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카멜레온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한동안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이 국내에 출판되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지난 1월에만 세 권의 책이 그야말로 쏟아져나왔다. 미치오 슈스케라면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이 가장 유명할 듯 싶은데,,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흔히 초기작이라고 말하는 미스터리가 가미된 작품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도 그렇겠지만,,- 으로, 그 중에서도 [술래의 발소리]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한동안은 다소 달라진 작풍에 많이 읽지는 않았었는데 [투명 카멜레온]은 아야츠지 유키토가 추천평까지 썼다는 말에 흥미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누구나 반할 수밖에 없는 멋진 목소리와 그와 상반된 평범한, 그렇지만 목소리와 지나치게 비교가되어 평가절하되는 외모를 가진 라디오 DJ '기리하타 교타로'이다. 매일 방송 후에 단골 바인 'if'를 찾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라디오의 소재를 찾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그에게 어느 날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 갑작스레 'if'에 들어와 '죽였다...'라고 말한 '미카지 케이'를 기리하라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속이게 되고, 이를 빌미로 기리하라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들까지 그녀의 일을 돕게 된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녀의 행동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악화되는 상황에서 그들은 좌충우돌하게 되는데,,,

줄거리만 보자면 코미디 단편 드라마를 연상시킬 수 있고 실제로도 소설 전반적인 분위기가 가볍고 유쾌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그 속의 사건은 마냥 밝지만은 않다. 사실 소설을 읽으며 막무가내인 미카지 케이의 행동이 과히 긍정적으로 보이지만은 않았고, 그런 그녀에게 단순히 그녀를 약간 속였다고는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는 기리하타 및 그의 친구들 -심지어 그녀를 속이는데 크게 관여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적극적으로 돕는다- 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만 총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에서 초중반 장들의 마지막에 나오는 기리하타가 방송하는 라디오의 사연이 유쾌하면서도 즐겁고, 그 사연과 등장인물들을 연결시켜 생각하면 그들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아 마치 잘 아는 이웃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소설 전반을 이끌어가는 '미카지 케이가 품고 있는 미스터리가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책을 읽어나갔다. 중반을 넘어 거의 3/4 지점에 달하기까지도 '소설이 다소 개연성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매우 사소한 선택과 짧은 말 몇 마디였을 뿐인데."

 그래도 세상은 크게 변하고 말았다.

 

책을 덮으며, 기리하타를 포함한 등장인물의 행동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 라고 적고 그 이유를 대략적으로라도 적을까,,를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사실 이 책은 정말이지 출판사의 책 소개가 너무 많이 담고 있다. 되도록 책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읽으면 가장 좋을 듯 한데, 가장 좋은 정도라면 책의 뒷표지에 적힌 줄거리 정도? 아마도 책을 읽은 후라면 왜 그런지 이해할 것 같아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고자 한다.

책 제목인 '투명 카멜레온'의 의미는 상당히 초반에 알 수 있지만, 그것이 주는 또 다른 의미, 좀 더 큰 울림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야 깨닳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다 읽고난 후 내가 받은 느낌은 이 책은 초기의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보는 듯 했다는 것이다.(사족이지만 특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을 읽은 후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많은 복선과 후반부의 깔끔한 회수, 모든 복선이 회수된 후 소설로부터 받는 느낌 자체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 그리고 내가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시피- 이사카 고타로의 초기 작품을 매우 좋아했던 것처럼 - 이 책이 주는 여러 가지 감정에도 불구하고- 이 책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멀기만 한 그들이지만 가슴 속에 '투명 카멜레온'을 품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하다. 내가 즐겨 읽었던 초기 작풍과도 다르고,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이라고 미리 알고 읽지 않았으면 그의 책인 줄도 몰랐을 것만 같은 이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다른 재미가 있었던, 참 매력적인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나카야마 시치리의 책도 이걸로 아마 네 권째.. 아니 다섯 권째던가,, 아무튼 꽤 여러 권 읽은 것 같은데,, 어쩌다보니 읽기만 하고 리뷰는 안 남기는 대표작가(?)가 되고 말았다. 사실 이전 세 권(혹은 네 권)이 너무 연달아 읽어서인지 혹은 그 패턴이 비슷해서인지 한 권 한 권 추가로 읽을 때마다 이전 책이 준 감정이 너무 빠르게 희석되는 느낌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좀 텀을 주고 다시 읽은 책이 바로 이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보건복지사무소의 직원이 아사한 채로 발견된다. 주변에서는 절대 누군가로부터 원한을 살 리가 없는 아주 선량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선량한 사람'을 이처럼 끔찍한 방법으로 죽인 범인은 대체 누구일까?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채 새로운 피해자가 발생한다. 두 번째 피해자 역시 아사한 채로 발견되고 주변에서는 역시 아주 좋은 사람이라며 입을 모은다. 과연 어떤 원한이 있어서 이런 연쇄사건을 벌인 것일까.

