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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조각 미학 일기 - 미학생활자가 바라본 미술, 음악, 영화
편린 지음 / 미술문화 / 2023년 11월
평점 :
조각조각 미학 일기
이 책으로 독자들은 영화와 그림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미학으로까지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영화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박찬욱, 〈헤어질 결심〉
워쇼스키스, 〈매트릭스〉
이창동, 〈밀양〉
케네스 로너건,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다르덴 형제, 〈로제타〉
그런 영화들을 잘 살펴보기 위해서는 물론 다른 방법도 많이 있겠지만, 저자는 영화에 미학적인 접근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
영화를 분석하기 위하여는 관람자는 분석의 틀을 지녀야 하는데, 저자는 그 분석의 틀을 미학적 측면에서 제공한다,
예를 들면, 워쇼스키스, 〈매트릭스〉를 위해서는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를 소환한다,
시뮬라크르
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먼저 플라톤의 이데아를 알아야 하는데 저자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플라톤의 시뮬라크르를 대비하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플라톤의 시뮬라크르는 그림자다. 시뮬라크르는 이데아의 모사물이며, 결코 자신의 원본인 이데아를 넘거나 초과할 수 없고 또한 원본에는 없던 고유의 가치들을 창출할 수조차 없다.(157쪽)
그런데 그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시뮬라크르는 저자의 설명인 삼각형으로 바꿔말하면 이데아 삼각형이 가지고 있지 않는 ‘만질 수 있음’과 ‘눈에 보인다’는 속성을 지니게 된다.
물론 이 가시성과 실감성은 모든 시뮬라크르의 고유한 속성이기도 하다.
자, 이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로 넘어가보자.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역시 원본의 모사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플라톤의 시뮬라크르와 차이가 있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는, 즉 모사물은 원본을 초과하는 과잉 실재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플라톤의 시뮬라크르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159쪽)
이를 위하여 보드리야르는 과잉 실재의 사례로 쥐와 미키 마우스의 차이를 예로 든다.
그 설명은 생략하는데,
결국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는 원래의 실재를 뛰어넘는 잉여의 과잉 실재를 만들어 원본보다 크고 넓고 전면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160쪽)
이런 설명을 들으면서, 저자가 한가지 이론을 들어 설명할 때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플라톤과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플라톤의 동굴에서 그림자를 가져오고, 또한 삼각형을 제시하고 또한 쥐와 미키 마우스를 예로 들어 보이고 있다.
그렇게 설명을 해주고 있으니, 점점 구체적으로 설명의 예시가 이해가 되면서 앞에 든 예가 다시 이해가 되며 결국 시뮬라크르라는 철학적 개념이 손에 잡히게 되는 것이다.
미학이란 무엇인가?
따라서 영화도 보고, 그림도 보고, 더하여 철학까지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들어가는 글>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의 내용은 미학 이론과 예술 작품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자 연결이라는 말이 들어맞는다. (12쪽)
미학이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학이라는 학문이 철학에 기반한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요즘 핫한 철학자들의 생각들을 접하게 된다.
그런 글이 이 책에는 모두 9개, 다음과 같다.
1. 첫 번째 조각 ‘암호’
(1) 예술, 깨어 있는 꿈 (앤디 워홀, 〈브릴로 박스〉 × 아서 단토)
(2) 불안하다, 그러나 걷는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걷는 사람〉 × 장폴 사르트르)
(3) 완전히 붕괴되는 시간 (박찬욱, 〈헤어질 결심〉 × 알랭 바디우)
2. 두 번째 조각 ‘단서’
(1) 토끼 굴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마 (워쇼스키스, 〈매트릭스〉 × ‘시뮬라크르’)
(2) 벽을 넘어 벽으로 (핑크 플로이드, 《The Wall》 × 미셸 푸코)
(3) 예술가, 자본주의의 게릴라들 (노순택, 《얄읏한 공》 × 발터 벤야민)
3. 세 번째 조각 ‘편지’
(1) 신은 용서할 수 있을까 (이창동, 〈밀양〉 × 자크 데리다)
(2) 왜 우리는 사진을 불태우나? (케네스 로너건,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롤랑 바르트)
(3) 너를 기록한다는 것 (다르덴 형제, 〈로제타〉 × 한나 아렌트)
몇 가지 제외하고 모두다 새롭게 접하는 것들이 되어서 공부하는 재미가 있다.
어느 한 분야가 아니라, 그림과 영화를 같이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살펴보는 아주 좋은 분석틀을 제공해주고 있으니. 그림과 영화를 볼 수 있는 귀한 무기 하나 장만한 기분이 든다.
해서 이 책을 읽고나면, 이제 그림도 영화도 망설이지 않고 ‘어떤 것들을 찾아낼 수 있을테니, 그러니 한번 살펴보자’ 라는 자신감도 갖게 된다는 것, 분명하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영화와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어야 한다.
이 책 읽으면, 영화를 보는 눈과 그림을 보는 눈이 생긴다.
또한 이 책은 그런 데 관심이 없는 사람, 특히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읽어야 한다.
읽다 보면, 내가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라, 이런 책을 만나지 못해서 관심이 생기지 않았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 깨달음과 더불어 ‘어라, 미학이란게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구나’하는 두 번째의 깨달음도 얻게 되니, 대체 아 책 한 권으로 몇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인가? 맞다, 한 두 마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