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과연 이 책은 책의 분류 중 어느 항목에 들어갈 것인가’였다. 철학? 문학? 역사? 인문? 여러 가지 항목을 떠올렸지만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다 책 소개에서 발견한 문구 “책과 혁명에 관한 저자의 사상이 담긴 에세이”를 읽고 그야말로 무릎을 쳤다. 아, 에세이구나.

 

책의 부제인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을 보고, 아니 그 전 제목인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봤을 때부터 대체 이 연관 없는 단어들 -책, 혁명, 기도- 에서 어떤 내용이 나올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아,, 그렇구나. 이 책은 철학의 탈을 뒤집어 쓴 작가의 중얼거림이구나.’였다. 그러한 생각은 역자 후기에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긴 해도 왠지 끌리는 책이 있다. 그 책의 핵심 내용이 아닌, 가볍게 흘러나온 몇몇 문장들에서, 그 책 전체에 대한 평가를 좌우할 만큼 와 닿는 부분이 있어서일 것이다. 굳이 내용이 아니더라도, 문체나 분위기, 혹은 행간에서 느껴지는 어떤 것에서도.”라는 부분을 읽으며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것과 아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나 역시 철학적이고 이 책의 주가 되는 ‘혁명’이라는 커다란 틀을 따르지 않고 작가를 따라 중얼거려보고 싶다.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았고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았다.” P.16

 

갑자기 홀연히 나타난, 세속적인 말로 ‘뭔가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사사키 아타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협박에 굴하지 않고 이야기를 듣는 것과 듣지 않는 것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재능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정보가 홍수처럼 넘치고 중립적이어야 할 기사에 기자의 주관이 섞이고 있다. 기사를 해석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사람들은 기사의 내용은 대충 훑고 ‘덧글’로 넘어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읽고 그에 동조하는 것으로 자신이 이 기사의 내용을‘알고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대부분의 책의 제목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는 것이 ‘XX책 결말’이라는 말이다. 생각할 수 있는 기회와 자신의 생각의 가치를 포기하고 타인의 의견에 쉽게 귀 기울이고 동조하는 현대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사사키 아타루가 정확히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작가 역시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 어리석게 보이지만 스스로 어리석음을 선택한 것은, 무지는 짊어지기 힘든 일이지만 어리석게 보이는 것보다 자신이 정말 옳은지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이 더 힘든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보가 말해주는 대로 행동하면 다수가 가는 길을 쉽게 갈 수 있지만 그 이면에 있는 두려움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읽어도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어쩐지 싫은 느낌'이 드는 것이야말로 '독서의 묘미'며, 읽고 감명을 받아도 금방 잊어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기 방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 읽으면 잊어버리고, 그래서 반복해서 읽는 거라고 말이지요.” P.39

 

작가는 다독이 아니라 회독을 하기 때문에 읽은 책은 많지 않아도 읽은 책을 읊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나와는 정 반대이다. 내가 다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회독을 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회독은 참 매력적인 독서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다소 그 때 읽기에는 조금 어려웠던 책을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 성인이 되어서 다시 읽으며 그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과거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알게 되면서, 어릴 때와는 또 다른 판단으로 보는 것은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자아낸다. 그러나 갈수록 회독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한정된 시간에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어쩐지 싫은 느낌이 드는 독서’는 자연스럽게 뒤로 뒤로 밀리게 된다. 일단 쉽게 한 권을 읽을 수 있는 책을 먼저 손에 잡게 되니까. 그렇다면 나는 나이가 먹어갈 수록 ‘독서의 묘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씁쓸해졌다.

여담이지만 작가의 이 문구를 보면서 작년쯤 읽었던 엔도 조의 [어릿광대의 나비]라는 책을 떠올렸다. 분명 읽고 있고 한 문장 한 문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는데 묘하게 그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던, 그야말로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책이어서 리뷰에서 다소 혹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 후반에 엔도 조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어 깜짝 놀랐다. 내가 그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다시 읽어볼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혁명의 본체는 텍스트다. 결코 폭력이 아니다” P.100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으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바로 혁명이다. 책 자체가 큼직한 혁명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피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언급하게 된다. 제목 속 ‘기도’도 부제목 속 ‘혁명’도 사실 사사키 아타루라는 작가를 모르는, 그저 서점에서 어떤 책을 볼까 고민하는 독자에게는 흥미를 떨어뜨리기 쉬운 단어들이다. 기도라는 단어는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어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쉽고 혁명이라는 단어는 부제에 ‘책’이라는 단어가 혁명에 앞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중심을 오롯이 혁명으로 밀어 넣고 있다. 다만 책 속의 혁명은 굳이 말하자면 텍스트의 위대함을 말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혁명이라는 폭력적이고, 권력의 주체가 뒤집히는 거대한 사건이 단지 도구라는 것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지만 위에 적은 문장처럼, 책을 읽고 나면 텍스트의 힘에 대해 느끼게 된다. 오히려 그 힘을 너무 느끼게 되어서 ‘텍스트가 없었더라면 혁명도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종교라고 생각하는 종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P.120

 

당연하달까 종교에 관한 언급도 피하기 어려워 간단히 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결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내 마음과도 같은 문장이 있기에, 이 문장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언급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지금의 종교는 마음의 안식 대신 비난의 대상 -대체적으로 기독교가- 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한 종교라는 대상에 대해 칼을 꽂는 듯한, 정말 날이 선 문장이다. 단지 이 문장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종교라는 곳의 정의를 정확히 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 솔직한 맘으로는 썩어빠진 종교단체 앞에 플래카드라고 걸고 싶은 심정이다.

 

“철학이 끝났다고 한다면 철학과를 그만두었으면 합니다. 문학이 끝났다고 한다면 문학에 종사하는 걸 그만두었으면 좋겠습니다.” P.225

“문학은 끝났다. 라고 사람들은 반복해서 말해왔다.” P.234

 

궁극적으로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학이 가진 힘을 오로지 과거의 것으로만 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 과거의 문학이 이루어 낸 성과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문학이 이루어 낼 성과를 낮잡아보지 말자는 것. 문학은 현재 진행형이니 과거 이상의 문학이 나올 수 없다는 편협한 생각을 버리라는 것 말이다. 이 말을 하기 위해 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미친 텍스트의 힘을 알려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 중얼거리며 자신의 의견을 다소 작게 말해 온 작가가 가장 힘 있게, 자신 있게 주장하고 있는 것, ‘문학은 끝나지 않았으며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 P.78

 

마지막은 이 문장과 함께 하고 싶다. 사실 사사키 아타루라는 작가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든, 혁명이든, 철학이든, 문학이든 간에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래서 작가를 따라 나도 한 번 생각해본다.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 그 답을 내릴 수 있을 때 나는 조금이나마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을 담고 있고, 일견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을 하나로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낸 작가가 내게 알려 준 것은 ‘나의 무지’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송주연 2025-08-1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책 후기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보게되었는데 제가 책을 읽고 난 후 감상이 무엇인지 대신 글로 잘 설명해주신 느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