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음
조르조 아감벤 지음, 김영훈 옮김 / 인간사랑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참고되는 책들을 보면서 읽었기에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걸린만큼 얻은 것은 많다. 그만큼 의미있는 책이 분명하다.

 

먼저 이 책의 계보를 찾아보자. 수많은 아감벤의 저술 중에서 이 책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어디일까? 이 책 <벌거벗음>은 아감벤의 중요한 사유 <호모 사케르>의 연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사유는 <호모 사케르>를 필두로 하여, <예외 상태>등 다른 저작을 거쳐 이제 <벌거벗음>에 이르고 있다.

 

 

1. 동시대인

 

 

이 책의 저자를 둘러싼 논의를 추적하다 보면, 라캉, 지젝, 그리고 알랭 바디우가 보인다. 마침 그런 논의에 관심이 있던 차에, 이 책은 종으로 횡으로 연결이 되어 나의 독서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 

예컨대, 이런 것이 있다.  ‘동시대인이란 개념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어떤 경우든 텍스트들과 동시대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이번 세미나에서 검토하는 텍스트나 작가들과 반드시 동시대인이 되어야 한다.> (22)

 

롤랑 바르트: 동시대성이란 반시대적이다.

 

니체:대가 자랑스러워하는 역사적 교양을 내가 여기서 시대의 폐혜로, 질병과 결함으로 이해하려하기 때문이다.(23)

 

진정으로 동시대적인 사람, 그의 시대에 진정 속해 있는 사람은 시대와 일치하지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이런 의미에서 비시대적이다. (23)

 

문제는 이런 동시대적이란 말이 필요한 것은 그것이 반시대적이며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그들의 시대를 잘 보고 파악할 수 있기에 그렇다.(23)

 

동시대성은 한 사람이 그의 시대와 갖는 독특한 관계이다. 즉 동시대성은 시대에 들러 붙어 있지만 동시에 시대와 거리를 둔다. (23- 24)

 

특정시대에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사람, 모든 면에서 완벽히 시대에 묶여 있는 사람은 동시대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시대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확고히 응시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24)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동시대인이란 개념이 대략 그러하다.

그렇게 이 책에서 동시대인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나니, 전에 읽었던 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을 조금 자세하게 이해하며 다시 읽을 수 있었으니, 이 책을 읽은 유익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사도 바울>의 첫 번째 장이 바로 바울, 우리 시대의 동시대인이다.

 

2. 비잠재성과 무위

 

이 책 5,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라는 장은 매우 흥미로는 부분이다,

 

<잠재성은 어떤 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의 척도이다.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지 않을 가능성을 유지하는 능력인데, 이것이 인간 행동의 등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불꽃은 불타는 것 밖에 못하며, 인간 이외의 생물은 스스로의 고유한 잠재성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들은 생물학적인 소명에 각인된 단순한 행동만을 할 수 있다. 반면 인간은 고유한 비잠재성의 역량을 가진 동물이다.> (75)

 

그러나 이런 비잠재성을 아감벤이 언급하는 이유는 그 다음의 발언에 있다.

 

<권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인간을 분리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주로 인간이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인간을 분리한다. >

 

<비잠재성으로부터의 소외만큼 우리를 빈곤케 하고 우리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없다.>

 

<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은 여전히 저항할 수 있다. 그들은 여전히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스스로의 비잠재성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은 무엇보다 이 저항 능력을 상실한다.> (76-77)

 

그래서 이런 아감벤의 사유는 결국 호모 사케르와 맥을 같이 하게 되는 것이다. 아감벤이 말하고 있는 잠재성무위를 역자는 아감벤 사유의 핵심’(187)이라 지칭하니, 내가 읽기는 제대로 읽은듯 하다.

 

3. 벌거벗음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흥미를 가지고 읽은 부분은 제 7벌거벗음이다.

이 부분은 이 책의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서, 차지하고 있는 분량도 제일 많다. 전체 180여 쪽에서 이 부분이 50여쪽이 되니 말이다.

 

벌거벗음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벌거벗음의 개념은 무엇인가?

옷은 우리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동물과 구분짓게 해주는 핵심장치이다. 또한 옷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부족함, 결여의 상징이다.

따라서 에덴에서의 삶은 벌거벗었지만 거기에 별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범죄 이후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인간은 벌거벗음에 대한 수치심을 느끼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옷은 아감벤이 말한 것처럼 인간에게 부족한 것, 결여된 것을 상징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감벤에게 있어서 벌거벗음은 단지 그러한 정도로 끝나는 개념이 아니다. 벌거벗음은 결국 주권 권력에 예속된 벌거벗은 생명- 삶과 연결되어 있다. (184)

 

벌거벗음은 신학적 사유로부터 시작되어 결국은 주권 권력과의 사이에서도 발생하는 것으로 귀착이 된다. 그렇게 아감벤은 그의 호모 사케르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책이란 책 그 자체에서 끝이 나는 것이라면 무언가 부족한 책이다. 그 책을 읽고 그 곳을 기점으로 다른 넓은 곳으로, 혹은 더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시작점, 남상(濫觴)이 되어야 책다운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바로 이 책이 그러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호모 사케르>에 대해 천착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으며, 또한 이 책에 언급된 카프카 등등 나의 시선을 돌려 더 깊고 넓은 세계로 향하게 되었으니, 이 책의 고마움은 또한 거기에도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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