나카야마 시치리의 책을 아주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읽은 소설을 기준으로 본다면 패턴이 꽤 비슷하다. 다소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관계 및 살해동기가 밝혀지고, 책 전체를 아우르는 사회적인 이슈를 던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반전이,,, 이번 책 역시 그 패턴을 벗어나지는 않는데, 그럼에도 이 책이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그 묘사가 아주,, 사실적이면서도 잔혹하기 때문이다. 묘사가 다소 잔인해서 읽다 잠시 중단한 그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보다도 한층 더,,, 충격적이다.

사실 이 책은 범인도 쉽게 짐작할 수 있고, 피해자의 사망원인 및 직업 등을 토대로 생각할 때 살해동기 역시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다른 책들에 비해 범인의 정체 및 살해 동기, 그것을 파헤쳐나가는 과정의 반전보다 충격적인 것이 바로 한 인간이 가난과 굶주림으로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나는 나카야마 시치리라는 작가가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이 책을 썼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을 정도로 그 묘사가,,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처절하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서너 시간 남짓,, 그 사이에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던 한 사람이 빠르게 죽음에 이르는 모습에 몇 번이나 읽기를 중단하고 싶어졌다. '고독사'라든지 '아사'는 최근에는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기사로 접하게 된다. 물론 기사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왜 그런 죽음을 맞이했을까,,라는 생각도 하지만 그 몇 줄의 기사로 볼 때와 이렇게 책으로 세세하게 볼 때 받는 감정은 정말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고 펑펑 울고 말았다.

범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사들 이야기는 다른 소설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으니 접어두고,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과정을 잠시 보면 '부정수급을 막으려는 자'와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자'의 대립 -사실 대립이라고 하기에는 파워의 차이가 너무 크지만- 이 있다. 대지진이라는 큰 자연재해 이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많지만 예산은 줄어가는 현실에서 부정수급을 막아보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아닌 '서류'에 돈을 주고 주지 않는 자들로 인해 누군가가 힘든 시간을 보내다 사망했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을 정말 소중히 여긴 사람이 있다면,, 어떤 책을 읽었을 때보다 마음이 복잡했다. 소설이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그럼에도 정말 실제로 이런 상황이라면,,, 그래도 역시 결론은 그런 것 같다. 99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던가,, 99명의 부정수급자에게 돈을 내주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면 안 되는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실제로 내가 그 상황, 그 위치에 있었다면 얼굴에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아무래도 나도 사회복지사라서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책을 읽은 것 같다.ㅠ_ㅠ)

[동트기 힘든 긴 밤]이후로 정말 묵직하다 못해 그냥 무거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 만큼 생각이 많아지는 책을 또 만났구나 싶었다. 사건의 구성이나 책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 책을 덮은 후에 길게 남겨지는 생각들까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음에도 꽤 수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은 후 한 1주일쯤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이 책의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아 꽤나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시급이 300엔이야.

정말로 돼먹지 못한 아르바이트라니까.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너한테 이 아르바이트를 추천할게."

