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소설가..를 떠올리면 누구의 이름이 먼저 등장할까. '무라카미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 '기욤 뮈소',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여러 명의 외국인 소설가들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언제부턴가 오프라인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보면 상위권에 위치한 책들은 전부 한국 작가들의 책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그런 책들 중에서도 최근 화제성에서는 단연 첫 번째로 꼽힐 것 같은 책, '정유정' 작가님의 [완전한 행복]이다. 




엄마 유나와 아빠 준영이 이혼한 후 일곱 살의 '지유'는 시골집에서 몇 년 만에 아빠를 만났다. 그날 밤 지유는 악몽을 꾸고 다음날 엄마는 아빠가 바쁜 일이 생겨 먼저 갔다고 한다. 아빠는 왜 먼저 가버렸을까.. 엄마는 오리 먹이를 만들고 있었던가.. 어젯밤 되강오리는 왜 그렇게 울어댔을까.. 어린 지유는 다락방에서 찾은 '아빠 인형'으로 불안감을 달래고 있다.


유나의 언니인 '재인'은 준영의 동생 '민영'의 방문에 의아함을 느낀다. 민영은 준영이 지난 화요일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유나는 문제의 그 날 아침 준영으로부터 받은 연락과 그와 만났던 것을 기억해 낸다. 갑자기 만나자고 했고,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며 사라졌다. 그리고 며칠 후 연을 끊다시피 했던 유나로부터 연락이 온다. 유나와 재혼한 남자 '은호'의 아들이 돌연사 했다는 연락이.


3년 전, 은호는 이혼한 전처의 결혼 소식을 듣고 심란한 마음에 러시아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세 번이나 우연히 마주친 유나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만, 그녀와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다. 그리고 현재, 그는 갑작스런 아들의 죽음의 '가해자'로 의심받고 있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



책을 읽기 전, 제목과 표지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완전'과 '행복' 한없이 긍정적인 두 단어가 만나서 왜 이토록 불길한 울림을 주는 것인지. 한없이 다정해보이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가 왜 기묘한 불안감을 자아내는 것인지. 이 모든 것은 단순히 이 책을 쓴 작가가 '정유정'이라서 그런 것인지. 궁금증 반, 두려움 반의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주 초반을 읽으며 이 책이 몇 년 전에 있었던 아주 유명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평범하게 읽어 넘겼던 극초반, '유나'가 오리 먹이를 만들던 장면이 떠올랐고 몇 년 전 읽은 후 나를 독서 슬럼프에 빠뜨렸던 어떤 책과 오버랩이 되었다. 내가 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하는 후회가 찾아왔다.



소설은 유나를 중심으로 한 세 명의 인물을 화자로 전개된다. 유나의 딸인 '지유', 유나와 재혼한 남편인 '은호', 유나의 언니인 '재인'. 유나는 한 번도 화자로 등장하지 않지만 이들 세 명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오히려 화자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더 압도적으로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절대적인 존재, 마치 신과 같은 존재.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듯하면 사정 없이 천벌을 내릴 수 있는. 각자가 유나에게 품고 있는 감정, 유나가 이들에게 '품도록 만들었을' 그 감정이 생생하게 보이며 독자 역시 그 속을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공포가 더해가게 된다.



안다는 건 모르는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그중 어떤 유의 '앎'은 '감당'과 동의어였다.



