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정감성과 눈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하지 말아야할 일은 이 감정을 곧바로 지향성으로 해석하는 일, 또 그럼으로써 이감정을 무에 대한 열림 또는 무와 결합된 존재에 대한으로, 존재론적 차원의 열림으로 환원하는 일이다. 후설에게서 정감성-재현의 결합이 문제가 되었듯이, 여기서 물어보아야 할 것은 과연 모든 정감성이 무의 임박함으로 이해된 불안으로 거슬러 올라가는지의 여부다. 모든 정감성이 자신의 존재에 머무르고자 집착하는 존재자(코나투스) 속에서만 깨어나는 것인지, 코나투스가 인간의 인간성인지, 인간의인간성이 그가 존재해야함인지를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불가피하게 우리를 하이데거에 대한 논쟁으로 이끈다. - P33
시간은 존재의 제한이 아니라 무한과 맺는 존재의 관계다. 죽음은 무화가 아니라 질문이다. 무한과의 관계 즉 시간이 생산되는 데 필수적인 질문이다. - P33
죽음은 죽음이라는 고유한 사건 속에서 묘사되기보다, 그 자신의무의미를 통해 우리와 관계한다. 죽음이 우리의 시간(=무한과 우리가맺는 관계 속에서 자국을 남기는 것처럼 보이는 그 지점은 순수한 물음의 지점, 곧 순수한 물음표다. 즉 그것은 어떠한 응답 가능성도 제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림이다. 그것은 이미 존재 너머와 맺는 관계의한 양상인 물음이다. - P37
여기 코나투스보다 더 인간적인 인간의 사안이 있다. 그것은 깨어-버팀tenue-en-éveil이고, 경계(‘~에 대한 경계‘가 아닌 경계)다. 이것은자신의 동일성 속에서 스스로를 충족하는 대자對自: pour-soi가 타자의흡수 불가능한 타자성에 의해 깨어나는 것이고, 자기에 취해 있던 동일자가 끊임없이 일깨워지는 것dégrisement이다. 이런 깨어남은 깨어남속에서의 깨어남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 P39
인간은 자신의 존재 가운데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는 존재, 자신의 존재를 포착해야 하는 그러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현존재자 Daseiende가 아니라 현존재 Dasein로 일컬어진다.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존재와 이해해야 할존재는 거의 동일한 존재이다(『휴머니즘 서간』『ber den Humanismus을 보2). - P43
이전 강의는 현존재 분석이 존재론의 문제에 대해 갖는 의미를 보여 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것은 단순히 예비 과정이 아니다. 존재는 현존재 안에서 물음에 놓인다. 질문에 놓임은, 말하자면, 존재하다라는 동사의 지위고, 존재의 서사와 존재의 행적이 행해지는 방식이다. 질문에 놓임은 이러한 존재성에 본질적이다. 존재하다라는 동사의질문인 동시에 그것의 이해이기도 한 현존재의 현은 바닥 없는 근거이며, 염려의 구조 속에서 정교해진 것이다. - P49
이제 드러나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현존재의 이 자기성, 인간에게서 현존재가 존재의 관심사를 전유하는 것에서부터 마련된 이자기성은, 이런 전유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존재의 지점에서) 가장 고유한것, 가장 양도 불가능한 것, 곧 죽음이 되는 가능성을 전유하는 가운데진정한 것이 된다. 시간이란 다름이 아니라, ‘자기앞질러‘인, 죽음의 이 같은 전유 또는 직면이다. 여기서 현존재의 자기성은 온전해진다. 이렇게 하여 현존재는 고유해질 것이다. - P58
죽음이 현존재를 완성한다면, 고유성 Eigentlichkeit과 전체성은 함께간다. 우리는 여기서, 물화된 모든 개념들을 제거하는 가운데, 전체적인 것과 고유한 것의 일치를 본다. 죽음은 존재 방식이고, 이 존재 방식에 기반해서 아직 아님이 생겨난다. - P66
그 질문은 세계와 관련된 믿음통념doxa을근본적으로 뒤집는 방식, 이 통념을 질문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그것은 판단의 양상이 아니라, 판단을 넘어서 있는 질문이다. 어떤 다른 판단이 아니라, 문제 제기가 없는 질문이다. 타자로 향함이 이뤄지는 질문이다(모든 질문은 요구고 기도다). 이 타자로 향함 속에서, 이론적 사유나 통념적 사유는 스스로 묻는 한에서 존립한다. (영혼이 그 자신과나누는 대화는 타인의 물음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비록 이론적 사유가 작용할 때 이러한 차원을 고려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 P67
실제로 타인에 대한 책임을 통해서만 우리는 자기 자신이 된다. 우리는 양도 불가능하고 위임불가능한 이러한 책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이 된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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