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의 속사정 십대를 위한 고전의 재해석 앤솔로지 3
전건우 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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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의 속사정

『빌런의 속사정』

제목을 보니 빌런도 나름 고충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빌런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스파이더맨>, <배트맨>에 등장하는 빌런을 말하는 것일까?

그런 빌런이 아니라,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동화, 이야기에 등장하는 빌런들이다.

<잭과 콩나무>, <사람이 된 쥐>, <헨젤과 그레텔>, <놀부전>

이렇게 네 편의 이야기중 빌런을 불러내, 그들의 속사정을 들어보는 것이다.

인터뷰가 아니라,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원래의 이야기에서 나쁜 역할을 하는 빌런의 역을 이번에는 거꾸로 좋은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원래 이야기, <잭과 콩나무>에서 빌런인 거인의 모습을 살펴보자.

대체 왜 잭은 거인을 괴롭히는 것일까? 공연히 잘 지내고 있는 거인을 찾아가 물건을 훔치고 나중에는 거인이 살고 있는 나무를 베어버리기까지 해버리는, 이야기 속에서도 실상 거인은 아무런 잘못이 없이 당하기만 하는 역할이지 않는가?

해서 이번에는 그것을 속시원하게 까발리고 거인이 실상은 아주 좋은 역할이었음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작가 전건우가 그런 작품을 썼다. 거인은 원래 좋은 역이니 이번에는 그 거인의 속사정을 들어봅시다, 라고 외치는 것이다.

잘 썼다. 세상에 아무리 나쁜 자라 할지라도 나름 할 말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턱대고 한번 먹었던 생각을 고치려들지 않고, 그저 거인을 나쁘다고 욕을 해대고 있으니, 이번에는 거인의 입을 빌려, 하는 말을 들어보자는 것이다.

말을 들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거인이다. 그런 거인을 욕하고만 있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다른 세 편의 이야기 모두 다 그렇다.

<사람이 된 쥐>에서는 쥐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문제 가정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소녀, 주인공 연하는 나타난 쥐에게 밥을 먹인다. 밥을 얻어먹은 쥐는 그야말로 밥값을 톡톡히 해낸다. 연하가 어려울 때에 오빠의 모습으로 나타나 연하를 도와주는 것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쥐는 다시 쥐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선한 역의 쥐는 원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쥐와는 다르다. 착한 일을 하고도 쥐는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 다음에? 이런 문장을 만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쥐는 만족스런 찍소리를 내었다. (104쪽)

'찍소리를 내었다.'

쥐니까, 쥐가 내는 소리는 당연히 찍소리니까, 그 문장 하등 이상할 게 없지만 무엇인가 다른 느낌이 오지 않는가?

이런 문장은 아마 난생처음일 것이다. 찍소리는 그간 어떻게 쓰였던가?

찍소리, 우리말 사전에 의하면, 명사로 ‘아주 조금이라도 반대하거나 항의하려는 말이나 태도’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 단어를 항상 ‘찍소리도 못한다’는 식으로 사용하지 않았던가? 해서 ‘찍소리’의 원래 의미가 ‘찍소리도 못한다’는 말인줄 알았던 게다.

‘찍소리’는 그간 ‘찍소리도 못한다’라는 말에 파묻혀있느라, 지금껏 아무런 찍소리도 못내고 있었던 것이다.

찍소리도 못한다.

찍소리를 내었다.

찍소리, ‘아주 조금이라도 반대하거나 항의하려는 말이나 태도

그래서 ‘찍소리도 못한다’라고 사용하며, 찍소리라는 단어를 아예 처음부터 부정적인 의미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그러니 이 글을 쓴 작가 배명은은 ‘만족스런 찍소리를 내었다’는 말로 찍소리의 원래 의미를 찾아낸 것이다.

이제 연하네 집에서 연하도 제법 찍소리를 내면서 살아갈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작가 배명은이 쥐로 하여금 ‘찍소리’의 본래 의미를 찾아주게 했으니.

다시, 이 책은?

<헨젤과 그레텔>, <놀부전>

두 개의 다른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우리 인식의 저 깊은 곳에는 항상 이야기의 빌런, 나쁘다고 여겨온 사람 측에 온갖 비난을 서슴치 않고 빌런 짓을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4명의 저자는 이야기 속 빌런의 속사정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업을 통해,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게 해준다. 우리는 착한 빌런에게 아무렇게나 막말을 퍼부은 나쁜 빌런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모르겠다는 말로 어물쩡 빠져나가려는, 나쁜 빌런이다.

생각하게 만들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지어낸 네 명의 이야기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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