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튀기는 인문학
곽경훈 지음 / 그여자가웃는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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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튀기는 인문학

 

이 책은?

 

이 책 침 튀기는 인문학은 인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를 증명하고 있는, 가치 있는 책이다.

 

저자는 곽경훈, [모험과 여행을 동경해서 종군기자, 인류학자, 연극배우,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현실과 타협해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독서광답게 의사학(medical history)에 관심이 컸는데 군복무 후에 임상의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응급의학을 전문 분야로 선택했다. 그러고도 글쓰기에 대한 꿈만은 포기할 수 없어서 의사가 뭐라고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라는 두 편의 의학 에세이, 그리고 아동용 소설 의사 노빈손과 위기일발 응급의료센터를 적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 침 튀기는 인문학<기존 집필 분야에서 벗어나 침이란 주제로 역사, 의학, 신화, 전설, 민담을 약간의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엮은 책>이라는 소개글처럼, 저자의 인문학적 성찰이 빛나는 글로 가득 채워져 있다.

 

저자는 이야기꾼이다.

역사에서, 의학에서, 신화에서 그리고 전설과 민담에서 이야기거리를 꺼집어내, 잘 조제하여 내놓는다.

 

각 이야기의 성분을 분석해 보자.

 

이집트인들이 마셨던 음료 맥주에 들어갔던 인간의 침, - 역사

광견병, 황열병, - 의학

도쿄 지하철 테러에 사용되었던 사린가스, - 의학

침과 피(좀비와 드라큘라), - 민담과 전설

재증걸루와 개로왕 이야기에서 따온 침 뱉기, - 역사

볼거리와 MMR 백신, - 의학사

파블로브의 개 실험, - 역사와 의학

HIV 바이러스와 에이즈, - 의학

신화 속 침으로 태어난 인물, - 신화 (북유럽 신화)

루 게릭병, - 의학, 스포츠

클레오파트라와 코브라 침, - 역사, 의학

인플루엔자와 비말 감염, - 의학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와 물린 자국의 법적 증거 능력, - 범죄학, 의학

마르코 폴로가 경험한 동방의 나라의 침 뱉기 예절 - 역사

 

침으로만, 침으로는

 

이 책 제목이 침 튀기는 인문학인만큼 침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저자가 의사이니 당연히 침과 병이 연결되는 것이 소재가 된다.

먼저 이런 것 짚고 가자. 침으로만 전염되는 병이 있고, 침으로는 전염되지 않는 병이 있다. 광견병과 에이즈 얘기다.

그중 먼저 침으로만 전염이 되는 광견병 바이러스는 침으로만 감염되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새로운 개체로 건너가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감염된 개체가 감염되지 않은 개체를 무는 것이다. (25)

 

에이즈는 혈액을 통해 전염되고 침이나 소변으로는 전염될 가능성이 희박해서 성행위와 같은 아주 밀접한 접촉이 아니라면 결코 위험하지 않다. (158)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이 책에는 13개의 이야기 꼭지가 있는데, 그중 압권은 아무래도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을 얘기하는 꼭지가 아닌가 한다.

 

클레오파트라는 독으로 죽었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독사를 이용해서, 물려 독에 죽었다고 한다. (214-215)

그러면 어떤 뱀의 독을 이용했을까?

 

독이 있는 뱀은 두 가지이다. 코브라와 살무사.

그런데 그것들에 물린 증상은 각각 다르다.

코브라는 상대의 근육 깊이 독을 주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독의 성분이 주로 신경독과 심장근육에 손상을 주는 물질이다. 물린 부위의 극소 증상은 심하지 않아 무섭게 부어오르거나 조직이 급속히 괴사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신경가스 같은 독가스를 흡입했을 때처럼 호흡 근육이 마비되거나 갑작스레 일어난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반면 살무사는 다르다.

살무사는 상대방의 근육 깊숙이 독을 주입할 수 있어서 독의 성분이 주로 조직 괴사와 혈액 응고 장애를 일으키는 물질이다. 물린 부위가 심하게 부어오르고 괴사도 급속히 진행되며 형액 응고 장애로 뇌출혈이나 심각한 복부 장기 출혈을 일으켜 사망하게 된다.

 

살무사의 독으로 죽는다면, 독에 물린 자리가 심하게 부어오르고 괴사가 급속히 진행되어 시커멓게 변하고 혈액 응고 장애와 복부 장기 출혈로 바닥에 피를 잔뜩 토했을 것이다. 반면 코브라 독에 죽는다면, 깊은 잠에 빠지듯 차분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렇다면, 클레오파트라가 선택할만한 죽음은 어떤 것일까? 코브라, 살무사?

만일 당신이 클레오파트라라면, 어떤 독으로 죽을 것인가?

 

집단면역 (119, 120, 124)

이 책으로 집단 면역이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전염병이 유행하려면, 많은 수의 면역 없는 사람이 필요하다.

특정 집단에서 면역 있는 사람의 비율이 높아지면 전염병은 유행하기 어렵다. 설사 한 두 사람이 걸려도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면역력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커서 유행을 오래 이어갈 연결고리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 면역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집단 전체가 지니는 면역으로 실질적으로 전염병의 유행을 좌우한다.

 

다시. 이 책은?

 

또한 드라큘라와 좀비를 비교하는 꼭지도 아주 흥미있는 내용이다.

상상속의 존재오직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드라큘라와 좀비는 각각 피와 침으로 구별된다.

피를 빨아먹는 드라큘라는 사악하지만 이성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반면 좀비는 외모부터 다르다.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뇌는 전혀 작동되지 않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피와 침의 차이는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침,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침이 없다면 사람은 살지 못한다. 그 정도로 침의 역할이 대단하다.

 

먼저 침은 섭취한 음식물을 씹을 때 치아의 마모를 막아주는 윤활 작용을 한다.

물리적으로는 음식을 부드럽게 만들고, 화학적으로는 아밀라아 제 같은 소화 효소의 작용으로 기본적인 소화를 돕는다.

입안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고, 유해 미생물의 번식도 막아준다.

이런 기능을 감당하려면, 항상 입안이 촉촉해야 해서, 침이 끊임없이 만들어져야 한다.(196)

 

이런 침, 보통 사람은 하루에 1,5 리터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침은 하루 내내 만들어지고 자연스레 삼키곤 한다.

 

이렇게 우리 몸을 지탱하고 어느새 삼켜지는 침, 그 침이 대단하지 않은가?

이 책으로 침을 제대로 알게 되니, 그동안 무심했던 침에 대해 새롭게 대하게 된다.

 

입술에 침 한번 바르지 않고 하는 얘긴데, 이 책, 침을 소재로 한, 인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의미와 재미, 그리고 흥미를 가득 담은, 인문학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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