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론 - 어떻게 마주 앉아 대화할 것인가
최재천 지음 / 김영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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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우리나라에 '통섭'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던 저자가 최근에 강조하는 단어가 바로 '숙론'이다.

흔히 우리는 토론을 할 때 반드시 상대를 꺾어 내 생각대로 만들어야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언제나 내 생각이 옳을 리 만무하고 사람들 사이의 의존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기에 상대와 함께 협력해 나가기 위해서는 발전적인 토론이 필수적이다.

'토론'이라는 단어에 이미 상대와의 싸움이 전제되어 있으므로 저자는 새로운 용어로 '숙론'을 제안한다.

숙론은 상대를 제압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나와 상대의 생각이 다른지 숙고해 보고 자기 생각을 다듬으려고 하는 행위다.

서로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식 수준을 공유 혹은 향상하려

노력하는 작업이다.

숙론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는 과정이다.

(pg19)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숙론 방식의 수업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토로한다.

그저 앞에서 떠드는 것을 듣고 시험 때 외운 정보를 토해낸 뒤 까먹어버리는 방식의 교육만 받아온 학생들이 서로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에 익숙할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저자가 몸담은 대학에서는 숙론 방식의 수업을 정착시켰고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고 한다.

특히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닌 팀 단위의 성과와 개인 성과를 모두 반영하고 학생들이 서로를 평가하게 하는 평가 방식도 흥미로웠다.

이어 다수의 위원회 활동에서 숙론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었던 사례들을 소개한다.

그중 돌고래 '제돌이'를 방류하기 위한 위원회 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였던 위원회 구성원들이 치열한 숙론 끝에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나서 후련하게 웃는 모습을 보였는데, 숙론을 통해 서로 할 말을 모두 토해 냈기에 후회가 남지 않아서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숙론은 사회 갈등을 해결함에 있어서도 효과적인 과정이기에 저자는 우리 사회에 이제 '숙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세대마다 시행착오와 발견을 반복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출발선을 이전 세대가 전진한 곳까지 옮겨놓고

거기서 시작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pg 7)

이러한 숙론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진행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책 후반부에는 좋은 숙론 진행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들이 소개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철저한 준비와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소극적이어서 의견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너무 발언권을 독점하는 사람들을 유연하게 저지하는 등 경험치가 있어야만 가능한 스킬들도 있었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나라임에도 한국 사회는 유독 갈등이 많은 사회다.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는 지역 갈등부터 요즘에는 남녀 갈등, 세대 갈등, 계층 갈등까지 인터넷을 조금만 돌아다녀도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숙론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무엇이든 빨리 배우고 빨리 적응하는 민족이기에 숙론의 문화 역시 그럴 것이라 전망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자만큼 긍정적으로 전망하지는 않지만, 그가 강조하는 숙론의 문화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었던 터라 그다지 새로운 내용을 알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저자의 최근작을 서너 권쯤 읽은 독자라면 나와 비슷한 감상을 얻을 것 같다.

하지만 내용도 좋고 저자의 책답게 술술 읽히는 맛도 좋았다.

이제 막 '최재천'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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