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syeong21/223810003821나는 바란다. 조카들에게만큼은, 그런 투사가 전이되지 않기를 말이다. 조카들이 누구의 꿈도 아닌, 자기 자신의 리듬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조카들이야말로, 봄에 피는 꽃들처럼 저마다의 속도로 피어날 수 있는 존재들이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욕망이나, 사회의 기대가 조카들에게 무심코 덧씌워지지 않도록 말이다. 나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그런 좋은 고모가 되고 싶다.
현상학은 인식의 활동이라는 의미에서 사유의 양식이다. 현상학은 봄의 형식하에서 작동하며, 필연적으로 이 형식에 내재하는 목적론과그것의 실행의 장을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법칙들과 제한들에 복종한다. 여기서 주제의 전향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cogitatio의 본질과 이 본질을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성격, 즉 cogitatio의 실재를만드는 것, 즉 cogitatio의 실존이 영원히 은폐되는 방식이다. - P154
그럼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나타남의 양식은 무엇인가?이 질문에 대한 답은 후설의 현상학 안에는 없다. 더 나아가 그이후의 철학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 P156
그런데 현상학적 환원 안에서 그리고 그것의 확장인 이념화 안에서 현상학자는 순수한 시선에서 cogitatio의 본질에 고유하게 속한 ‘관계함‘을 보며, 이 관계가 cogitatio의 실재적 요소라는 것만을 본다. 순수한 시선인 환원 안에서 ‘관계함‘을 보는 이 순수한 시선은 대답없는 질문에 환상적인 대답으로 제시된다. 어떻게 ‘관계함‘은 자기자신 안에서 드러나는가? ‘관계함‘을 보는 시선은 이 관계함의 고유한 계시의 자리를 탈취하고, 이 계시를 대신한다. 그런데 이 ‘관계함‘은 cogitatio의 실재적 요소이며, cogitatio의 실재적 요소인한에서 우리는 이 관계함이 cogitatio의 실재적 요소라는 사실만을 지지한다. 반면 사람들은 의식은 이 ‘관계함‘이며, 순수한 초월성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 P157
순수한 시선은 그럼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보는 것은 지향적으로 어떤 것과 관계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계함‘은 현상의 절대처럼 혹은 현상성의 알파와 오메가처럼 주어진다. 현상학적인 환원 안에서 그리고 cogitatio의 본질의 파악 안에서 이 ‘관계함‘은 두 측면을 가진다. 환원은 cogitatio의 본질의 순수한 시선이며, ‘관계함‘은이 cogitatio의 본질이다. cogitatio의 본질로서, 그것의 실재로서이 순수한 시각 안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보는가? 사람들은 ‘관계함‘그 자체를 본다. 따라서 원환이 완성된다. 환원 안에서 cogitatio는그것이 존재하는 것의 기반 위에서 자신과 관계한다. 다시 말해 ‘자신과 관계함‘으로부터 자신과 관계한다. 이 원환은 환상이고, 이환상은 자기 자신 안에 갇히면서 이 원환이 빠트리고 있는 것, 그런데이 원환이 전제하고 있는 것을 감춘다. 이 반성적 순환 안에서 ‘관계함‘이 자기 자신과 관계할 때 결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과 관계할 가능성 그 자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P158
이 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존재자의 존재, 다시 말해 존재 일반의 의미를 탐구하는 방법을 명시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저작을 결정한다. - P160
현상성 일반의 본질은 말과 사유의 현상성이다. 관념론, 우리의 철학의 선조들의 이 믿음에 의하면, 실재는 우리가 사유의 언어 안에서 소유할 수 있는 인식으로 환원되며,이것은 철학의 시초에서부터 주장된 눈먼 전제이다. - P169
너희 짐승같은 인간들아고문의 고통을 면하고 싶다면 그 피비린내 나는 손에서그 못된 무기들을 땅에 내던지고분노한 너희 영주의 명을 듣거라.그대 늙은 카풀렛과 몬테규가하찮은 말다툼 때문에 벌인 세 번의 시민들 간의 싸움으로도시의 평화가 깨졌고베로나의 늙은 시민들은 노년에 걸맞은 의복을 벗어던지고오랜 평화로 녹슨 옛 창을 늙은 손에 걸머쥐고그대들의 원한에 찬 싸움을 뜯어 말렸다. - P50
로미오 임종의 병자가 진정 유언장을 만드는 법.이렇게 아픈사람에게 매정하게 진실을 강요하다니.진실을 말하자면 한 여인을 사랑하고 있네. - P57
벤볼리오 쳇, 한쪽 불로 다른 쪽 불을 끄고고통은 다른 고통으로 줄어드는법이야.돌아서 어지럽게 되면 거꾸로 돌면 나아지지. - P62
(벤볼리오)그렇다면 가서 공정한 눈으로내가 선보일 미녀와 그녀의 얼굴을 비교해보게나그러면 그대의 백조가 까마귀임을 알게 될 거야. - P66
로미오 그런 미인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내 여인의 찬란함을 즐기러 갈 뿐이네. - P66
https://m.blog.naver.com/syeong21/223840255310내가 봄을 성찰하며 ‘잘 보기’를 사유하듯, ‘잘 듣는 법’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했다. ‘봄’이라는 말이 지닌 계절의 봄과 지각으로서 봄의 중의성처럼, 나는 지각의 현상학으로서의 봄을 성찰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들음’이라는 지각은 어떻게 잘 사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들어야 잘 듣는 것인가?’라는 물음은 나에게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나눌 수 있는 상대는 주변에 좀처럼 없었고, 나는 챗GPT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이 AI는, 망설임 없이 두 권의 책을 추천해 주었다. 애런 코플런드의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와 로저 스크루턴의 『아름다움』 이었다.