 

 

비가 내리는 어느 날 평범한 고등학생인 '사쿠라 신지'는 갑작스레 사신으로 채용된다. 그리고 동급생인 '하나모리 유키'가 찾아와 자신이 사쿠라와 함께 사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고 알려준다. 사신의 업무는 이 세상에 미련이 남아있는 '사자'를 저 세상으로 떠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리고 시급은 300엔이다. 추가수당도 없고, 교통비도 지급되지 않지만 6개월을 채우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최저시급도 지켜지지 않는 극악무도한(?) 아르바이트지만 사쿠라는 결국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만다.

책은 연작단편 형태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총 다섯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언뜻 가벼워 보이는 원제 [시급 300엔의 사신]을 떠올리며 가볍고 유쾌한 라이트노벨을 연상했지만 실제로 '사자의 미련'이 소재가 되면서 책은 생각보다 훨씬 무섭고, 훨씬 어두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자들은 미련을 남기고 죽은 상태에서 미련을 해소할 수 있는 추가시간을 받고, 이 시간 동안은 자신이 살아있는 것으로 잠시 궤도가 수정된다. 미련을 해소하여야 저 세상으로 떠난다고 하지만 저마다의 사정으로 미련을 숨기거나 거짓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사쿠라와 하나모리는 사자의 미련을 해소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것이 꼭 올바르다거나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위한다고 생각한 나의 행동이 초래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보면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말아줘!!'라고 외치고 싶기까지 하다. 그래도 좌충우돌 콤비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자와 만나고 그들의 사연을 접하며 분명 조금씩 성장하고, 어딘가 자신들과 비슷한 사자의 모습을 보며 내면의 상처도 조금씩 서로에게 내비출 수 있게 된다.

추가시간은 긍정적인 시점에서 보면 미련을 해소할 수 있게 주어진 귀중한 시간이지만 한 가지 큰 단점을 가지고 있다. 사자가 저 세상으로 떠나고 난 후에는 추가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는 점이다. 사자의 기억은 사신과 다른 사자에게만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추가시간은 덧없고 그 이상으로 잔인하기도 하다. 추가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지도 않고, 사자들은 언제 올지 모를 마지막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소설은 사신과 사자 그리고 추가시간이라는 비현실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사자들이 안고 있는 미련 -동생에게 마지막으로 선물을 죽고 싶다든지, 아들이 준 편지가 담긴 지갑을 찾고 싶다든지, 내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는지 알고 싶다든지, 자신을 죽인 엄마한테 복수하고 싶다든지- 은 표면적으로는 현실에서 숱하게 접할 수 있는 일들이고, 그 속에 담긴 사자의 '진의'가 더해지면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건 (설령 미련을 해소한다고 해도) 모든 것이 없었던 일로 돌아가는 추가시간의 허무함을 느끼면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현재에 충실해야겠다는 교훈적인 느낌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다소 의외인 두 사람의 소원이 만들어내는 결말은 가슴을 찡하게 만들어준다.

"분명히 절 기억 못하시겠죠. 그래도 전부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에요."

책을 읽기 전 [시급 300엔의 사신]이라는 제목을 꽤 마음에 들어했던 나는 국내에는 왜 제목을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으로 바꾸고 출간했을까,,가 궁금했는데 책을 다 읽고난 후 확실히 원제는 책이 담고 있는 분위기와 무게를 담아내기에는 너무 가벼워서 바뀐 제목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가벼운 듯 하지만 가볍지 않고,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이지만 결코 밝지 않은, 그렇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 괜스레 가슴이 따뜻해져서 겨울에 참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여담이지만, 처음 사쿠라에게 사신이 찾아온 날이 비오는 날이었다는 데에서 이사카 고타로의 [사신 치바]가 생각났다. 역시 사신은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걸까,,(아, 치바는 맑은 날씨를 보고싶어 했었지 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과 서정시
리훙웨이 지음, 한수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지금으로는 상상도 가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멀지도 않은 것만 같은 미래인 2050년, <타타르 기사>라는 시로 노벨문학상의 수상을 앞둔 시인 '위원왕후'가 돌연 사망한다. 그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시점에 그의 친구 '리푸레이'는 위원왕후로부터 11글자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

