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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평전 - 경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라
사만다 로즈 힐 지음, 전혜란 옮김, 김만권 감수 / 혜다 / 2022년 9월
평점 :
『한나 아렌트 평전』 사만다 로즈.
한나 아렌트는 독일 출신의 미국 학자이다.
그녀를 철학자 또는 사상가라는 어느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어, 학자라 표현했다.
그녀는 1906년에 태어나, 세 살 때 동프로이센의 수도인 쾨니히스베르크로 이사했다.
[쾨니히스베르크는 지금은 러시아 영토에 속해 있는 곳이지만 과거엔 독일 영토였다.
쾨니히스베르크는, 세계적인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일평생 고향이었다.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100마일 바깥으로는 여행조차 가지 않았고 평생을 이 도시에서 살다가 죽었다. 그 바람에 생가, 대학, 무덤 등 칸트 관련 각종 유적은 현재 러시아 땅에 남게 되었다. 현재도 칼리닌그라드 곳곳에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위인 칸트의 이름을 딴 지명이 남아있다.]
한나 아렌트라는 인물에 대하여
이 책은 그녀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교육을 비롯하여 그녀의 사상이 형성되기까지 영향을 끼친 사람들과 사건들을 차례대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그녀가 저술한 책들의 내용과 쓰는 과정, 그 책이 끼친 영향까지 살펴보고 있어, 이 책으로 한나 아렌트의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이 5개의 part로 이루어져 있다.
Part 01 비범한 소녀에서 주목받는 학자로
Part 02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Part 03 사상, 저작, 친구들
Part 04 끝나지 않는 논란
Part 05 사랑, 우정, 이별 그리고 불멸의 죽음
이 책에서 읽게 되는 아렌트의 저서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점은 한나의 저서를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그녀의 저서를 세 가지로 분류하여 살펴보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Part 03 사상, 저작, 친구들
《전체주의의 기원》
《아모르 문디》
《아모르 문디》, 이런 제목의 책은 없다. 그런데도 이런 제목으로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은 《인간의 조건》이다. 다만 한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최근에야 진정으로 세계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이제 내가 그 일을 할 것 같아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정치 이론에 대한 이 책을 ‘아모르 문디(세계에 대한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어요.”(214쪽)
《과거와 미래 사이》
Part 04 끝나지 않는 논란
이 part에서 소개되고 있는 책은 논란이 되고 있는 것들이다.
특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대하여는 많은 오해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한나의 해명을 들어볼 수 있어 매우 유용한 대목이라 하겠다. (237쪽 이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혁명론》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Part 05 사랑, 우정, 이별 그리고 불멸의 죽음
《공화국의 위기》
《정신의 삶》
한나 아렌트를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 - 발터 벤야민
독자들은 한나 아렌트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 사람중 중요한 인물로 발터 벤야민과 헤르만 브로흐를 들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은 한나의 삶과 일에 끊임없이 영향(108쪽)을 준 사람인데, 그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부분을 적어두고 싶다.
한나는 에세이 <발터 벤야민>에서 셰익스피어의 로맨스극 『템페스트』 중 1막 2장을 언급하며 사유를 ‘진주 채취’에 빗댔다.
다섯 길 물 속에 그대 아버지 누워있네.
뼈는 산호가 되고
눈은 진주로 변했다네
그의 육신은 하나도 썩지 않았고
바다의 변화를 견뎌내면서
귀하고 신비로운 것이 되었다네.
한나가 다루는 과거의 요소들은 모두 ‘급격한 변화’를 이겨냈다. 우리는 과거에서 현대와 닮은 점을 발견할 수 없고, 과거에서 전체주의의 출현 같은 역사적 사건을 설명할만한 어떤 인과적 추론도 할 수 없다. ‘진주 채취’는 역사의 단편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빛을 비춰줄 이 귀하고 신비한 보석을 표면으로 가져올 수 있다. (20-21쪽)
여기에서 언급된 ‘급격한 변화’에 대하여는 2018년 1월에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셰익스피어가 만든 어휘, sea change를 찾아서 (1)
http://blog.yes24.com/document/10089897
셰익스피어가 만든 어휘, sea change를 찾아서 (2)
http://blog.yes24.com/document/10089905
‘sea change’는 ‘급격한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와 같이 읽다.
헤르만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그리스 신화를 읽다가 발견한 사람이 베르길리우스이다.
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착안하여 《아이네이스》를 쓴 사람이며,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기도 하는 로마의 시인이다.
그런 그를 소재로 하여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을 헤르만 브로흐가 썼다.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을 읽으면서 그 난해함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마침 이 책에서 한나가 언급해 놓은 것이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여기 적어둔다.
브로흐의 시간적 도식을 ‘더 이상 그리고 아직(no longer and not yet)’이라고 정의했다. 한나는 이 작품이 프루스트와 카프카 사이의 공백을 메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인공 베르길리우스를 사라지고 없는, 즉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과 ‘아직 오지 않은’ 세상 사이 텅 빈 공간의 심연을 가로지르려 애쓴 인물로 평가했다. 한나가 보기에 이 깊은 구렁은,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생겼고 메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의 공장이 그 실을 끊어낼 때까지 “더 깊어지고 더 무서워졌다.” 한나는 브로흐의 『베르길리우스의 죽음』과 프루스트 및 카프카의 작품에서 생각한 바를 바탕으로, 훗날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틈새(gap space)’라는 자신만의 개념을 정립했다. (172 - 174쪽)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 대상을 사랑하는 것만큼 그 대상에 대해 깊은 말을 하는 건 없다. 다시 말해, 사랑은 상대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길 바라는 것이다. ‘Amo: Volo ut sis’, 즉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너이길 바라는 것이다.” (65, 70쪽)
한나는 소크라테스식 방법을 따랐다. 즉 대화하고, 모순이 없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방식이었다. (20쪽)
한나는 우정의 원천이 대화라고 생각했다. 한나에 따르면 “수다스러움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다. 그리고 진정한 대화는 상대방과 상대방이 하는 말에서 얻는 즐거움으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단순한 이야기나 토론과 다르다.”(266쪽)
(하이델베르크에서)
조약돌이 깔린 거리의 그 길목을 막스 셸러, 게오르크 짐멜, 에른스트 블로흐, 게오르크 루카치 등 당대 저명한 철학자 모두가 거닐었다. (67쪽)
다시, 이 책은?
한나 아렌트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 해서 그녀에 관한 책들을 제법 많이 읽었는데 이 책은 평전으로 그녀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그리고 폭넓게 살펴보고 있어 한나 아렌트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의 효용성을 말하자면, 이 책으로 그동안 한나 아렌트에 관해 읽었던 책들을 하나로 꿰어 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기억되고 있던 한나 아렌트, 이 책으로 하나의 모습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한나 아렌트에 대하여 이런 말로 정리해보자.
한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은, 이 세상을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이 한계를 설정하며, 다시 배열하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언어로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나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3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