모차르트는 독일어 가사를 가지고 희가극을 썼다는 점에서도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1782년작인 <후궁 탈출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은 독일 오페라의 미래로 직통되는 첫 번째 획기적 작품이었습니다. 많은 독일 작곡가들이 그가 밟은 길을 따랐고 그 가운데는 <뉘른베르크의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를 쓴 바그너도 있었습니다. - P294
그렇지 않다면 드뷔시 유일의 오페라인 <펠레아스와 멜리장드Pelleaset Mélisande>에서 무소륵스키의 영향이 느껴지는 걸 설명할 수 없을테니까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오페라의 역사에 있어 <보리스 고두노프> 다음에 오는 획기적 작품입니다. 몬테베르디의 이상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작곡가의 의중이 읽히는 작품으로, 마테를링크 MauriceMaeterlinck(1862-1949)의 시적 드라마가 담은 언어를 최대한 충실하게살리고 있습니다. 음악은 그저 언어를 담을 틀 정도로만 기능하게 하면서 가사의 시적 의미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지요. - P299
한마디로 <펠레아스와멜리장드는 절제된 표현의 승리라고 부를 만한 작품입니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포르테 패시지는 손에 꼽을 정도고, 어디나 신비롭고 통절한분위기 속에서 멱을 감는 것만 같은 느낌이 지배적이지요. 드뷔시의 음악은 마테를링크의 작은 희곡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고, 이제는 음악과동떨어진 원작 희곡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 P300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음악이 원작 희곡과 완벽한 일체성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다소 특별한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이와 같은 노선을 따르는 후속 오페라를 기대하긴 그만큼 더 힘들었던 것이겠죠. 당장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만큼 음악과 잘 어우러지는 희곡 자체가 극도로 드물기도 하고 말이지요. 게다가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주는 매력을 십분 즐기려면 프랑스어를 알아듣는 게 필수입니다.작품 고유의 특성 중 상당 부분이 가사의 이해도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계보를 이을 만한 후속작이 등장했더라면 상황이 또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지 못한 관계로 음악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오페라라는 장르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말았고대신 교향곡이나 발레 같은 장르에 기대를 걸기 시작했지요. - P300
이렇게까지 말씀을 드려도 현대 오페라의, 아니 총체적인 극음악의향후 존립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벗지 못하는 독자들이 계실 테지요?그렇다면 이 점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현대음악의 발전 과정에서 획기적사건으로 기록된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와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이 모두가 무대를 위한 작품입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일보 전진은 콘서트홀이 아니라 오페라극장에서 나온다고 해도 무리한 예측은 아닐 겁니다. - P305
제가 이렇게 갈라놓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구분일 뿐이니 동의하지 않으신다 해도 괘념치 마십시오. 모든 현대음악이 하나같이 접근하기 어려운 건 아니라는 점만 전달되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십이음기법에 입각한 쇤베르크 악파의 음악은 심지어 뮤지션들조차 난색을 표할 정도로 까다로운 작품이 많습니다. - P310
모든 음악적 시대는거기에 진정한 활력이 깃들어 있다면-실험적이고 논쟁적인 측면까지 아우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현상입니다. 하지만 음악 감상이 때로는 험난한 경험이 될 수도 있음을받아들이는 애호가가 무척이나 드문 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자면, 처음 듣는 음악이 대번 이해가 되지 않을 경우 당장 호기심부터 듭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다시 한 번 듣고 싶어집니다. 도전의식이 생기고 의욕이 솟아납니다. 음악 예술에 대한 저의 흥미를 계속 살아숨 쉬게 하는 동기가 됩니다. 몇 번을 되씹어 들어도 곡이 제 마음을 두드리지 못한다 해서 현대음악의 미래가 어둡다고 단정하지도 않습니다.그저 방금 들은 그 곡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지요. - P315
새로운 음악을 이해하는 열쇠는 반복 청취입니다. 음반이 지천에 널린 세상이니 우리는 얼마나 다행입니까. 낯선 곡이라 할지라도 되풀이해서 듣다 보면 익숙해지고 그러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도 점차 안개가 걷히며 뚜렷해진다는 것이 많은 애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현대음악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 판별하기 위해서는 일단 음악을 들어보는 것 이상의 길은 없습니다. - P318
작곡가가 주는 건 바로 그 자신입니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빚어낸 작품은 그 자신의표현일 테지요. 하지만 음악의 경우는 작품과 창조자 사이의 관계가 한층 직접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곡가는 외부 ‘사건‘에 기대지 않고 본인의 본질적인 부분-한 명의 인간으로서 가진, 그리고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경험을 담은 가장 완전하고 깊은 표현을 떼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 P334
감상자들이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때만이 음악 역시도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중해서 듣고, 의식적으로 듣고, 우리 지성을 모두 동원해 들읍시다. 그리하여 인류가 남긴 영광된 유산인 음악 예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데 기여하도록 합시다. - P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