"이렇게 단절한다. 잘 지내길"

언뜻 자살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묘하게 마음에 걸렸던 리푸레이는 위원왕후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위원왕후의 동생 '위원란'을 만나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며 그의 죽음과 그의 장편시 <타타르 기사> 사이에 기묘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눈치채게 되고 그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며, 한 발 더 나아가 여기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왕'과 그의 '제국'이 깊숙히 얽혀있음을 알게 된다.

소설은 먼 미래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근미래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약 30여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 시대에서는 인간과 떼어놓을 수 없는, 마치 한몸과도 같은 휴대폰과 인터넷이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제국에서 개발한 '이동영혼'과 '의식공동체'를 통해 어떤 정보든 손쉽게 저장할 수 있고 불러들일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사적인 부분도 너무 쉽게 공개될 수 있는 시대가 된다. 현대의 과학기술의 발달로 보면 30년 후에는 정말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그 배경이 중국이라는 것에서 이렇게 쉽게 자신과 타인의 정보가 공유 -혹은 노출- 될 수 있다는 것이 어쩐지 크나큰 공포로 다가왔다.(불현듯 얼마 전에 읽은 쯔진천의 [동트기 힘든 긴 밤]이 오버랩되면서 훨씬 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과 SF가 적절히 섞인 소설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문학, '서정시'라는 점이 더더욱 이 소설에 담긴 메시지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왕'과 '제국'을 위시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 공유를 중시하는 거대 권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사장되어가는 '서정' 혹은 '문학'의 힘을 대변하려 애쓰는 '위원왕후'의 미약한 저항을 통해 근미래에 다가올 문학의 위기를 직접적으로 서술한다. 최근에는 전자책 시장이 빠른 규모로 성장하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는 아예 종이책은 기념으로 소수만 발행되고 모든 책은 전자책이 기본이 된다. 어찌 보면 소설 속 배경이 되는 2050년은 현재 과학기술과 문학의 현실에서 30년씩이나 떨어지지 않은, 아주 약간의 힘만 가해져도 바로 현실이 될 수 있는 그야말로 근미래의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인터뷰를 통해 '[왕과 서정시]를 SF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스스로는 이 작품이 현실에 대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는 글을 읽었을 때 깊은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세상의 흐름을 빠르게 바꾸어 놓았다. 말과 글 역시 은유적으로,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보다 직설적이고 직접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 단어에 담긴 여러 뜻과 깊이, 감정을 곱씹으며 생각하기 보다는 직설적으로 뜻을 알 수 있는 '신조어'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다. 그 속에서 말과 글에 담긴 감정, 혹은 서정은 점점 사장되어 가고 있다. 나 역시 과거에는 책 한 권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그 속에 담긴 뜻을 되새기는 것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내가 읽는 속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책들을 보며 다시 읽기보다는 새로운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아지고, 그렇다보니 술술 읽히면서도 어렵지 않게 한 번에 이해되는 가벼운 책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담긴 사장되어 가는 언어 혹은 글에 대한 안타까움이 다른 무엇보다도 크게 다가왔다.

[왕과 서정시]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인문학'이라는 소재를 위원왕후의 죽음이라는 미스터리를 접목시켜서 그 궁금증을 유지시키며 소설을 흥미롭게 전개해간다. 특히 위원왕후가 남긴 11글자와 그의 서정시 <타타르 기사>와 그의 죽음 간에 얽힌 비밀이 궁금해서라도 책장을 넘어가게 만든다. SF라는 장르에 관심이 크지 않은 나도 미스터리에 혹해서 이 책을 손에 잡게 되었는데 현실인 듯 현실아닌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 어느새 흠뻑 빠지고 말았다. 몇 년 전부터 간간히 읽는 중국소설들은 정말 하나같이 놀라울 따름이다.

