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 스파르타쿠스는 어쩌다 손흥민이 되었나 건들건들 컬렉션
하마모토 다카시 외 지음, 노경아 옮김 / 레드리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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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결투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바로 서부극이다.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야말로 미장센이 끝내주는 화면에권총을 찬 두 사나이가 니타난다그리고 몇 마디 나눈 다음에 뒤돌아서서 몇 걸음을 걷다가 뒤돌아서서 권총을 빼들고 서로 탕!

몇 초의 정적이 흐른 뒤이윽고 한 사나이가 서서히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물론 쓰러져 대지와 키스하는 건 언제나 악당그리고 미녀와 키스하는 건 주인공.

그렇게 살아남은 사나이가 경쾌한 배경음악을 뒤로 한 채미녀도 멀리한 채 표표히 저 멀리 광야로 사라지는...

 

그런 결투가 떠오른다.

<석양의 결투>, <황야의 결투>, <오케이 목장의 결투>, 그리고 <하이 눈>, 또 뭐가 있더라?

 

그런데 그렇게 폼나는 결투는 사실이 아니라 한다. 어디까지나 영화를 위한 장면이라는 것이다그럼 실제 결투 장면은?

 

자세한 내용은 78쪽 이하를 참조하시라.

다만 이것 하나당시 권총은 구조상 그렇게 빨리 뽑을 수 없었다실제 결투에서 권총 뽑기 기술이 발휘된 경우는 아마 손 꼽을 정도로 드물 것이다. (84)

 

이 책은 그런 결투를 주제로결투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사람 목숨을 담보로 하던 결투가 어떻게 현재의 스포츠로 변하여 왔는지를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구성은 그래서 다음과 같다.

 

1장 유럽의 결투사

2장 유럽의 결투 금지령

3장 결투에 빠진 독일 학생과 장교

4장 스포츠가 된 결투

5장 축구와 히틀러의 연결 고리

 

자료 차원에서도 소중한 내용들.

 

이 책에서 그간 찾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만난다.

자료 차원에서도 소중한 내용들이다.

 

루소의 아버지는?

 

루소는 고아처럼 살았는데그 이유 여기서 알게 된다.

 

부친이 결투를 벌이고 도망을 친 것이다. 그래서 루소는 고아처럼 살았는데그래서 그는 당연히 결투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120)

 

볼테르결투로 투옥되다.

 

근대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대개 결투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볼테르는 결투로 인해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된 적이 있으니반결투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 (120)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

 

프리드리히 2세는 중세의 계몽군주였다.

그에 대하여는 시오노 나나미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를 읽으면서 그의 사상을 접한 적이 있는데결투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 책으로 알게 된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프랑스 계몽주의자의 대표적인 지식인인 볼테르와 가까이 지낸 계몽군주로 유명하다그도 야만적인 결투를 일관되게 부정했다그래서 나는 용감한 장교를 총애하지만 사형 집행인은 우리 군대에 필요 없다.”라며 결투에서 상대를 죽인 장교를 즉시 파면하기도 했다상관의 결투 신청을 받은 장교의 권리를 다루는 훈령에서도 그런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하 훈령 -  생략) (112-113)

 

이런 자료는프리드리히 2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괴테결투후 피신하다.

 

이 책 서두에 결투를 한 유명인을 소개한다.

 

철혈 재상으로 유명한 비스마르크도 학생 시절 무려 25번이나 결투를 치렀다.

대문호 괴테도 실제로 결투를 경험했고,

유명한 사회 활동가 라살레는 결투로 목숨을 잃었다. (4)

 

그중 괴테에 대하여서두에 언급된 내용만 읽고서도 무척 궁금해졌다.

과연 어떻게 결투를 했을까그리고 그 결과는등등.

 

그 자세한 내막이 131쪽 이하에 <괴테의 흑역사에 나온다.

 

먼저 이런 것 살펴본다.

 

1765년 10월 3당시 16세였던 괴테는 법학을 배우기 위해 라이프치히로 간다.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한 것이다.

1768년 8월 28일에 괴테는 갑자기 라이프치히 대학을 떠나 고향인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간다.

그로부터 2년후인 1770년 독일의 대학이 아닌 프랑스령 스트라스부르의 대학에 입학한다.

 

다시 정리하면 1765년 라이프치히, 1768년 라이프치히 대학을 떠나고, 1770년에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면 괴테는 왜 갑자기 라이프치히 대학을 떠난 것일까?

바로 여기에 결투라는 이 책의 주제가 자리하고 있다.

 

괴테는 1767년 가을동급생인 구스타프 베르크만과 결투를 하게 된다.

실제 사건이다두명은 여인 케트헨 때문에 결투를 한다.

괴테가 사랑하던 여인 케트헨을 베르크만도 역시 사랑했기 때문이다.

결투에서 괴테는 팔에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괴테는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결핵 치료차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결투 때문이었다고 한다.

괴테 연구가인 게르하르트 뮐러에 의하면 베르크만과의 결투 사건이 밝혀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 낙향을 한 것이라고 한다. (135)

 

그런데이런 사실은 어떻게 알려졌을까?

괴테의 자서전인 시와 진실에는 이런 일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세월이 흘러 괴테가 유명해진 다음에 베르크만이 가족에게 자랑삼아 결투 사건을 이야기한 것이 풍문으로 조금씩 전해진 덕분이다,  (136) 라고 밝혀 놓았다. 

 

나로서는 왜 괴테가 독일의 대학이 아니라프랑스령인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갔을까 하는 점이 궁금했었는데이 책으로 그 궁금증이 풀렸다.

거기에서 괴테는 프랑스로 시집을 가던 마리 앙투아네트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세운 건물에 들어가 목도한 사실 하나를 시와 진실에 기록해 놓기도 했다.

 

다시이 책은?‘

 

저자는 결투가 현대에 와서 스포츠로 변하게 되는 역사적 과장을 낱낱이 훑어보고 있다.

그중 이런 대목 기록해 둔다.

 

스포츠도 연극과 마찬가지다비일상적인 스포츠 이벤트도 축제처럼 일상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관련하여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카타르시스 이론을 펼쳤다.

관객이 비극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은 비극이 일종의 카타르시스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 물론 여기 언급된 카타르시스란 긍정적인 개념으로정신을 정화하여 우울감과 불안을 해소하는 것을 가리킨다.’ (250)

 

저자중 한명인 스가노 미치나리는 독일 유학중에 실제 결투를 경험했다그 생생한 기록이 16쪽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데그 결투의 결과가 그의 왼쪽 뺨과 정수리에 기록되어 있다 한다.

 

그때 결투를 하기 위해 기다리던 그 급박한 시간에 느꼈을 불안감이게 실제인 것은 두말 할 필요 없다그러니 그런 결투가 스포츠로 바뀌어 우리는 이제 관중이 되어 편안하게 구경꾼 노릇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실제 결투의 참가자가 되어 느꼈을 불안 대신 경기를 보면서 우리 안에 쌓였을 우울감과 불안을 해소하는 카타르시스를 맛보니그게 역사의 진전이 우리 개인에게도 임한 것이라 하겠다.

 

이 책을 읽으며 그간 우리가 스포츠 관람을 하면서 느꼈던 카타르시스의 원천이 어디였던가를 알아보는 기쁨역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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