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건너뛰기
이주호 지음 / 브릭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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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건너 뛰기

 

이 책은?

 

이 책 무덤 건너뛰기를 어떻게 분류할까?

여행기? 그것으론 부족하고 순례기라면 너무 막연하고, 해서 순례기이면서 철학, 삶을 반추해보는 에세이라고 부르면 어떨지?

 

저자는 이주호 <여행매거진 [브릭스]를 만들고 있다. 2009도쿄스토리를 출간하며 여행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저서로 오사카에서 길을 묻다, 도쿄적 일상을 펴냈고, 말 걸어오는 동네, 홍콩단편, 규슈단편을 함께 썼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는 여행을 가면 꼭 그곳에 묻힌 예술가나 철학자들의 무덤을 찾아다닌다.

저자가 다녀온 무덤 순례는, 헨릭 입센, 사르트르, 고흐, 에디트 파아프, 나쓰메 소세키, 윤동주, 프란체스코, 세종, 허난설헌, 니코스 카잔차키스 등이다.

 

이 책에는 저자의 무덤을 찾아가는 순례길에서 세 명의 무덤 찾는 길이 소개되고 있다.

신라 불교의 기틀을 세운 승려 자장,

비운의 삶을 살다 간 허난설헌과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

사형당한 조선 최초의 가톨릭 신부 김대건.

 

먼저 저자는 생각의 흐름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독자들을 산으로 들로 끌고 간다.

그래서 내 멋대로 생각을 이어가본다.”(28)

 

시작은 불교의 사찰에서 적멸보궁이다.

적멸보궁이란 부처의 진신 사리를 모신 곳이다. 해서 이곳에는 불상을 두지 않는 법이라 빈 연화대만 있다. (17) 저자는 5대 적멸보궁에서 순례를 시작한다.

5대 적멸보궁, 오대산, 양산 통도사, 정선 정암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 이렇게 5곳이다. 나 역시 인근 사찰을 순례하면서 적멸보궁이란 곳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 적이 있어, 저자의 발걸음에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중에 하나, 정선에서 시작한 적멸보궁 순례에서 저자는 자장이란 신라 시대 승려를 알게 된다.

 

저자가 소개하는 자장의 생애는 이렇다.

신라 승려 자장. 당나라에서 부처의 뼈를 들여온 사람, 통도사 금강 계단에서 신라 불교의 계율을 바로 세우고, 오대산에 들어가 깨달음을 완성한 사람. 그러나 이곳 태백산 어느 기슭에서 단발의 비명을 지르고 횡사한 사람. (19)

 

자장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가 삼국유사를 만난다.

뜻밖에 삼국유사구절의 행간을 이 책을 통해서 새기게 된 것이다.

 

승려 자장의 죽음을 삼국유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자장이 그 말을 듣고는 그제야 위의(威儀)를 갖추고 빛을 찾아 서둘러 남쪽 고개에 올랐으나 이미 까마득하여 따라가지 못했다. 자장이 그곳에서 쓰러져 죽자 화장하여 석혈(石穴) 가운데 유골을 모셨다.

(삼국유사, 김원중 역, 민음사, 453)

 

이 부분을 저자의 실감나는 해설로 읽어보자.

 

문수보살의 보좌를 본 제자들은 당황하여 스승에게 소리를 치지만, 문수보살은 어느새 빛을 몰고서 남쪽 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스승님 우리 이제 망했어요. 땅을 치고 우는 제자들을 버선발로 뛰어 넘으며 자장은 그 빛을 따라 심산유곡을 거침없이 헤쳐 들어간다. 축지법을 배웠다 한들 빛을 따라잡을 잽싼 걸음이 어디 있으랴. 아득히 사라지는 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자장은 엎어져 통곡한다. 그리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 단발의 비명을 남기고 죽는다. (50)

 

저자의 해설이 훨씬 실감이 나지 않는가?

또한 삼국유사에서 저자 일연이 자장편에 이어 바로 원효편을 넣은 이유를 전해 듣는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전한다.

