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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ㅣ 김동식 소설집 1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평점 :
- 책의 출처: 선물
모든 선물은 기분이 좋지만 특히 책 선물은 유독 기분이 좋다.
상대의 취향에 맞을까를 고민하는 과정이 쉽지 않고 받은 사람이 읽지 않을 리스크도 꽤 커서 선물할 때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물 받은 책이 내 취향에 잘 맞을 때의 기쁨도 굉장히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이 매우 컸다는 점부터 언급하고 싶다.
저자의 이력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굉장히 특색 있다.
공장 노동자로 살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꾸준히 글을 올렸던 것이 인기를 끌자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시작이 인터넷이라서 그런지 작품들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다.
300페이지 중반으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 무려 24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서사가 너무 짧은 이야기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일단 작품들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나름의 완결성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각각의 작품들을 읽고서 '이 뒤에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은데' 싶은 찜찜함이 남지 않는다.
또한 각각의 이야기들이 장르도 다르고 그 소재도 제각기 다 다르다는 점도 장점이다.
표제작이자 포문을 여는 작품인 '회색 인간'부터 강한 인상을 남긴다.
간단히 요약하면 기이하게 끌려간 인류가 고된 노동 속에서도 예술을 꽃피운다는 이야기인데 그 결말이 상당히 인상 깊다.
사실 먹고사는 데에 예술이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시대가 된 지금, 경제 활동을 모두 AI가 도맡아 하는 세상이 오면 인류에게 마지막 남은 삶의 의미는 곧 예술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생성형 AI라는 단어조차도 없을 시기에 저자의 상상력이 도착한 지점이 현재에 예상할 수 있는 인류 미래와 유사하다는 것은 그의 작품이 그저 기발한 상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수록작 중에는 이 작품처럼 고립된 인간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를 상상한 작품들이 꽤 많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싸우다 다 같이 멸망하는 결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애를 발휘하며 살아남는 결말도 모두 존재한다.
중요한 점은 둘 다 인간의 본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상대를 제거할 수 있는 잔인함도, 다 같이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를 나누고 상대와 함께 힘을 합칠 수 있는 지혜도 모두 인간이 가진 본성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아직 페이지가 남아 있을 때 도서관을 들러 저자의 다른 책들을 빌려왔다.
창작열이 상당한 저자답게 이미 나온 책들이 꽤 많아서 당분간 저자의 작품 세계를 여유롭게 탐험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