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는 날아갔어도 행복은
(남아)
있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를
읽었다.
지금껏
읽었다고 생각했던 책,
그래서
훤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책이다.
그런데
확실한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래도
읽었다고 생각드는 것은 웬일일까?
아마도
많이 들어서 일 것이다.
내
곁에 이미 파랑새는 있는데,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밖으로 밖으로만 찾으러 다니다가,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에
행복의 파랑새가 있더라,
는
줄거리만 알고 있는 그 책,
<파랑새>를
이제 제대로 된 것으로 읽었다.
시공주니어에서 발간한 이 책
<파랑새>는
원작 형태 그대로인 희곡이다.
그래서
소설체로 만들어진 다른 책들과는 차별성을 보인다.
따라서
소설체로 바뀐 내용보다는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알 수 있고,
이야기의
흐름을 더 세밀하게 알 수 있다.
주인공
이름,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아니다.
또한 지금까지 주인공 두 아이
이름을 ‘치르치르’와
‘미치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알려진 이유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일본 번역본에서 옮겨 오면서 일본식으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따라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올바른
이름은 ‘틸틸’과
‘미틸’이다.
그런데 그게 쉽게
바뀔까?
아무래도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혜은이가 부른
노래,
<파란
나라>에
이런 가사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 가사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
난
‘찌루
찌루’의
파랑새를 알아요
난
안델센도 알고요 저 무지개 넘어>
이 노래 가사에는
‘치르치르’도
아닌,
‘찌루찌루’로
나온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과 기쁨
제
9장
‘행복의
정원에서’를
보면 ,저자가
생각하는 행복과 기쁨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고 있다.
행복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128쪽
이하)
사치스러운
행복
소유하는
행복
허영심이 충족되는
행복
목마르지 않아도 마시는
행복
배고프지 않아도 먹는
행복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행복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는
행복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행복
잠만 자는
행복
시도 때도 없이 웃는
행복
어린 시절의
행복
그런데 그런 행복들은 진짜가
아니다.
그런
행복들은 시련이 오자,
<행복들이
썼던 만족스러운 표정의 가면들도 다 찢어진 채 땅에 떨어져서,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행복들 발밑에 나뒹군다....오직
‘아무
것도 모르는 행복’만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조용하고 평안해 보인다.>(132쪽)
집에 있는 행복들 (136쪽 이하)
그런데 그런 행복 말고 저자는 집에
있는 행복을 말한다.
그런
행복들은 ‘늘
곁에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함께 먹고,
마시고,
잠들고,
깨어나고,
숨
쉬면서 지내는 행복,
그런
행복이 진ᄍᆞ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이미 집에서 맛볼 수 있는 행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건강하게 지내는
행복
맑은 공기의
행복
부모를 사랑하는
행복
파란 행복의
행복
숲의
행복
햇빛이 비치는 시간의
행복
봄의
행복
해질 녘의
행복
별을 바라보는
행복
빗방울의
행복
겨울 난로의
행복
투명하고도 커다란
기쁨
천진난만한 생각의
행복
이슬 속을 맨발로 달리는
행복
저자가 나열해 놓은 집에 이미 있는
행복들을 과연 우리는 행복으로 여기고 살아왔던가?
저자는
‘어쩌면
네가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몰라’(136쪽)라고
한다.
그렇다.
집에
있는 행복을 우리가 눈여겨 보지 않았기에,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행복을 통하여 느끼는 기쁨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40쪽 이하)
정의의
기쁨
선하게 사는
기쁨
일을 마쳤을 때의
기쁨
생각하는
기쁨
깨달음의
기쁨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는
기쁨
사랑하는
기쁨
아름다운 것을 보는
기쁨
이런 행복과 행복에서 느끼는 기쁨을
살펴보면서 새삼 다음과 같은 말들을 새겨본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행복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행복을 전혀 알아보지 못해요.>
(134쪽)
<단지
네가 그걸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거지....앞으로는
우리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여주면 좋겠어.
그러다보면
더 고귀하고 고상한 행복들을 만나게 될거야.>(137쪽)
참,
여기
덧붙일 기쁨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남을
귀찮게 하는 기쁨’
저자의 유머가 작동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 것일까?
<(그
것은)
불행의
동굴에서 도망친 녀석인데,
아무도
가둬놓을 수가 없어.
어디서든
도망쳐 나오거든.
불행들도
이제는 저 녀석들을 데리고 있으려 하지 않아.>(139쪽)
그런 기쁨은 누가 좀 데리고 있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주면 좋겠는데....
아직도 파랑새는 없다, 있다?
이 책의 결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내가 기억하는
<파랑새>의
결말은 집에 돌아온 두 남매가 집에 원래부터 있던 새가 파랑새인 것을 알고 행복을 찾았다고 기뻐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옆집에 사는 소녀에게 그 파랑새를
준다.
그런데
그 소녀의 품에서 피랑새는 날아가 버린다.
그 것을
본,
주인공
틸틸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
그 새를 보면 우리에게 둘려주시겠어요?
우리는
그 새가 꼭 필요해요.
행복을
위해서.....>(195쪽)
즉,
파랑새는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틸틸은 그 새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이에 따른 생각 두
가지,
첫째는
파랑새가 날아갔다고 해서,
집안에
있는 행복은 사라진 것일까?
두 번째
생각,
틸틸이
가지고 있던 파랑새는 인간 전체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자기
집에 그 파랑새를 둘 생각하지 않고 옆집 소녀에게 주었으니.
그래서
틸틸이 파랑새를 찾아달라고 말한 것은 자기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 행복은 이미 틸틸의 집에
있고,
다만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파랑새를 언급한 것,
그것이
저자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