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사면 과학 드립니다 과학 드립니다
정윤선 지음, 시미씨 그림 / 풀빛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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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의 독서욕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어린이용 책도 자주 접하는 편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아이에게 추천해 주는 책들의 성공률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어린이용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부모 마음에도 들고 아이의 반응도 좋으면 '이 책은 시리즈로 나와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는데, '과자 사면 과학 드립니다'라는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역시 그랬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통해 과학 이야기를 풀어내는 접근법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이번에는 싫어하는 아이를 찾기 힘든 라면이라는 소재로 돌아왔다.



물론 라면은 식품 공학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기술의 산물이다.

특히나 컵라면의 경우 언제 어디서든 뜨거운 물만 있으면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니 그 안에 담긴 과학도 방대할 것이다.

이미 받아진 물에 포함된 열로만 익혀야 하는 방식 상 뚜껑을 잘 덮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를 아이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아쉽게도(?) 제목처럼 라면에 대한 과학 이야기는 표지에 등장하는 두 개의 컵라면 이야기가 전부다.

대신 편의점에서 아이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는 과자와 아이스크림, 음료와 샌드위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것질거리들에 담긴 과학 이야기가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탄산음료를 매우 좋아하는데 건강 때문에 제로로 바꾼지 꽤 되었다.

이 제로 칼로리 탄산음료에 대한 이야기도 한 꼭지 수록되어 있어서 관심 있게 읽었다.

과학의 발전은 인류의 식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지금 아이들이 먹는 음식들은 불과 몇 세대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한 것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변화가 우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항상 긍정적이지는 않겠지만, 굶주리는 사람을 줄여왔다는 분명한 사실 앞에서는 과학의 힘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이들도 우리가 편하게 먹는 음식들에 수많은 과학적 원리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면, 무심코 먹는 음식들이 단순히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구와 노력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가 이 책을 읽고 나면 무언가를 먹고 싶어 한다는 사소한(?) 단점 외에는 장점으로 가득한 책이므로 아이를 둔 부모라면 관심 있게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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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의 김남우 김동식 소설집 3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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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e북으로 읽었으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 발췌문에 페이지는 생략함)

저자의 이름을 인지한 지 한 달이 좀 넘었는데 벌써 세 번째 읽는 저자의 책이다.

이 작품 역시 그리 길지 않음에도 스무 개가 넘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처럼 '김남우'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물론 저자의 작품집 속 인물들은 늘 몇 가지 이름으로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보다 이 책만의 특징이라고 하면, 다른 작품집보다 강간이나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를 다룬 작품들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읽은 두 권의 작품집이 주로 SF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 위주여서 그런지 이번 책만의 색채가 더욱 강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물론 이번 작품집도 저자 특유의 간결한 서사와 예상치 못한 막판 반전의 재미는 유효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보다 재미있었던 점은 강력 범죄를 다루면서 일반 대중들의 '법감정'을 대단히 민감하게 캐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미 대한민국에서 강력 범죄에 대한 처벌이 낮다는 인식은 실제로 그러한지에 대한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강력 범죄들의 대법원 판결이 뉴스에 오르면 '저러니 강력 범죄가 끊이지 않지', '판사 자식이 당해도 그렇게 판결했을까', '나라가 범죄를 부추긴다'와 같은 댓글들이 금세 베스트에 오르게 마련이다.

그만큼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처벌 수준에 실망한 경험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대중들의 감정을 달래주듯 읽는 이의 공분을 살 법한 강력 범죄자들을 만든 뒤, 사적 제재를 포함한 단죄의 칼날을 가감 없이 휘두른다.

그러면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런 결말이라면 만족하겠어?'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너희들이 상상했던 그 이야기들이, 너희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야.

이런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현실.

너희들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야.

정말, 끔찍하게 무서운 이야기 아니야?

('김남우 교수의 무서운 이야기' 中)

물론 개인적으로 사적 제재를 옹호하는 입장에 있지는 않다.

저자의 결말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은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대혼란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도 잔혹한 범죄자들에게 복수에 가까운 처벌을 한다는 이야기가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다는 점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권선징악은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인류의 '최애 주제'라 할 수 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도덕적 소명이 사회에 존재하는 한 그 주제가 주는 재미는 반감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역시 언제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보장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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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깨어라 - 헤르만 헤세 청춘소설 3부작,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지음, 송동윤 옮김 / 스타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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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저자 이름은 익숙하지만 책 제목은 생소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지은 작품의 제목이 아니라 그의 대표적인 성장 소설들을 하나로 묶어낸 책으로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까지 총 세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읽었던 데미안을 제외하면 처음 접하거나 옛날에 읽어서 기억이 나지 않아 꽤나 생소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

포문을 여는 작품은 학창 시절에 읽었던 '수레바퀴 아래서'다.

