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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 -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
이재익.김훈종.이승훈 지음 / 시공사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하여튼,
책을
읽든가 쓰든가!
이 책을 읽고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에 이 문장을 만났다.
성석제의 책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저자 이승훈의 글에서 만났다.
“성석제가
대단한 점은 이렇게 소개해놓으면 그의 글이 얼마나 대단한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284쪽)
대단하다,
하여튼!
그렇다.
이
문장이 마음에 든다.
그래서
빌려 말하자면,
이
책이 대단한 점은,
내가
서평으로 이 책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말 하려고 해도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뭔가?
그럼?
읽어봐야
안다는 것이다.
아니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읽어보면
안다?
읽어봐야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이
그렇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로서는 이 책이 말하는 그 책에 관한 그 ‘무엇’을
얼른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
알지
못하므로!
그
책들이 어떤 책인가 알지 못하므로.
아무리
이 책에서 저자(들)이
신이 나서 말한다 하더라도 ‘그저
그런가 보다’하며
떨떠름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책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
책에 대해서 신나게 떠들어 댈 수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책인가?
그게
우선 대단한 것이고,
또
생각해 보라.
‘아니,
그
책이 그렇게 대단한거야,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대단하다
말해도 너희들은 몰라,
라고
말하는 거야,
그래
그럼 나도 읽어봐야겠구만’이라는
결론으로 유도하는 이 책이 또한 대단하지 아니한가?
그래서 그 저자들의
‘신남’이
질투가 나서 성석제의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를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쓰는 저자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너무 한꺼번에 몰려오는 책‘들’을
모두 다 살 수 없는 게 또한 현실 아닌가?
해서
부득이 집 근처 걸어서 3분
거리의 시립도서관에 신세를 질 수밖에!
또 하나
빌리자,
한번에
4권이
한도이니,
아직
여유가 있다.
이중텐의
<삼국지
강의>.
왜 그
책인가?
‘누가
삼국지를 읽었다고 말하는가’(290쪽)라는
도전적인 글을 읽고 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해서
역시 빌릴 수밖에.
삼국지,
버전을
바꿔가면서,
또는
번역자를 바꿔가면서 몇 수십 번 읽었던 삼국지인데,
‘누가
삼국지를 읽었다고 말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대체,
답할
수 없으니,
말하지
못한다 답할 수 밖에!
하여튼,
책을 읽든가
쓰든가!
이중텐
왈,
“지혜와
지식은 다르다.
지식은
사회에 속하고,
지혜는
개인에 속한다.
지식은
주고 받을 수 있지만,
지혜는
오직 깨달을 수 밖에 없다”(
300쪽)니,
깨닫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하겠지?
그렇게 이 책에서는 세 명의 필자가
각각 책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된 것,
그래서
깨닫게 된 사건들을 풀어놓는다.
재미지게,
재미나게!
그러니 이 책을 잡고 읽으려는
사람들은 일단 이런 각오를 하자.
책을 더 열심히 사랑한다는 말에
걸맞도록 읽는 사람이 되던지,
아니면
그런 책을 누구처럼 -
누구긴
누구?
여기
필자 세 명이지-
써보기를
작정하든지.
하여튼,
책을
읽든가 아니면 쓰든가,
모두
다 행복한 일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