 

자장이 아상에 사로잡혀 죽는 것으로 마무리 한 뒤 바로 다음장에서 원효불기, 원효는 얽매이지 않는다는 새로운 장을 시작하는 일연.

계율을 세웠다는 자장 뒤에 계율 따위에 매이지 않는다는 원효를 이어 붙이는 극적 배신, 아니 배치.  (56)

 

그렇게 배치한 일연의 의도를 읽어내는 저자를 따라, 삼국유사공부하게 된다.

 

조선에 안티고네가 있었다.

 

우리 역사에는 사형된 인물들이 많이 있다. 사약을 받은 사람들, 목이 잘리는 형을 당한 사람. 당시 집권세력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어, 유명을 달리한 사람 중, 두명의 인물이 눈에 뜨인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과 조선조 말에 천주교의 전래 시에 우리 나라 최초로 신부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

 

그들의 죽음에 대한 기록 중 사형된 후의 시신에 대한 기록이 이 책에 있어, 소개한다.

 

(허균이) 사형된 장소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서울 시청 자리에 있었던 군기시 앞이 아니었을까. 군기시는 병기 등을 제조하는 곳이었는데, 중죄인의 처형은 주로 그 앞에서 했다. 뜯겨나간 허균의 머리는 거리에 전시되었다. 그의 머리를 가져다 장사 지내려던 이는 잡혀가 심문을 받았다. (134)

 

안성 미리내 성지, 김대건 신부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머리가 잘려나간 그 자리에 묻혔다. 시신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군사들이 지켰다. 40일 뒤 이민식이라는 17세 소년이 감시가 허술한 틈을 노려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는 자신의 선산이 있는 안성 미리내까지 7일을 걸었다. 신부를 안장한 뒤 그는 그곳에 머물며 묘소를 지켰다. (164)

 

시니컬(cynical)의 의미를 다시 깨닫는다.

 

저자가 의식의 흐름기법을 마음껏 활용하여, 생각의 흐름에 기억을 떠올리며 쓰는 글에, 특히 시니컬한 부분이 많이 보여, 몇 개 음미해 본다.

 

이래저래 생각하다 결국 늘 제자리이던 공부를 다시 시작해본다. <반야심경>,<금강경>의 여러 해설을 비교해본다.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도덕경>을 편다. 한자 공부는 되는데, 여기서도 해설자들끼리 서로 욕을 한다. 신약성서를 읽는다. 예수님 정말 사나이시네. 그래서 그런가? 추종자들이 다 전투적이다.(32)

 

정말로 안철수가 계단을 뛰어 내려간 게 달리기 책을 내기 위한 집필의 일환이었는지, 누군가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36)    

 

허균, 허난설헌 생가를 찾아가는 길, 커피 거리가 있는 안목해변에서.

커피 한 잔을 들고 길가 벤치에 앉는다. 어디 커피가 맛있어요? 나보다 살짝 나이가 들어보이는 부부가 묻는다. 나의 컵 홀더를 보여준다. 여기는 가지 마세요. (83)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인간은 희극보다 비극에 몰입이 쉽고, 그래서 나 또한 삶을 적이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척하면서도 내심은 비극에 매달려 살고 있었다. 비극은 내가 살아가는 힘이었다. (53)

 

삶의 시작이 내 기억에 없듯, 내 소멸도 내 기억에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 시간이란 살아있는 시간뿐이다. (135)

 

다시, 이 책은?

 

이 책을 읽다가 그리스 비극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가 연상되어, 한 꼭지 글을 써보았다.

<조선에도 안티고네가 있었다.>

http://blog.yes24.com/document/12421354

 

168쪽으로 두께가 얇다.

그러니 한 번만 읽지 말고 몇 번을 읽어보자. 읽을수록 국물이 우러나는 책이다.

적어도 자장, 허균과 허난설헌, 그리고 김대건 신부에 대하여는 뭔가 알게 되었다는 뿌듯함을 지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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