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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쫌 아는 어른이 되고 싶어 -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이 쌓이는 지식 탐사기
조이엘 지음 / 섬타임즈 / 2022년 7월
평점 :
인문학 쫌 아는 어른이 되고 싶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이야기
이 책에 실린 글들, 이야기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아슬아슬하다’는 그 말은 내가 말한 게 아니다. 저자의 말이다.
“인간은 태초부터 이야기에 중독되었다.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로 세상을 해석하며, 이야기로 삶을 살아낸다. 인간은 이야기 없이 살 수 없다. 이 책은 갭투자, 고흐, 영조, 우주배경복사 등 무관한 단어들을 아슬하게 연결해서 만든 한 편의 이야기다.”(5쪽)
프롤로그에서 인용한 문장에서 특별히 ‘무관한 단어들을 아슬하게 연결해서’에 밑줄을 긋는다.
저자는 <갭투자의 진실이>란 항목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갭투자, 요즘 신문 지상을 오르내리는 단어다.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이야기 할 시간 없으니, 바로 넘어가자.
프랑스에는 비아(Viager)라는 계약 시스템이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
그 사례를 듣는 동안 비아제라는 계약이 어떤 형태인지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1965년 프랑스의 남부 도시 아를, 시내 중심가 10억 원짜리 아파트가 팔렸는데, 매매계약서가 희한하다. (이게 비아제 계약이다.)
- 매수인 : 앙드레 라프레 (남, 49세)
- 매매 대금 : 0 원.
이런 글로 시작한 이 책,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저자 말대로 때로는 아슬아슬하게, 때로는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듯 글들이 이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의 주인공은 위의 계약서에 매도인으로 등장한 프랑스의 아를 출신 잔 칼망이다. 그는 122세까지 살아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한 인물이다. (300쪽)
그녀가 왜 이 책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바로 고흐 때문이다. 그녀가 122세까지 사는 동안, 고흐를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래서 유명해진 것이고, 그녀가 122세까지 살아 기록을 세운 것은 그 다음 순위다.
칼망과 고흐의 만남, 그 전말은 이렇다.
칼망은 평생 아를에 살았고, 고흐가 아를에 거주할 땐 10대 소녀였다. 그렇다면 칼망은 고흐와 길에서라도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을까? (192쪽)‘
이런 저자의 의문은 바로 자답(自答)으로 이어진다.
만났다. 1888년 어느 날, 고흐는 캔버스를 사러 아를 시내 화방에 갔다. 그곳에 열세 살 소녀 칼망이 있었다. 칼망은 당시의 고흐를 이렇게 평가했다.
“지독하게 못 생겼다.”
만남 이후 100년쯤 지나 BBC 방송과 한 인터뷰라 칼망의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 있지만 아를 이전에도 고흐에 대한 평가는 ’누더기 차림의 부랑자‘였다. 고흐는 술보다는 독에 가까운 압센트 중독자였다. (193-194쪽)
당시 칼망이 있었던 화방은 칼망의 친척이 운영하는 화방이라고 하고, <뉴욕타임즈>는 아버지의 소유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어지는 이야기 :
아를에서 고흐는 그림을 전혀 팔지 못했다. 교양있고 부유한데다 화방까지 운영했던 칼망 가문이었지만 고흐 그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몇 점, 아니 한 점만 사두었더라면 칼망은 노후에 돈 걱정은 하지 않았을텐데. 횡재를 놓친 아쉬움이 고흐에 대한 박한 평가로 이어지지는 않았을까? (195쪽)
참고로, 몇 자 덧붙인다.
KBS의 간판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역사 저널 <그날>에서 정약용을 다룬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한 임 모 변호사가 고흐와 잔 칼망을 언급했는데, 그 내용이 요즘 말하는 ’팩트 체크‘에 해당한다는 점, 여기 덧붙인다.
비아제 계약의 전말은?
이제 맨처음 인용한 계약의 전말을 살펴보자.
당시 칼망은 90세,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 한 채가 전재산이었다.
그나마 살고 있는 집이니, 돈 나올 데는 없고 세금과 건물 유지비는 갈수록 부담이 되었다.
그때 그런 형편을 알고 있던 앙드레 라프레가 솔깃한 제안을 해 온다.
아파트를 자기에게 팔되, 명의를 넘기고 아파트에 죽을 때까지 살아도 된다. 거기에 매매대금을 일시불이 아니라 마치 연금처럼 한 달에 얼마씩을 준다. 죽을 때까지.
그런 계약이 이루어지고, 그뒤로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계약 당사자가 죽었다. 죽긴 했는데, 칼망이 죽은 게 아니라 앙드레 라프레가 먼저 죽었다. 당시 그는 77세, 칼망은 120세였다.
그런데 계약서에 이런 조항도 있었다.
이 계약은 매도인이 죽어야만 종결된다. 매수인이 죽으면? 그의 자녀가 그 의무를 부담한다.
그래서 그 계약에 따라서 그의 후손들이 매달 얼마씩을 칼망에게 지급해야만 했다.
후손들이 그걸 거부하면, 매매계약을 무효가 되고, 칼망은 그동안 받았던 돈은 토해내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칼망은 죽을 때까지 그 집에서 살면서, 앙드레 라프레와 그의 후손이 지불하는 생활비를 받으면서 살았다는 ’이야기‘다.
다시, 이 책은?
이 책,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 말이 딱 맞는다. 시작점에서 그 다음 글이 어디로 갈지, 대체 짐작할 수 없다.
예고편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 다음을 예측할 수 없는 그 어떤 단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툭 하고 던져 놓은 글이다.
그런데 조금더 더 읽다보면 어느새 저자의 글에 길들여져서, 이게 뇌를 자극하는 방법이구나 싶어진다,
이런 문구가 표지에 있는데, 이제야 그 의미가 잡힌다.
갭투자에서 고흐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흥미로운 지식들로
당신의 뇌를 자극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