워낙 옛날에 읽어서 그때의 감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는데, 그때는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숨 막히는 작품이었는지 잘 몰랐을 것 같다.

오히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감정 이입이 더 잘 되는 느낌이었다.

정말 단어 의미 그대로 주변의 기대에 억눌린 한 청춘이 서서히 숨이 막혀가다 쓰러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30여 년을 자식으로만 살다가 한 아이의 아버지로 산 삶이 어느덧 10년을 넘어가니 지금은 주변의 기대라는 것만큼 양날의 칼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은 부모가 자신에게 전혀 기대를 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도 실망하지만, 반대로 너무 큰 기대를 쏟아 그 기대에 부응하기 벅찰 때에는 자괴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 작품 속 '한스'는 주변의 기대에 맞추는 삶을 살다 잠깐 발을 헛디뎠을 뿐인데 결국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끊임없는 남과의 비교, 실패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늘 부족했던 지금 여기의 사람들도 누구나 한번은 자각했던 바일 것이다.

자칫 여기서 한 발짝만 잘못 디디면 지금의 위치에서 영원히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가혹한 현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지쳐 버린 노새는 길가에 쓰러져, 더는 쓸모가 없게 되어 버렸다.

(pg 145, '수레바퀴 아래서' 中)

이어지는 '데미안'은 비교적 최근에 읽었던 적이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두 번째 순서로 읽으니 그 감상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첫 작품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결국 찾지 못한 채 스러져간 청춘의 이야기라면 이 작품은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바에 비교적 근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살면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스'에게는 그의 방황을 지켜봐 줄 누군가가 전혀 없었지만, '싱클레어'에게는 자신의 실수를 이해하고 지켜봐 주며 진정한 충고를 건네는 '데미안'이 있었다.

그래서 '한스'가 결국 자신까지 파괴하는 결과에 도달했다면 '싱클레어'는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서도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었다.

눈을 뜬 인간, 이성의 영역에 발을 디딘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는 단 하나,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다. 결의를 굳히고 각오를 새로 하여,

손으로 더듬어서라도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것.

그 밖에는 어떤 임무도 없다. 원래 없었다.

(pg 398, '데미안' 中)

마지막에 수록된 '싯다르타'는 이번 기회에 처음 읽게 되었다.

제목만 보고서는 당연히 우리가 익히 아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작품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석가모니는 이 작품 속에서도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의 본명을 딴 싯다르타라는 인물은 젊은 시절 석가모니를 만나 큰 감화를 받지만 그를 추종하는 것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이 직접 진리를 얻어보겠다며 큰 소리를 치고는 온갖 방황을 스스로 경험한다.

이야기의 전개가 꽤나 신선했는데, 보통은 세속에 찌들어 있던 인물이 어떤 계기를 통해 고행이나 수행에 떠나게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 속 싯다르타는 오히려 젊은 시절에는 고행과 단식을 이어가다 청장년기에 온갖 세속적인 삶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세속적인 즐거움, 즉 부와 명예, 주색과 도박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들에 빠져버린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의 타락을 인지하고는 다시금 수행자로 돌아가는 삶을 살게 된다.

그는 결국 지식, 즉 언어로 전해지는 것들을 통해서는 세상을 관통하는 진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어릴 적 생각대로 살아간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근원적인 샘물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결국 탐색일 뿐, 돌아가는 길이며,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 될 수 있다.

(pg 459, '싯다르타' 中)

이 작품에서 싯다르타가 가진 특별한 능력은 바로 누구에게서나 무언가를 배우는 능력이다.

작품 속에서 직접 자신은 여러 사람에게 배운다고 언급한다.

심지어 장사꾼이나 도박꾼에게서도 배운 것이 있다고 말이다.

결국 그는 노년에 접어들어 강에게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길을 발견해야 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고민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는 결코 자신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 순간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면서 동시에 영향을 받는다.

물론 같은 자극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그 반응은 다를 것이므로 주변의 영향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지는 스스로에게 달려있겠지만 말이다.

세 작품을 연이어 읽고 나니 왜 이 작품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었는지도 어렴풋이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주변의 기대에 지쳐 요절한 한스를 지나면 청춘을 바쳐 자신의 길을 찾고자 했던 싱클레어를 만나고, 마지막에는 온갖 삶의 모습을 경험한 뒤 노년의 몸으로 강에서 깨달음을 구하는 싯다르타를 만나게 된다.

이 세 사람이 보여주는 방황과 고뇌의 길은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모습들일 것이다.

