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관점에서 볼 때, 거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참상을 우리는 매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나 여자가 시장 안에서 푹 쓰러지나 싶더니 그대로 숨이 끊어지는 예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이미 몸속에 병균이 침투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조금도 깨닫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대체로 체내의 종기가 이미 중추부에까지 침범해 있어죽을 때에도 순간적으로 쓰러지는 것이다. 거리를 거닐다가 갑자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도 대개 그런 사람들이었다.
-알라딘 eBook <전염병 연대기> (다니엘 디포우 지음, 박영의 옮김) 중에서
이와 같이 선착장에 피신했던 사람들이 받았던 고통과 슬픔은 실로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아마도 만민의 동정을 받을 만한 참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 살기에만 급급했다. 타인의 고뇌 따위에는 신경을 쓸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사신(死神)이 한 집한 집 문을 두들기고 돌아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중에는 자기 집 안에서 이미 사신에 걸려 있는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디로 갈 것인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머물러 있다가 그만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정이고 뭐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일이 이쯤 되면 너 죽고 나 살자 하는 판국이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죽자 살자 하는 살얼음판이었다.
-알라딘 eBook <전염병 연대기> (다니엘 디포우 지음, 박영의 옮김) 중에서
그의 놀라움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아기 엄마를 놀라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아기를 어미의 품에서 안아다 광주리 속에 눕혔다고 한다. 그리고 즉시 옷을 벗겨 보니 아기의 몸에 이미 병의 징후가 역력하게 나타나있었다고 한다. 약제사는 그 용태를 아기 아버지한테 털어놓고, 그 남편에게 먹일 예방약을 가지러 집으로 갔는데, 그가 돌아오기도 전에 이 가련한 모자는 둘 다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경우 아기가 수유 중인 어미에게 병균을 옮긴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가 아기에게 감염시킨 것인지 도대체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후자 쪽이 더 신빙성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알라딘 eBook <전염병 연대기> (다니엘 디포우 지음, 박영의 옮김) 중에서
같은 이유로 우리는 모든 개와 고양이를 죽이라는 당국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대체로 이런 가축들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굴러다녔으므로 자연히 그 털에, 특히 보들보들한 솜털 같은데에 감염 환자의 몸에서 나온 병균을 묻히고 다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따라서 유행 초기에 의사의 권고에 의해서 시장 및 관계 당국자로부터 모든 개와 고양이는 즉시 죽여 버리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은 극히 당연한 처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명령을 시행ㆍ 감독하기 위하여 특별히 관계관을 임명할 정도였다.
-알라딘 eBook <전염병 연대기> (다니엘 디포우 지음, 박영의 옮김) 중에서
이것이 대체로 7월 초순의 일이었다. 이미 페스트는 런던의 서부, 북부까지도 밀어닥쳤는데 먼젓번에도 말했듯이 워핑, 레드리프, 라트클리프, 라임 하우스, 포플러, 즉 레드리프나 그리니치 일대 그리고 하미티치 및 그 아래에서 브로콘웰에 이르는 템스 강변 양쪽에는 아직까지 완전히 재해를 면하고 있었다. 스티프니 교구에서는 어디를 찾아보아도 페스트로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화이트 치어풀 가(街)의 남쪽도 그러했다. 더구나 실제로 그 주간의 사망자 수는 런던 전체에서 1천6명에 달했다는 것을 <사망주보>는 보도했다.
-알라딘 eBook <전염병 연대기> (다니엘 디포우 지음, 박영의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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