 재미는 더 각광받을 것 같다.

AI가 그림을 그려준다고 해서 그림 그리는 취미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듯이 말이다.

급여는 늘 고정이고 대출과 상환이라는 심플한 금융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돈 관리 방법이라고는 절약밖에 없는데, 그 첫 시작으로 아내와 함께 가계부를 좀 써볼까 싶던 차에 좋은 기회를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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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파스텔톤의 네 가지 색깔로 출시된 가계부인데, 아내가 고른 색상은 '버터' 색상이다.

가계부를 처음 쓰는 병아리의 마음으로 쓰기에 딱 좋은 색깔인 것 같다.

표지(라일락 컬러는 2026 버전인데 표지 디자인은 같다)

처음부터 지출 현황을 쓰라고 하면 당황할 사용자를 위해 첫 장을 열면 소비 계획을 세우는 방법과 소비 습관에 관한 조언이 반겨준다.

돈이야 많을수록 좋겠지만, 수입을 마냥 늘리기는 불가능하니 현명하게 소비하는 것이 사실 생활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카드값 관련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밈을 보더라도 무심코 쓰는 돈이 모이면 꽤 큰 지출이 된다는 점은 많이들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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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는 연간 스케줄과 월별 소비 기록, 연간 결산에 이르기까지 지출 내역을 직접 작성해 보면서 소비 습관이 어떠한지를 체크해 볼 수 있다.

후미에는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는 노트가 마련되어 있어서 특이사항이 있을 때 별도의 수첩을 따로 쓰지 않아도 되게끔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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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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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가계부도 한 부 받아서 9월부터는 2026에 쓰고 오는 1월부터 산뜻한 마음으로 2027 가계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2027 버전에는 '정기 지출 자세히 살펴보기'란이 추가되어 있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고정지출이 꽤 큰 편이라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QR 코드를 통해 엑셀로 된 파일도 무료로 제공해서 귀찮은 계산까지 수작업으로 하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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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는 것이 균일해서 소비 패턴도 꽤나 균일한 편이지만, 이 기회를 통해 줄일 수 있는 부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내와 상의한 대로 이렇게 줄인 돈으로 아이의 미래를 위한 저축을 늘리거나 가끔 가는 여행비로 쓸 수 있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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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의 짧은 체류
스티븐 L. 펙 지음, 김항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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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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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페이지 정도로 제목처럼 정말 짧은 이야기지만 독자들을 엄청난 실존적 공포로 몰아넣는다는 책 소개에 강렬하게 이끌렸다.

서사가 짧으면 대체로 기억에 남는 강도도 적게 마련인데, 어떤 내용이길래 그렇게 짧은 분량 안에서도 충분한 공포감을 선사할 수 있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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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내용은 일면 간단하다.

한 남자가 지옥에 떨어져 겪은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제목이 반어법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작품 속 지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던 지옥과는 매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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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물리적인 공간부터 악마들이 채찍을 들고 유황불이 떨어지는 곳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큰 도서관 같은 형태로 되어 있다.

원하는 음식은 키오스크에 말하기만 하면 언제든 제공되고, 의복도 매일 새로 지급되며 일정한 시간에 잠들어 일정한 시간에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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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본인이나 타인이 일부러 가하지 않는다면 신체적인 고통도 받지 않는다.

심지어 전날 죽음에 이른다 하더라도 다음날이면 다시 눈을 뜰 수 있다.

이렇게만 보면 작품의 무대가 무슨 지옥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도서관에서의 삶이 왜 지옥인지를 한 장 한 장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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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의 임무는 딱 하나다.

그 거대한 도서관에서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책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는 이 도서관에는 일정한 분량 안에서 쓸 수 있는 모든 책이 존재한다.

저자가 계산한 바로는 95의 1,312,000제곱에 달하는 책이 있는 것이라 한다.

워낙 큰 숫자라 실감이 나지 않을 텐데, 이 우주에 존재하는 전자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수라고만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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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작품의 배경이 되는 도서관은 유한하다.

하지만 그 유한함이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무한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따라서 이곳이 지옥인 단 하나의 이유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한에 가까운 권태로움 속에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는 점에 있다.

존재보다 더 깊은 절망이 있다. 그것은 의식의 골수와 영혼의 자리까지 스며든다.

나는 영원히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지옥에서 어떻게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다른 선택은 없었다. 이곳에서 존재는 끝없이 이어진다.

유한이라 해도 그것이 무한과 아무런 현실적 차이를 느낄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pg 153)

모든 층이 똑같이 생긴 데다 만나는 사람들마저 미국에서 특정한 시기에 사망한 백인에 한정되어 있다.