다만 2부 '개요' 부분은 아무래도 중국의 시를 우리나라의 산문시 형태로 바꾸어서인지 -번역자님은 정말 고생하셨을 것 같지만- 사실 소설과 연계시켜 생각해봐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아쉬웠다. 다만 그 부분은 제외하더라도 현실적이며 SF적이고 미스터리틱한 이 책이 가진 매력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한국소설이나 일본소설과는 또다른 매력을 가진 중국소설이 올해도 꾸준히 출간되어서 색다른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기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트기 힘든 긴 밤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 3대 추리소설가라는 쯔진천의 [동트기 힘든 긴 밤]이 찬호께이의 [13.67]을 출판했던 한스미디어에서 출판되었다. 요즘 굵직한 일본 미스터리를 만나기 조금 힘들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런 때인지라 이렇게 중국이라는 색다른 나라의 미스터리 출판이 매우 반가워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소설은 시작부터 상당한 임패트를 준다. 지하철의 보안검색대에서 장차오라는 남자가 수상한 행동으로 눈길을 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캐리어에서 시체가 발견되며 이 사건은 장시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그리고 장차오가 잘 나가는 변호사라는 것, 그리고 피해자 장양이 그의 제자이자 전 검찰관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더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게된다.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인정하던 그는 법정에서 돌연 진술을 번복한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서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살인을 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을 돌려 약 10여년 전, 허우구이핑이라는 교사가 첫 부임을 한 곳으로 가게 된다. 조용한 시골마을, 순수한 학생들. 사건과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곳이지만 심상치 않은 소문이 도는 기묘한 곳이다. 그 와중에 허우구이핑은 웡메이샹이라는 여학생이 하교를 하지 않고 머뭇머뭇 자신과 함께 저녁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자 흔쾌히 수락한다. 하지만 그녀의 사촌오빠가 찾아와 웡메이샹과 놀러가겠다고 하자 내켜하지 않는 그녀에게 잘 다녀오라며 설득한다. 그리고  그는그녀가 차에 타며 자신을 바라보던, 그 한오라기 실처럼 간신히 붙어있던 눈빛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된다.
 
[동트기 힘든 긴 밤]은 모든 사건이 발생한 현재와 그 사건의 시발점이자 현재의 상황까지 이르게 한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과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완벽한 '사실'로 보이던 것들이 하나 하나 무너지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또한 이미 책의 시작에서 주요등장인물의 '결말'이 밝혀진 채 전개되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마치 '기사 등을 통해 결말은 알지만 어쩌다 그렇게까지 되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사건'을 보는 듯한 안타까운 기분이 들어서 몹시 우울해졌다.

일개 검찰관이, 법의관이, 형사가 '감히' 건드릴 수도 없을 정도의 거대한 권력에 맞서기 위해 버린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닌 무게와 현재의 사건간의 연결고리가 드러나는 순간 안타까움을 가득 담은 탄식이 절로 나오게 된다. 정말 여태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도 안타까웠다. 이 책은 초반부터 결말까지 어디 하나 안타깝지 않은 곳이 없어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참 힘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결말까지 가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 더 힘들었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고, 사건을 해결하고자 고군부투하는 이들에게 드리우는 어두운 권력의 그늘이 주는 무게와 그 공포, 그 아픔이 너무 절절해서 정말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다.   

[동트기 힘든 긴 밤]은 정말이지 내가 좋아할 법한 요소들을 전부 갖춘 책이다. 사회파 미스터리면서 가독성까지 갖추고, 다 읽고 난 후에 다른 책을 손에 잡기 힘들 정도의 여운까지 주는,, 아무래도 한동안은 어떤 책을 읽어도 이 책과 비교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끝까지 읽다보면 궁금해져서 다시 앞으로 돌아오게 될 '그' 페이지의 사진을 남기며 리뷰를 마무리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