세 작품이 수록된 만큼 꽤 두꺼운 책이지만 수록작들이 워낙 훌륭해서 그런지 읽는 과정이 그리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 작품을 각각 접할 때와는 다른 경험을 가져다 줄 것이므로 이미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 순서대로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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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시적인 과학, 당신을 위한 최소한의 우주
우주플리즈 지음 / 모티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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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요즘 많은 과학자들이 유튜브를 통해 과학 지식의 대중화에 나서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과학 콘텐츠들을 즐겨 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과학 유튜버라고 하는데 알고리즘이 아직 인도해 주지 않은 탓인지 처음 들어봤다.

이미 인기도 많다고 하고, 과학을 시적이라 표현하고 있는 점이 재미있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저자가 천문학을 전공한 학자는 아니라 밝히고 있기도 하고, 기본 내용이 유튜브 콘텐츠 기반이어서 담긴 내용이 아주 어렵거나 전문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그만큼 전혀 기초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첫 시작으로 우리의 직관을 아득히 뛰어넘는 우주의 스케일부터 언급한다.

태양의 크기가 축구공만 하다면 우리 태양계를 이루는 행성들의 크기와 위치는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인데, 이 내용부터가 꽤나 재미있다.

특히 사진 자료가 굉장히 많은데 광화문에 축구공을 두고 직접 찍은 것 같은 사진들이 흥미를 끈다.

지구는 축구공에서 23미터쯤 떨어져 있는 깨 한 알에 해당한다.

인류가 매일 지지고 볶고 사랑하고 싸우고 죽고 태어나는 이 행성도 태양계 스케일에서는 깨 한 알에 해당하는 것이다.

물론 태양계를 넘어 은하계, 우주 전체로 나아가면 먼지 한 톨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어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태양계 행성들의 특징들을 알려준다.

천문학에 대한 지식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양 수준으로 태양계 행성의 순서와 특징을 공부하기에 딱 좋을 수준의 정보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최근에 개봉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젝트 헤일메리' 속 우주 아메바가 왜 태양에서 더 가까운 수성이 아닌 금성 주변에서 발견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저 붉고 차가운 화성에 제2의 지구를 개척하겠다는 위대한 꿈을 꾸기 전에,

우리는 어쩌면 이미 너무나 완벽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이 첫 번째 기적,

지구를 다정하게 껴안고 사랑하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pg 120)

태양의 중력이 영향을 미치는 카이퍼 벨트와 오르트 구름을 넘어서면 우리의 은하와 그 너머 이야기가 펼쳐진다.

물론 지구에서 멀수록 인류가 밝혀낸 정보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의 분량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 은하의 모습과 은하의 종류, 은하가 존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지만 아직 그 실체를 밝혀내지 못한 암흑 물질의 소개까지 난해하지 않을 수준에서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인류가 우주를 연구하는 이유가 단순한 호기심이나 경제적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부정할 수 없는 우리라는 존재는 어떻게 생겨났고, 또 왜 이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만 발견되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그토록 특별한 존재인 것일까?

아니면 우주에 널린 별과 행성들처럼 수많은 존재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일까?

지구를 닮은 행성을 찾는 이유는, 외계 생명체라는 타자와 조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끔찍하도록 넓고 차가운 우주 속에서,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이 작은 요람이

얼마나 기적처럼 빚어진 위대한 우연인지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pg 189)

전반적으로 제목에 굉장히 충실한 책이다.

막연하게 우주가 궁금하다고 생각했을 때 떠올릴 수 있을법한 최소한의 정보들이 잘 담겨 있고, 서술도 현학적인 부분 없이, 제목처럼 때로는 서정적이기까지 할 정도로 잘 기술했다는 느낌이다.

책 자체의 디자인도 좋고 사진 자료도 매우 많아서(게다가 모두 컬러다!) 책이라는 매체에 흥미가 덜한 어린 청소년들에게도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 천문학자의 책을 몇 권 읽은 터라 새롭게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느낌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어설프게 기억하고 있었던 정보들을 제 자리에 잘 정리하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시각적으로도 읽는 재미가 쏠쏠해서 책이나 과학과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감히 우주의 물리 법칙을 거스를 수 없는 유한한 육신을 입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무자비한 법칙을 관찰하고, 거리를 측정하고,

별의 죽음을 애도하며, 우주를 한 편의 서정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

저 차갑게 팽창하는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지구 위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삶은 먼지보다 미세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작은 먼지 위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고뇌의 밤을 지새우며,

선택에 책임을 지고, 잊혀지지 않을 추억을 새긴다.

이 모든 삶의 궤적은 우주 전체의 무게로 달아보면 티끌 같겠지만,

우리 자신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한한 우주 그 자체다.