사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미제 사건이라서 아무도 그 진실을 모르는 사건에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 나름의 진실을 이끌어 내는 류의 소설은 흥미롭지만 이미 범인과 범행이 명확한 사건을 소재로 하는 것은 다소 거부감이 있다. 아무리 이 책이 허구라고 외쳐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제 사건과 소설을 연결지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끔찍하고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왜' 그랬는지를 궁금해 한다. 가해자에게 어떤 동기가 있었는지, 혹은 그에게 어떤 불우한 사정이 있었는지,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막연한 사건에 이유를 부여해 가해자는 보통과는 다른 사람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는 '사이코패스'니까..라는 것이 엽기적인 사건에 가장 큰 '해답'이 되기도 한다.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그래서 우리와는 다르니까..라는 느낌. 그래서 뭔가 현실의 사건이 소재가 되는 소설이 아직은 조금 모자란 실제 사건의 조각들을 애써 채워넣어 '아, 역시 그런 사람이니까..' 라는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싫어서, 아마도 이 책이 특정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걸 알았다면 손에 들지 않았을 지도.. 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 소설로서만 놓고 본다면 그동안 읽은 정유정 작가의 책 중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유나라는 인물에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알면서도- 조종당하고 있는 이들의 때로는 무모하고 때로는 어리석은 행동들이 만들어 낼 결말도 궁금했고 가장 중요한 인물을 화자로 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대단하다 싶었다. 소설적인 재미를 위해서인지 한없이 답답한 행동들을 통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도 나름 긴장감을 유발하고 유지시키기에 충분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나로 인해 고통받아온 언니, 유나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남편, 태어났을 때부터 유나가 자신의 전부인 딸. 각기 다른 위치에 있지만 모두 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무방할 세 명은 화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고 그들의 눈으로 보는 유나의 모습과 그들의 기억 속에서 짜맞춰지는 유나의 과거 행적 역시 그 실체가 드러날 수록 끔찍했다. 어찌 보면 이 모든 일들을 유나를 화자로 하지 않음으로써 그녀에게 어떤 변명의 기회도 주지 않는 것, 아주 조금의 면죄부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만 개인적으로 결말의 연출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치 리셋 단추를 누른 것 같았다. 집 전체가 태평한 시절로 돌아간 모양새였다. 흠결 없이 평온한 풍경이었다. '행복'이라는 신화를 이룬 한 가족의 불가침 왕국으로 보였다. 이곳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아무 일도 없었노라, 선언하는 듯.


자신의 행복을 위해 불행의 가능성을 하나씩 없애나가는 여자. 그녀의 불행의 가능성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잃어야 하는 사람들. 묘사가 직접적이지 않아도 -아니, 이 정도면 충분히 직접적인가 싶기도 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한여름에 서늘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래저래 쓸데없이 글이 길어졌지만 500페이지 남짓한 분량이 지루할 틈이 없는 흥미로운 책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작가의 말에서 '모든 것은 소설적 허구다!'라고 말해도 실제 사건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점은 못내 아쉽다.(모든 것을 허구라고 하기에는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너무 많이 가져왔다ㅠ) 이 책으로부터 시작되는 '욕망 3부작'의 나머지는 지금과 같지 않기를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범인
쇼다 간 지음, 홍미화 옮김 / 청미래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고속도로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타살로 추정되는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신원을 조사하던 중 피해자가 무려 41년 전, 유괴 살인 사건 피해 아동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게 된다. 26년 전, 시효 종료를 1년 앞두고 다시 한 번 특별수사반을 꾸려 조사를 거듭했지만 결국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채 시효를 맞이했던 사건. 왜 지금에 와서 피해자의 아버지는 살해당한 것일까. 41년 전 사건의 진실을 이 살인 사건으로부터 밝혀낼 수 있을까.


소설은 현재의 살인사건을 담당하는 '구사카' 형사의 시점으로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구사카가 현재의 살인 사건이 과거의 유괴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후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시게토' 관리관을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최초 사건 발생 시에 범인은 아이의 몸값을 몇 차례 요구했지만 끝내 몸값은 가져가지 않았고, 결국 아이는 시신으로 발견된 채 사건은 장기 미제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14년 후, 시게토 관리관은 팀을 새롭게 꾸려서 그 때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사건에 접근하고자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건은 해결되지 못한 채 영구 미제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 당시 피해자의 아버지가 사망하며 다시 한 번 당시의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350페이지 정도로 책이 두껍지 않아서 방심(?)했는데 아무래도 유괴 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41년 전, 재수사를 하게 된 26년 전, 그리고 살인 사건이 발생한 현재, 이 세 개의 시점을 오가다 보니 전개도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고 등장인물도 상당히 많았다. 여기에 경찰소설이라면 빠지지 않는 내부의 알력 다툼까지 더해져서 분량 대비 꽤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가 워낙 시점을 능숙하게 오가고 수많은 등장인물 각각의 서사는 거의 배제한 채 사건에 집중하고 있어 실제로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한데 그 속에서 어떤 '단서'를 포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보통은 결말에 가까워지면서 어떤 복선이 드러나면 '아, 그건 어디쯤에 있었지!' 하고 다시 보게 되는데 [진범인]은 워낙 시계열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 책이라서 복선의 위치를 다시 찾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여기에 작가가 아무 것도 아닌 양 너무 완벽하게 복선을 숨겨놓아서 나중에 그것이 복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도 상당했다. 반전의 정석같은 느낌이랄까? 독특한 사건 전개에도 메인 사건에의 중심을 잃지 않고 적절한 복선의 제시와 회수로 개연성 있는 결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소설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여기에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특별히 복잡하게 분량을 할애해가며 보여주지 않는데도 캐릭터들이 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신기했다.



