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의 현상학 우리 시대의 고전 13
메를로 퐁티 지음, 류의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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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규정성에서 규정성으로 이행하는 것, 자기자신의 역사를 새로운 의미의 통일성에서 언제나 다시 파악하는것, 이것이 바로 사고인 것이다. - P77

나는 눈이 두 개이기 때문에 대상을 이중적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그 둘 중 하나만을지각한다면, 그것은 내가 두 상의 도움으로 단 하나의 대상의 관념을 멀리서 구성하기 때문이다." 지각은 감성이 신체적 자극에 따라제공한 신호에 대한 ‘해석‘이 되고" 정신이 자신의 인상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기 위해 만든 ‘가설‘이 된다." - P80

지각을 분석하는 나와 지각하는 나 사이에는 항상 거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구체적인 반성 행위에서 그 거리를 극복한다. 바로이것으로서 나는 내가 무엇을 지각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고증명하고 두 자아의 불연속성을 실제로 지배한다. 궁극적으로 코기토는 그 의의가 보편적 구성자를 드러내야 하거나 지각을 지적 작용에 환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의 불투명성을 한번에 지배하고 유지하는 반성의 사실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성과 인간 조건을 이렇게 확인한 것은 실로 데카르트의 해결과 일치할 것이고 따라서 사람들은 데카르트주의의 궁극적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주장할 수 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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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셰익스피어 전집 1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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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인 거리에 따라서 동일한 현상이 비극이나 희극으로 색깔을 달리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이미 알려진 이야기들을 새롭게 작품화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가 바로이 해석의 차원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 P5

작품에서 줄리엣은 아직 14살이 되지 않았지만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이 가능한 나이이다. 카풀렛 부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이미 줄리엣의 나이에 결혼해서 딸을 낳았다. 줄리엣과 로미오의 사랑이 비극으로 나가는 근본 원인은 두 집안의 해묵은 갈등관계로 표현되는 과거, 전통의 힘과 자유로운 개인의 욕망, 의지 사이의 해소될 수 없는 대립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인습을 부정하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이를 여전히 포섭하고 봉쇄하고 있는 전통의 힘 사이에서 개인의 의지가패배하는 데 있다. - P7

사랑은 자신을 벗어나는 행위이다. 자신을 벗어난다는 것은 정신이육체에서 일탈한다는 의미일수도 있고, 반대로 정신이 완전히 육체 속으로 몰입해서 육체화 한다는 의미이기도하다. 어떤 경우이든 격정적이고 광기에 찬 사랑은 일종의 탈존(ex-stasis)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자아망각의 결정체인 죽음과 쉽게 동일시되어 왔다. 몰아의 상태를 의미하는 죽음은 또한 같은 의미에서 사랑의 정점이나 완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랑과 죽음은 서로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한 쌍을 이루고 있다. - P9

안티고네와 하에몬의 사랑은 죽음이라는 상징적인 성적 결합을 통하여 완성된다. 불어 표현에서 성행위의 정점을 "작은 죽음"이라 부르는것도 흥미롭다. - P11

셰익스피어는 안티고네』와 매우 비슷한 결말을 통해 사랑과 죽음의동질성을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Anthony and Cleopatra)에서 보여준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의 죽음을 통해서 옥타비우스(Octavius)의 노예로서의 삶이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자신 안에 깃든 "불멸의 염원들"을 실현하기 위해 안토니를 따라 죽는다. 그녀는 죽음의 순간에 "남편이여, 내가 갑니다"(Husband, I come. 5.2.281)라고 외치는데, 이는 성적인 쾌감의 절정을 동시에 의미하는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죽음을 육체적인 사랑의 완성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전성기를 지난 성인들의 세계를 보여준다면,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C. 1591-96)은 사랑과 죽음의 문제를 젊은이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다루고있다. - P13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이 같은 사랑의 복잡한 이중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가장 두드러진 언어기법은 모순어법(oxymoron)이다. 모순어법이란 서로 반대되는 요소들을 함께 끌어 모아 얼핏 보면 어리석게 보이지만 다시 보면 예상 밖의 균형감각을 자아내는 기지에 찬 수사기법이다. - P15

모순어법은 이 작품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통일된 수사법이다. - P17

남성들끼리의 물리적인 폭력은 여성들을 향할 때는 "처녀들의 머리,
즉 처녀성"(1.1.24)을 자르려는 성적인 폭력으로 화한다. 이 작품은 시작부터 삶과 죽음, 사랑과 폭력과 같은 서로 이질적인 주제들이 한데 혼재되어 있으며, 이러한 주제를 표현하는 장치가 바로 모순어법이다. 따라서이곳의 모순어법은 단지 언어적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을구조적으로 이끌어가는 극적 장치이다. - P17