사망자들의 인종적, 문화적 백그라운드마저 비슷하니 그들이 모여봤자 새로운 자극이랄 것이 금세 바닥나버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작게 무리를 지어 일정한 사회를 이뤄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이성과 교제를 하기도 하며 대학을 만드는 무리도, 사이비 종교를 만드는 무리도 생겨나지만 결국 무한에 가까운 시간 앞에서는 모두 허망한 것이 되기 마련이다.

무작위로 배열된 책들을 매 순간 수없이 들추면서 어쩌다 발견하는 '말이 되는 문장'을 찾는 정도의 희열이 그 지옥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 되고 만다.

당신이 믿어왔던 것을 지탱하던 모든 구조가 허구였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그 믿음은 어디로 가는 걸까?

우주적 질서도, 정언명령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pg 81)

결국 이 장소의 가장 잔인한 지점도 여기에 있다.

지루함을 견디기보다는 전기 충격 버튼을 누르고 만다는 심리학 실험도 있듯이 인간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무료함인데 이 무료함을 무한에 가까운 시간 동안 경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무한하지 않다'라는 것이 확인되지만 그 유한함이 인간의 상상력을 한참 벗어나는 것일 때, 인간은 실낱같은 희망조차도 품을 수 없게 된다.

기대는 선물과도 같다. 어쩌면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지도 모른다.

기대는 희망에서 태어난다. 실로 그것은 희망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이다.

그러나 그 희망을 잃을 때 찾아오는 것은 가장 깊은 절망이다.

(pg 160)

정말 명성 그대로 소름이 돋는 작품이었다.

읽으면서 저자의 상상력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었다.

평생을 무신론자로 살아왔지만, 정말로 지옥이 이와 같다면 지금부터라도 조로아스터교를 믿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로아스터교의 신들이 진짜 신이라는 설정이 있는데, 물론 저자가 블랙코미디로 만든 장치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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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에 비해 책값이 살짝 비싼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장담하건대 읽어보면 한없이 빠져들게 될 것이다.

특이하게도 저자의 본업이 진화심리학자이자 대학교수이기도 해서 발표한 소설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은데, 모쪼록 이 책이 잘 팔려서 다른 작품들도 국내에 출시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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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문해력 게임 6 ㅣ 나민애의 문해력 게임 6
나민애 지음, 이정태 그림, 김혜련 글 / 겜툰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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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학습만화에 대해 극단적인 두 가지 입장 중 하나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학습이기는 하나 만화만 봐서 어떡하나' 하는 입장과 '만화라도 좀 봤으면 좋겠다'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그 두 부류 모두에게 환영받을 만하다.

아이에게 독서를 권하는 주된 목적이 문해력 향상일 텐데, 이 시리즈는 바로 그 지점을 만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함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워낙 학습만화를 좋아해서 1권부터 보기 시작한 시리즈인데 어느덧 벌써 여섯 권째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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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탈락하는 서바이벌 형식의 게임을 진행해가는 내용인데, 6권이 되니 작품 속 게임 단계도 20단계에 이르렀다.

단계가 오르는 만큼 책 속에 담긴 국어 지식의 수준도 조금씩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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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의 시작은 '사실과 의견 구분하기'부터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가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딱 맞는 주제로 시작하니 원래도 좋아했던 시리즈지만 신뢰도가 더 높아지는 느낌이다.

사실과 의견의 구분은 성인들도 신경 쓰지 않으면 혼동하기 쉬운 부분이라 학교에서 배울 때 확실하게 배우는 것이 좋은데, 만화로 재미나게 관련된 연습을 해볼 수 있는 부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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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문장 속에 담긴 정보를 찾는 방법,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 찾기, 상황에 알맞은 말 고르기와 같은 문제들이 이어진다.

아주 쉬운 문제도 있는 반면, 꽤 고민해야 답을 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있어서 아이들이 도전의식을 가지고 끝까지 읽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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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는 만화로 되어 있기에 문해력 향상이라는 목표에만 초점을 두면 당연하지만 줄글을 쭉 읽는 것에 비해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책이라는 매체를 친근하게 만들 수 있다면, 또 학습만화의 내용을 다른 책에 적용해 독서 경험을 확대할 수 있다면 학습만화가 갖는 장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에 담긴 지식적인 측면도 적지 않은데 폭력성, 비속어, 저질 개그 등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 7가지를 제외하고 있음을 마케팅 문구로 활용하고 있을 정도로 내용도 좋아서 책과 친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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