어떤 사건이 공소시효가 만료된 후에 아주 유사한 수법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결국 과거의 사건까지 해결되는 패턴의 책들은 종종 있어왔지만 [진범인]은 비슷하면서도 다소 결을 달리 하는 책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에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당시 피해자의 가족이 살해되면서 여러 가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과연 이 피해자가 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당시 이 사람은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단순히 아들을 잃은 아버지? 혹은 아들의 유괴 살인 사건에 어떤 계기를 만든 사람? 그것도 아니면 혹시...?? 여기에 불과 1~2년만 지나도 새로운 단서나 목격자를 찾기 힘든데 무려 41년이나 지난 사건을 새롭게 수사하는 과정과 26년 전, 사건의 재수사를 담당했지만 결국 미제로 남으며 한이 맺혀서, 당시 자료를 보고 또 봐서 외울 정도가 된 형사들의 모습까지.. 사건의 진실과 더불어 여러 모로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책이었는데 흥미진진한 시놉시스 이상의 재미를 안겨운 책 [진범인]. 오랜 시간에 걸친 방대한 내용 대비 가독성도 좋은 편이고, 궁금증을 끝까지 이어나가는 작가의 능력도 탁월해서 여러 모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워낙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아서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쿠사카 경위 시리즈'로 2015년에 출간된 [진범인] 외에 2018년에 출간된 [유괴범]이라는 책이 더 있는 것 같아 혹시 이 책도 출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진범인]에 버금가는 책으로 이 작가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다려 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시 - 내 것이 아닌 아이
애슐리 오드레인 지음, 박현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블라이스)'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임신으로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임신 기간 중에는 몹시 힘들었고, 남편은 끊임없이 '당신은 좋은 엄마가 될 거야' 라고 말해줬지만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나는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 후 딸 '바이올렛'이 태어났고, 나는 내 딸을 사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아이 역시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둘째 아들인 '샘'을 출산했다. 바이올렛과는 달리 너무도 사랑스러운, 내 삶의 빛과 같은 샘. 나는 처음으로 아이를 사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이들과 외출을 했던 어느 날, 바이올렛은 내 눈 앞에서 샘이 탄 유모차를 차도로 밀어버렸고, 나는 샘을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로 내 인생은 지옥으로 돌변했다.




이전에 당신은 나를 한 사람으로서 신경 써줬어. 내 행복, 내가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들에 신경 썼지. 이제 나는 서비스 공급자였어. 당신은 나를 여자로 보지 않았지. 나는 그저 당신 아이의 엄마일 뿐이었어.



소설은 오로지 화자인 '블라이스'가 자신의 남편 '폭스'에게 하는 이야기로만 전개가 된다.(중간중간 블라이스의 엄마인 '세실리아'를 화자로 하는 과거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일단 블라이스는 청자를 자신의 남편으로 설정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게 폭스에게 보내는 편지인지, 아니면 우리가 흔히 일기장에 이름을 붙이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적어나가는 글인지 독자는 구분할 수가 없다. 블라이스가 하는 이야기가 정말로 자신의 남편이 들어줬으면 하는 것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다. 그저 다른 누구의 시선도 아니고, 다른 누구의 생각도 알 수가 없는 채, 오로지 블라이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든 것들을 읽어내려가게 된다. 그렇기에 이 모든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지고 있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은 오로지 '여성'만이 할 수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 아니 이러한 과정이 없더라도 여성에게 '모성'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과거에는 더더욱 그랬을 테고) 어머니의 모성을 경험하지 못했던 블라이스는 자신 역시 모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첫째 바이올렛이 사랑스럽지 않고,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고, 그녀가 자신을 보는 시선에서도 애정을 느낄 수 없어 점점 아이를 키우는 삶 자체가 힘겹게 느껴진다. 밤낮으로 오로지 아이에게 온 신경을 기울여야 하고, 한밤중에도 아이가 울면 달려가야 하고, 내가 하던 일에 조금도 집중할 수 없고, 자신의 남편마저 자신을 오로지 아이의 엄마로 보는 듯한 느낌에 자신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주변의 엄마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를 보면 힘이 난다고 하는데 블라이스는 아이를 봐도 힘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듯한 바이올렛을 보면 미움이 더 커질 뿐이다. 그리고 바이올렛이 샘이 탄 유모차를 차도로 밀어 샘이 사망하면서 비극은 극에 달하게 된다.