라이언이 주장하듯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유토피아적인 사랑은 탐욕적이고 계산적인 위계질서에 입각한 지배적인 사고에 오염되지 않고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줄리엣의 사랑은 그녀를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대안이지만, 그 대상이 원수 집안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여전히현실에 갇혀있다. 이것이 그녀의 사랑이 초월을 꿈꾸지만 처음부터 죽음과 맞물려 있는 이유이다. - P21

반복어법, 접속사 생략 등의 수사적 기법을 동원하고 있는 카풀렛의한탄은 자연의 주기, 시간의 힘에 의해서 모든 것들이 변화하는 이 작품의 주제를 잘 보여준다. 바뀐다는 것(turn)은 다시 말해서 수사비유(trope)에 대한 어원적인 의미이며, 의미의 뒤틀림(turn)이란 곧 비유(metaphor)의본질이다. 코러스가 얘기하듯이 이 작품에서 증오에서 사랑이 나왔고,
따라서 사랑이 폭력과 죽음의 씨앗을 처음부터 잉태하고 있다면, 그 반대로 죽음은 다시 사랑을 잉태하고 사랑을 완성하는 변화를 가져온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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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레비나스, 그는 누구인가
박남희 지음 / 세창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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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blog.naver.com/syeong21/223761810538

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계발이나 외적 성공을 지향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내가 말하는 지속 가능성은 타자와의 윤리적 관계 속에서 가능한 성장이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의 윤리’를 수용하면서도, 반복과 매너리즘에 머무르지 않는 살아있는 창조적 진화를 체험하고 싶다. 조직은 고통과 모순이 교차하는 공간이지만, 바로 조직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 있는 사유를 지속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나에게 ‘봄의 철학’을 가능하게 한다. 봄은 언제나 처음의 시선으로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익숙해진 관계 속에서도 다시 타자를 보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새로운 책임을 묻는다. 나는 이러한 ‘봄’의 시선으로 조직이라는 공간을 다시 바라보고 싶다. 효율과 기능 뒤편에 가려진 얼굴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그 관계 속에서 나의 윤리적 책임과 창조적 가능성을 다시 찾아가는 것 말이다. 이는 내가 말하는 봄의 철학이다. 그러나 봄의 철학은 어느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일정한 형태를 갖지 않고, 시간과 관계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살아 있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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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의 현상학 우리 시대의 고전 13
메를로 퐁티 지음, 류의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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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체는 우리로 하여금 없는 것을 보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보는 것을 믿게 할수 있을 뿐이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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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예프,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13
그레고리 하트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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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방문의 손에 잡히는 성과는 워싱턴 의회 도서관으로부터현악 사중주 작곡을 위촉받은 것이다. 프로코피예프는 유럽으로돌아간 뒤 작곡에 들어갔는데, 그 예비 작업으로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곡들을 깊이 공부했다. 주로 연주회장에서 다음 연주회장으로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였다. 그러고 나서, E단조라는 조성을택해 사중주 작곡에 도전했다. 이 조의 으뜸음이 비올라와 첼로의 가장 낮은 현의 음 높이보다도 반 음정 낮기 때문에 생기는 고유한 문제점들을 자신이 극복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작곡한 <현악 사중주 제1번 Op.50>의 러시아적인 특징을사람들이 놓치지 않았다. 미야스콥스키는 이 곡의 ‘진정한 깊이‘와
‘압도적인 선율과 격렬성‘을 반겼다. - P67

평화롭게 곡을 쓰게 해주고, 써내려간 악보의 잉크가 마르기 전에출판해주고, 내 펜에서 나온 모든 음표를 연주해준다면 어떤 정부이든 난 괜찮다. - P75

듣는 이의 가슴에 가닿을 수 있는 단순성을 성취하기 위해 특별한노력을 기울였다. 대중이 이 작품에서 어떤 멜로디도 정서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조만간 발견하게 될 것만 같다. - P81

그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1940년 키로프 극장에서 있었던 소련 초연에서 유명한 갈리나 울라노바 Galina Ulanova가 줄리엣 역할을 맡아 춤췄고, 그녀를 바라보며 관객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1946년 뒤늦게 볼쇼이 극장무대에 올려졌을 때, 이 발레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발레 중 하나로 굳건히 자리 잡은 뒤였다. 이 발레의 가장 널리 알려진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충격적으로 대담한 ‘기사들의 춤(1막 4장)‘으로, 고전 발레 레퍼토리를 통틀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명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발코니 장면(1막 5장)‘에 이어 줄리엣은 다시 무도회장으로 돌아가고, 로미오가기둥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로미오의 바리아시옹‘에 이 연인들이 추는 가장 중요한 2인무(pas-de-deux)인 ‘사랑의 춤‘이 이어진다.
발레 장면을 통틀어 가장 기억할 만한, 우아하게 사랑이 넘치는장면임에 틀림없다. - P81

