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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키다리 아저씨 ㅣ 보물창고 세계명작전집 27
진 웹스터 지음, 원지인 옮김 / 보물창고 / 2024년 12월
평점 :
키다리 아저씨
말로만 듣던 책이다.
제목만 알고 있던, 그래서 어느 후원자가 고아원에 있던 소녀를 돌보아주며 대학공부를 시킨다는 줄거리로만 알고 있던 책이다.
이번에 읽고나니, 물론 그 기본 줄거리야 그대로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감성과 인간애가 물씬 풍기는 아기자기한 내용이었다. 게다가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마침내 즐거운 결말을 맞게 되는 남녀간의 애정 전선 또한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줄거리는?
굳이 소개할 필요 없을 것이다. 고아원에서 자란 열일곱 소녀 제루샤 애벗(주디)이 이름 모를 후원자의 도움으로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꿈을 이루고, 더하여 사랑도 만나게 된다는 아기자기한 소설이다.
특이한 것은 이 소설이 오직 편지로만 진행이 되는데, 신기하게도 그 상대역인 저비의 상황도 알게되는 기법을 쓰고 있다는 것, 그래서 주디의 편지 속에 저비도 같이 등장하면서 소설이 전개되고 있다.
하나씩 알아가는 기쁨 맛보는 주인공
고아원에서 자라서 다양한 책을 읽지 못한 주디에게 대학 생활은 완전히 다른 별천지다.
해서 보이는 것, 만나는 것들이 모두 배워야 할 것들이다. 독자들은 주인공 주디와 함께 하나씩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대학에서 어려운 건 공부가 아니에요. 정작 힘든 건 노는 거예요. (29쪽)
제가 얼마나 무지의 심연에 빠져있는지 아저씨는 믿기 힘드실 거예요. 저는 스스로 그 깊이를 깨닫게 되었답니다. (37쪽)
조지 엘리엇이 여자라는 것도 몰랐어요. (38쪽)
조지 엘리엇이 누구?
그가 남자가 아니었어? 이름이 조지인데?
그래서 주디 덕분에 조지 엘리엇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게 되었다.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1819년 1월 2일 ~ 1880년 1월 1일)은 영국의 소설가, 시인, 언론인, 번역자이자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 가운데 하나이다. 본명은 메리 앤 에번스(Mary Anne Evans)이다. 그녀의 작품에 <사일러스 매너>(1861)가 있다.
<사일러스 매너>하니까 비로소 생각이 난다. 분명 여자다.
도리아식, 이오니아식인지도 모르지요. 전 이 두 가지가 늘 헷갈려요.(81쪽)
동지를 만난 기분이다. 그리스 문화를 공부하면서 만난 그리스 신전의 기둥,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이 있다. 그런데 그 둘을 구분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대로 기억해야지 각오를 단단히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잊어버리고 다시 보면 또 헷갈린다. 그런데 그게 나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책이 쓰여질 때도 그랬다니, 천만다행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어서.
행복하면 그만이지 뭐가 또 있겠는가? (인용문이에요, 고전을 읽었거든요.) (105쪽)
생각난다. 어릴 적 어떤 책을 읽다가 멋진 문장을 만나면 기억해두었다가 써먹을 데를 찾던 그런 기억말이다. 주디도 그런 시기를 지금 거치는 중이다.
고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햄릿>을 읽어보셨나요? 읽지 않으셨다면 지금 당장 읽어보세요. 정말 굉장한 작품이에요. 이제껏 셰익스피어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렇게 글을 잘 쓰는 줄은 몰랐어요. 늘 그가 명성만 자자한 사람일지 모른다고 의심했거든요. (106쪽)
<햄릿>은 수업 시간에 분석할 때보다 무대 위에서 보는 게 훨씬 멋졌어요. 전에도 좋은 작품인 줄은 알았지만, 이번엔 정말.......! (111쪽)
셰익스피어에 관한 발언은 계속 이어진다.
또 봄 연극 무대에도 서게 되었어요. <뜻대로 하세요>를 야외에서 공연할 거예요. 전 로잘린드의 사촌인 실리아 역을 맡게 됐어요. (107쪽)
독자를 웃음짓게 하는 주디의 발언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란 주디, 결코 낙담하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하기야 그도 그럴 것이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대학교에서 마음껏 공부만 해도 될 환경으로 들어섰으니 얼마나 좋으랴. 물론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지만 그때마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힘차게 헤쳐 나간다. 그래서 이런 발언들을 읽을 때마다 독자들은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인생에서 인격이 요구되는 때는 큰 문제가 닥쳤을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누구든 위기에는 대처하고 참담한 비극에는 대담하게 맞설 수 있지만, 정작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을 웃으며 마주할 수 있으려면 정신력이 필요해요. (63쪽)
세상에 얼마나 비가 퍼붓던지, 오늘밤 예배당까지는 헤엄쳐서 가야 할 판이에요. (98쪽)
전 아무래도 천국에 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세상에서 좋은 것들을 이렇게나 많이 누리고 있으니까요. 사후에도 그런 호사를 누린다면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107쪽)
전 그 애들이 예쁜 이상 멍청한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그 애들이 하는 얘기가 남편들을 얼마나 질리게 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요. 운 좋게도 똑같이 멍청한 남편을 얻지 않은 한 말이지요. 꽤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멍청한 남자들이 넘쳐나는 듯 보이거든요. 올 여름에 만난 사람만 해도 꽤 되니까요. (187쪽)
특히 마지막 문장 읽으면 주디의 당당한 모습, 지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핸 모습이 떠오른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손모아장갑 (28쪽)
드디어 찾았다. 예전에 무심코 사용하던 장갑의 이름, 장애인을 비하한다고 고쳐부르자던 장갑의 이름을 실제로 사용한 것을 드디어 발견했다. 손모아장갑, 이제 다시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들 하지 않기를 손모아 빌어본다.
전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상상력이라고 생각해요. 상상력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가 있으니까요. (120쪽)
이곳 사람들의 세계는 여기 있는 언덕 꼭대기가 전부랍니다. 제 말뜻을 이해하실지 모르겠네요. 이곳 사람들은 시야가 아주 좁다는 뜻이에요. (139쪽)
전 이제 사람들이 물질에 눌려 중압감을 느낀다고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요. (166쪽)
대학생인 주디의 당찬 발언, 속깊은 발언에 독자들은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두 번 읽기를 권한다.
첫 번째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직 주디 애벗에만 집중하면서 읽어본다.
그 다음에는 저비라는 이름이 나오면 새로운 각도로 읽어본다. 저비가 등장하면 주디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또 저비가 어떻게 주디에게 대하는지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읽어본다.
그렇게 두 번을 읽게 되면, 이 책이 단순히 성장소설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달콤한 사랑의 향기도 담뿍 맡을 수 있는 러브 스토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