소설 [푸시]는 오로지 블라이스의 이야기로만 전개되면서 읽는 내내 이 이야기의 진실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첫 번째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블라이스가 딸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고, 딸의 행동을 오해해서 이 모든 상황을 머릿 속에서 만들어 냈을 경우, 두 번째는 실제로 딸이 블라이스의 생각과 같은 아이였을 경우이다. 어느 쪽을 상상했든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강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내내 전자를 예상했다 어느 순간 후자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만약 첫째가 아들이었다면 블라이스의 삶이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째 딸을 사랑할 수 없었던 블라이스는 둘째 아들에게는 맹목적인 사랑을 보인다. 고전에서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나 엘렉트라 컴플렉스 등-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딸은 자신의 어머니를 경쟁 상대로, 넘어야 할 벽으로 보는 일이 흔히 보였던 것처럼 우연히 첫째가 딸이었기 때문에 비극이 심화된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생각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 이야기로 변모할 수 있는 게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제목인 '푸시'가 실로 소설의 내용과 어울리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덧붙여서 -뭘 이렇게 자꾸 더해나가는지 모르겠지만ㅋ- 이 소설에서 가장 섬뜩했던 것은 단언컨대 표지이다. 책을 1/3 가량 읽었을 무렵, 자야겠다 싶어 불을 끄고 어두컴컴해진 방에서 약간 새어들어오는 불빛에 비친 책표지를 봤을 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두 사람이 그려져 있던 표지는 어디로 가고 어둠 속에 떠오른 것은 검은 색 '자궁'이었던 것이다. 표지 역시 제목이나 내용처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쓰다 보니 길어지고 말았는데.. 미혼인 나에게 '모성'은 아직은 어려운 부분이 많은 개념(?)이다. 길을 가다 아이를 보면 귀엽다고 느껴지는 것과 내가 낳은 아이가 귀엽다고 느껴지는 것에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찌 보면 임신과 출산을 여성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말하고, 어머니는 아이를 무조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어머니라면 당연히 자신의 모든 일상을 포기하고라도 아이를 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자꾸만 '완벽한 모성'에의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지. 술술 읽히는 가독성 좋은 책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또 그만큼 섬뜩했던, 앞으로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도 숱하게 생각날 것만 같은 그런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
쯔진천 지음, 박소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5년, '한스미디어'에서 '찬호께이'의 [13.67]이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중국 미스터리 소설?? 낯선데... 이름도 어렵고 지명도 어렵고... 재미가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로부터 딱 6년이 지난 지금, 출간이 될 때마다 미루지 않고 손에 들 정도로 좋아하는 중국 작가는 비단 찬호께이만이 아니게 되었다. 일명 '추리의 왕' 시리즈로 이제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를 확보한 작가 '쯔진천' 역시 그런 작가 중 한 명인데 이번에 추리의 왕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 얼론 작품이 출간되어서 빠르게 손에 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 진짜로 쯔진천 작가의 책이 맞나요??!!





금은방을 털며 살아가던 '팡차오'와 '류즈'는 크게 한탕을 노리기로 결심하고, 자신들이 거금을 훔쳐도 절대 경찰에 신고하지 못할 만한 상대로 부패한 공무원을 떠올리며 작업에 착수한다.


고위 경찰을 고발하는 익명의 투서 한통으로 인해 '싼장커우시'에 공안국 부국장으로 가게 된 형사 '장이앙'. 드디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때가 왔다며 자신만만한 장이앙에게 주어진 임무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투서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 다른 하나는 공안부 고위 간부의 조카인 여경이 경찰 생활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 나에게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자신만만한 장이앙이지만 부임하자마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자신이 오지 않았다면 공안국 부국장이 되었을 '예젠'이 살해당한 것인데, 다행히 그는 죽기 전 다잉 메시지로 누군가의 이름을 남겨놓았다. 바로 '장이앙'의 이름을.