(pg 24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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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 노벨상 과학자가 평생 붙잡은 질문
알렉시스 카렐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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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인류가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가장 많이 했을법한 질문이 곧 제목인 책이다.

의사이자 생물학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저자가 약 100년 전에 출간했던 책인데 지금 세상에서도 유효한 메시지들이 많다는 소개에 호기심이 일어 읽어보게 되었다.

먼저 저자는 우리가 여태까지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은 굉장히 광범위하게 넓혀왔으나, 정작 우리를 비롯한 생명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언젠가 다른 과학 교양서에서 읽었던 비유인데, 인간을 구성하는 원자를 모두 한 상자에 넣고 흔들면 인간 비슷한 무언가가 짠하고 나올 가능성이 있을까?

이처럼 우리는 빅뱅 후 몇 나노초 이후도 설명할 수 있지만, 지구상에 몇 십억이 넘게 존재하는 인간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기능하는지는 정작 너무 모르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100년 전에도 철학, 의학, 생물학, 심리학 등 여러 분야에서 인간을 연구한 결과가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학문별 시각이 통합되지 못해 인간을 전체적인 시각으로 조망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책의 중반까지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당시까지 알려진 바대로 세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마인드 업로딩 기술에 대한 회의론자들도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아서 꽤나 흥미로웠다.

우리의 감각 기관도 곧 연장된 뇌의 일부분으로 본다면, 뇌에 담긴 정보가 온전하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한 개체라고 볼 수 있는지 다양한 철학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되었다.

중반을 넘어서게 되면 우리는 태어난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적 존재라는 시각이 등장한다.

이 지점부터 저자의 통찰이 빛을 발한다.

우리가 만들어온 문명화된 사회가 곧 인간의 적응 기능을 약화시켜 인류를 더욱 약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산업주의는 인간이 일상 속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정신 활동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현대 문명은 물건을 생산하는 대가로 정신을 희생시키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 중략 - 현재의 산업 문명은 공장 노동자로부터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빼앗아 갔다.

우리가 현대 문명사회에서 저속하고 우울한 감정을 자주 경험하는 이유는,

일상생활 속에서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심미적 기쁨을 느끼지 못하도록

현대 문명이 우리를 부분적으로 억압하기 때문이다.

(pg 200)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끊임없이 만들어져 간다.

(pg 278)

우리 몸과 정신은 모두 쓰지 않는 기능을 잊도록 만들어졌다.

어릴 때 책을 읽지 않으면 노년이라고 해서 읽기 능력이 갖추어질 리 없고, 운동하지 않으면 금세 자신이 할 수 있는 동작의 범위가 제한된다.

외부의 온도가 변화할 때나 먹을 것이 부족해질 때 신체가 적응하는 과정과 같은 것들이 사실 우리를 강인하게 만드는데, 현대 문명은 이러한 기능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도 저속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만 추구하며 도덕적 성장은 등한시하는 세태가 우려된다는 내용도 지금 사회에서도 유효할 통찰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날 인간은 편안함과 아름다움,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기계적 경이로움 속에 둘러싸여 있다. - 중략 -

더 나아가, 인간은 자신이 점차 퇴화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그러니 자신의 존재 방식과 생활 방식, 사고방식을 스스로 변화시키려

노력해야 할 이유를 어찌 알겠는가.

(pg 398)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시대적 한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굳이 원문으로 옮기지는 않겠으나 지금 세상에서는 명백하게 성차별이라 볼 수 있는 내용도 꽤 있고, 저자 스스로가 엄청난 엘리트라는 점을 반증하듯 엘리트주의가 물씬 느껴지는 내용도 많아 읽으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부분도 적지 않다.

아래와 같은 부분도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이해할 수 있겠으나, 보편적으로, 그리고 대외적으로 떳떳하게 발언할 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므로 읽을 때 각자가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인류는 다수의 평범한 노력으로가 아니라, 소수의 비범한 인간들이 지닌 타오르는 열정과 빛나는 지능, 과학과 관대함, 아름다움을 향한 이상에 의해 전진해 왔다.

(pg 213)

더 나아가 모든 인간에게 장수의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도 의문이다. 인간이 질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채 양적으로만 증가하는 현상은 극히 위험하다.

지적 퇴화와 도덕적 쇠퇴, 그리고 노년기에 장기간 머무는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 때까지는

100세 노인의 수가 증가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pg 263)

400페이지 중반으로 꽤 두꺼운 데다 내용도 방대하고 지금 시점에는 맞지 않는 내용도 많아서 읽는 재미를 주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한 권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 사회적 측면에 대한 고찰을 읽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10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할 때 기술적인 발전을 제외하면 인간의 본성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새삼스러운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읽는 과정은 꽤나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읽고 나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변화한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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