1936년 봄, 프로코피예프는 마침내 가족과 함께 소비에트의 수도에 정착했다. 눌러앉은 파리 사람에서 새로운 모스크바 사람으로 돌아오는 기나긴 개인적, 예술적 여정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이는 용감한 이주였으며, 공공연한 국가 차원의 격려를 받았던 초기의 뿌듯함이 프로코피예프로 하여금 자신이 소련의 우월한 사회 체제의 ‘증거‘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눈 감게 만들었음이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서구화된 유명 작곡가가 왜 그토록 선뜻국가의 명령에 자신의 운명을 던져 넣었을까? - P84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의 저술과 연설문을 기초로 한 초대형의<10월 혁명 20주년 기념 칸타타 Cantata for the Twentieth Anniversary ofthe October Revolution Op.74>는 선전용(프로파간다) 음악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음악인 것은 아님을 증명한다. 1966년까지 공연되지 않은 이 작품은 엄청난 드라마와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이 칸타타가 ‘저속한 좌파 성향을 드러낸다는 프로코피예프 전기작가네스티프의 비난은 그가(1940년대에 요령을 익힌 다른 소비에트 비평가들과 마찬가지로) 지배층 엘리트들에게 만연해 있던 사고방식을 글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증명해줄 뿐이다. - P89

1939년은 또한 프로코피예프가 15년 만에 다시 피아노 소나타로 돌아온 해이기도 했다. 그는 훗날 ‘전쟁 소나타‘라는 명칭으로 곧잘 묶어 불리게 될 비중 있는 세 편의 연작 소나타를 쓰기 시작했다. - P93

그 첫 곡인 <피아노 소나타 제6번 Op.82>을 스뱌토슬라프 리히테르는 이렇게 잘 표현했다.
이 음악의 아주 명확한 형식과 구조적인 완벽함에 놀랐다. 나는 이와 같은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작곡가는 낭만주의적 관념들과 대담하게 인연을 끊고 20세기의 충격적인 맥박을 곡에 담았다. - P94

이 격변기에 쓰인 또 다른 주요 무대 음악이 두 곡 있다. 발레곡 <신데렐라>(다시 자세히 다룰 것)와 오페라 <전쟁과 평화>이다. 프로코피예프는 톨스토이를 깊이 숭배해서 그의 걸작들을 평생토록 읽고 또 읽었다. - P96

것이다. 미야스콥스키는 <피아노 소나타 제7번> (날칙에서 트빌리시Tbilisi로 피난한 다음에 쓴 작품이 ‘최고로 야생적‘이라고 보았고, 리히테르는 이 작품에 너무나 푹 빠져서 고작 나흘 만에 이 곡을 익혔다. 1943년 1월 18일의 초연은 굉장한 성공이었고 청중이 거의연주장을 빠져나간 다음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이들은(오이스트라흐도 있었다) 리히테르에게 다시 한 번 연주하라고 강권했다.
분위기는 들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지했다. 그리고 나는 만족스럽게 연주했다. 좌중은 매우 예리하게 이 작품의 정신을 간파했다. 거기에 자신들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감정과 우려가 반영되어있었기 때문이다. - P99

<교향곡 제5번>에서 나는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을, 그의 막강한 힘과 고결함, 영적인 순결함을 노래하고 싶었다. 내가 이 주제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주제가 내 안에서 솟구쳐 나와 표현해달라고 아우성쳤다. 나는 내 영혼 안에서 저절로 여문 것들을 마침내음악으로 완성했다. - P103

예술가들의 자기 규탄 행태들이 이어지는 와중에 프로코피예프가 보인 행동은 자못 품위 있다. 그는 흐레니코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형식주의 병증‘이라는 즈다노프의 비판을 받아들이며 이렇게 주장했다. - P109

나는 선율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도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음악적 지식이 없는 감상자들조차도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독창적인 멜로디를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하찮고 나약하고 어디선가 베낀 듯한 잡동사니로 전락하는 걸 경계하면서 한 줄기 간결한 멜로디를 뽑아내려면 그야말로 노심초사해야 합니다. - P110

이처럼 작곡가 조합의 관리들은 프로코피예프의 시민으로서의삶을 너무나 치밀하게 조종했기 때문에 그는 청년과 음악이라는정치적 대의명분에 자신이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음을 정기적으로내보여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병약하고 지적인 억압 상태에 놓인 작곡가가 젊은이와 사적이고 순수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상황의 억지스러움을 타개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의 젊은이는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로, 프로코피예프로 하여금 말년에 최고의 작품들을 쓰게 한 장본인이다. 당시 이십 대 초반이었던 로스트로포비치가 미야스콥스키의 첼로 소나타 제2번>을 초연한 날 이 두 음악가는 만났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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