부패한 공무원을 노리는 수상한 2인조와 부임하자마자 살인 누명을 쓰게 된 형사, 그리고 부패한 공무원과 기업가들 플러스 기타 등등!(?) 이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난장판 같은(?) 사건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소설 [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 일단 줄거리는 저렇게 적어보았지만 사실 저건 정말로 전체 그림의 아주 일부분일 정도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책이다. 저마다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혹은 자신의 이익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며 행동하는데 이 행동들이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이들 사이에 접점을 만들어 낸다. 그래도 어쨌든 줄거리만 보면 그동안 작가가 써온 소설과 갈래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부패한 공무원과 기업이 등장하니 사회파 미스터리군! [동트기 힘든 긴 밤]과 비슷한 느낌이려나? ... 하고 생각하고 싶은데(?) 이를 가로막는, 이 묵직한 줄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유쾌함은 대체 뭘까. 사람도 자꾸 죽어나가고 긴장감 넘치는 상황도 자꾸 생기는데 이걸 읽고 있는 나는 왜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까.



이 책을 읽기 전에 '이사카 고타로 느낌의 책이다' 라는 평을 들었는데 확실히 읽으면서 왜 그런 평이 나왔는지 확실히 공감이 되었다. 내 기준에서 말하면 쯔진천에 이사카 고타로 한 스푼 첨가 같은 느낌? 작가가 의도적으로 마련한, 웃음을 자아내는 문장들을 걷어내면 이 책 역시 한없이 묵직한 소설일 수도 있다. 전개가 유머러스하고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이 가볍게 느껴지지만 사실 전체적인 사건을 놓고 보면 절대 가벼운 사건이 아니다. 초반에 헷갈릴 만큼 수도 없이 등장하는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제각각' 벌이는 일들은 대충 넘겨서는 그 전모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복잡하다. 그.런.데. 이를 하나도 복잡하지 않게 보이게 만드는, 진지한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가볍게 읽어도 전모가 생생하게 그려지는 소설이라는게 신기하다. 무엇보다 이 소설을 쓴 작가가 쯔진천이라는게 신기하다. 




확실히 이 책은 '추리의 왕'의 묵직하고, 여운이 남는 느낌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런 스타일의 쯔진천의 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호불호가 있을 것도 같은데 나한테는 확실히 '호'였다. [13.67]과 [망내인] 등의 묵직한 책들을 읽다 [풍선인간]을 읽으며 '아니, 찬호께이가 이런 가볍고 유쾌한 느낌의 책도 쓴다고? 그런데 심지어 재미있다고?' 하며 신기해 했는데 몇 년이 지나 [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를 읽으며 똑같은 감탄을 하게 되었다. '아니, [동트기 힘든 긴 밤]을 쓴 작가가 쓴 책이라고? 이게? 진짜?' 근데 진짜다. 가볍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묵직한 쯔진천 만의 매력이 살아있는 책이라 '와, 이 책으로 쯔진천에 입문하는 것도 괜찮겠는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마 내가 '이게 쯔진천의 책이라고?' 하고 놀란 것처럼 이 책으로 쯔진천에 입문한 독자도 '추리의 왕' 시리즈를 보며 똑같은 놀라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묵직함과 가벼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세상 매력적인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타쉐도잉 - 속독은 기본, 속청, 속화를 한 번에, 진짜 영어 뇌혁명이 시작된다!
박세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등학교 6학년 때 영어책 한 권으로 영어에 눈을 뜨고, 성인이 되어서는 한 달만에 중국어 신HSK 5급에 합격하고, 심지어 미국 명문대학교에까지 합격했다"는 판타지인가.. 싶을 정도의 저자의 스토리에 혹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손에 든 책이 바로 '박세호' 작가님의 책 [메타쉐도잉]이다.



