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자살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묘하게 마음에 걸렸던 리푸레이는 위원왕후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위원왕후의 동생 '위원란'을 만나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며 그의 죽음과 그의 장편시 <타타르 기사> 사이에 기묘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눈치채게 되고 그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며, 한 발 더 나아가 여기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왕'과 그의 '제국'이 깊숙히 얽혀있음을 알게 된다.
소설은 먼 미래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근미래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약 30여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 시대에서는 인간과 떼어놓을 수 없는, 마치 한몸과도 같은 휴대폰과 인터넷이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제국에서 개발한 '이동영혼'과 '의식공동체'를 통해 어떤 정보든 손쉽게 저장할 수 있고 불러들일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자신의 사적인 부분도 너무 쉽게 공개될 수 있는 시대가 된다. 현대의 과학기술의 발달로 보면 30년 후에는 정말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그 배경이 중국이라는 것에서 이렇게 쉽게 자신과 타인의 정보가 공유 -혹은 노출- 될 수 있다는 것이 어쩐지 크나큰 공포로 다가왔다.(불현듯 얼마 전에 읽은 쯔진천의 [동트기 힘든 긴 밤]이 오버랩되면서 훨씬 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과 SF가 적절히 섞인 소설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문학, '서정시'라는 점이 더더욱 이 소설에 담긴 메시지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왕'과 '제국'을 위시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정보 공유를 중시하는 거대 권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사장되어가는 '서정' 혹은 '문학'의 힘을 대변하려 애쓰는 '위원왕후'의 미약한 저항을 통해 근미래에 다가올 문학의 위기를 직접적으로 서술한다. 최근에는 전자책 시장이 빠른 규모로 성장하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는 아예 종이책은 기념으로 소수만 발행되고 모든 책은 전자책이 기본이 된다. 어찌 보면 소설 속 배경이 되는 2050년은 현재 과학기술과 문학의 현실에서 30년씩이나 떨어지지 않은, 아주 약간의 힘만 가해져도 바로 현실이 될 수 있는 그야말로 근미래의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인터뷰를 통해 '[왕과 서정시]를 SF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스스로는 이 작품이 현실에 대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는 글을 읽었을 때 깊은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세상의 흐름을 빠르게 바꾸어 놓았다. 말과 글 역시 은유적으로,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보다 직설적이고 직접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 단어에 담긴 여러 뜻과 깊이, 감정을 곱씹으며 생각하기 보다는 직설적으로 뜻을 알 수 있는 '신조어'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다. 그 속에서 말과 글에 담긴 감정, 혹은 서정은 점점 사장되어 가고 있다. 나 역시 과거에는 책 한 권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그 속에 담긴 뜻을 되새기는 것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내가 읽는 속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책들을 보며 다시 읽기보다는 새로운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아지고, 그렇다보니 술술 읽히면서도 어렵지 않게 한 번에 이해되는 가벼운 책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담긴 사장되어 가는 언어 혹은 글에 대한 안타까움이 다른 무엇보다도 크게 다가왔다.
[왕과 서정시]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인문학'이라는 소재를 위원왕후의 죽음이라는 미스터리를 접목시켜서 그 궁금증을 유지시키며 소설을 흥미롭게 전개해간다. 특히 위원왕후가 남긴 11글자와 그의 서정시 <타타르 기사>와 그의 죽음 간에 얽힌 비밀이 궁금해서라도 책장을 넘어가게 만든다. SF라는 장르에 관심이 크지 않은 나도 미스터리에 혹해서 이 책을 손에 잡게 되었는데 현실인 듯 현실아닌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 어느새 흠뻑 빠지고 말았다. 몇 년 전부터 간간히 읽는 중국소설들은 정말 하나같이 놀라울 따름이다.
다만 2부 '개요' 부분은 아무래도 중국의 시를 우리나라의 산문시 형태로 바꾸어서인지 -번역자님은 정말 고생하셨을 것 같지만- 사실 소설과 연계시켜 생각해봐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아쉬웠다. 다만 그 부분은 제외하더라도 현실적이며 SF적이고 미스터리틱한 이 책이 가진 매력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한국소설이나 일본소설과는 또다른 매력을 가진 중국소설이 올해도 꾸준히 출간되어서 색다른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