제목이기도 한 '메타쉐도잉'은 '메타인지'와 '쉐도잉'이 결합된 용어로 단순히 듣고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듣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이를 정확하게 따라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아의 옹알이'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더라도 수십, 수백 번 반복해 들으며 이를 자연스럽게 체화하는 것과는 달리 '성인의 옹알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활용해서 보다 효율적으로 학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전에 한창 자막 없이 영화 한 편을 꾸준히 반복해서 학습해서 한 편을 다 숙지하면 영어를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 유행할 때 나도 영화 한 편을 열심히 본 적이 있는데 대놓고 말해 안 들리는 단어는 몇 번을 반복해도 진짜 안 들린다. 분명 아는 단어인데도 문장 속에서 다른 단어들과 결합해서 연음이 되면 그야말로 처음 듣는 단어가 되는 것이다. 물론 반복에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 간간히 들리는 문장도 있지만 정말 너무 힘들고 지겹고 시간이 아까웠던 기억이 있어서, 성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국어를 활용해 자막 내지는 텍스트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 상당히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영어 공부 방법으로 알려진 여러 가지 속설(?)을 뒤집는데 '기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신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싶다면 처음부터 에베레스트를 목표로 하라'든지, 하루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라는 대신 '중간중간 쉬어가더라도 오늘의 최소 분량은 교재 전체!'라고 스파르타로 말한다. 사실 하루에 한 문장 또는 한 문단을 외워서 영어를 정복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해 본 터라 차라리 이렇게 며칠 간 죽어라 매달리세요!(는 내 나름의 해석ㅋ)가 쉽지 않아보여도 더 성공할 확률이 높아보였다.(물론 실제로 어떤 지는 해봐야 알겠지만)



기존 쉐도잉의 문제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메타쉐도잉 방법으로 '영어 학습의 최소 단위는단어가 아니라 문장이다'라는 것과 '문장 단위로 자막을 보며 학습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어린 아이라면 글보다 말이 빠르기 때문에 일단 들어서 체화하는 수밖에 없지만 성인이라면 자막을 보면 단번에 내가 듣고 있는 문장에 쓰인 단어들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을 최소화 하고, 통문장을 익힘으로써 문장 발음 그 자체를 익히면 특정 문장에서 듣는 사람을 괴롭히는 연음이나 강세의 늪에서 보다 수월하게 헤어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한 가지 이 책이 특이한 것은 억지로 암기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점이다. 메타쉐도잉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숙지하게 된다는 것. 여기에 스스로 크고 빠르게 말함으로써 상대방의 빠른 말도 어느덧 보다 느리게 느껴지고 이를 통해 좀 더 듣기가 수월해지는 과정까지 가고, 머릿속에서 전체 내용이 빙빙 돌면서 저절로 떠오르는 경지(빙빙 현상)에 다다른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고 있는 학습법의 효과이다. 최대한 간단하게 책 속 내용을 적어보았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이론을 바탕으로 이 방식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고, 실제로 베타테스터들이 이를 실천해서 나타난 긍정적인 효과까지 보여주고 있다.



일단 책을 모두 읽은 시점에서, 내가 직접 여기에 있는 내용들을 실제로 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이게 정말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아니, 실제로 경험을 토대로 했으니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하루 10분이면 충분해!' 내지는 '하루 한 문장이면 된다!'에 비하면 이 책은 보다 실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많은 책에서 강조했던 어린 아이가 모국어를 익히듯 하는 방식은 성인에게는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성인 자신이 가진 지식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도 확실히 맨땅에 헤딩하듯이 '들릴 때까지 들으세요!' 하는 것보다는 들이는 노력도 줄어들고 보다 쉽게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정확한 효과는 실천을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여태 읽은 책들 중에서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성인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방식을 제시하는 책'이었던 것 같다. 다만 책 속에서 수차례 언급한, 저자가 직접 개발한 효율적인 학습 앱은 현재 '도널드 트럼프'의 연설문만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아쉽다.




사실 영어훈련법에 대해 쓰인 책인데 같은 방식으로 저자가 한 달 만에 중국어 신HSK 5급에 합격했고, 심지어 같은 방법으로 온가족이 이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을 보며 어떤 엄청난 방법이길래! 하고 혹해서 읽었는데 결국 단숨에 영어를 잘 하는 방법은 없지만 보다 학습자의 특성에 맞는 방법으로 노력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영어와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단기간에 나의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서 영어 정복에 도전해보겠다!! 하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