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 - 내 것이 아닌 아이
애슐리 오드레인 지음, 박현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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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블라이스)'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임신으로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임신 기간 중에는 몹시 힘들었고, 남편은 끊임없이 '당신은 좋은 엄마가 될 거야' 라고 말해줬지만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나는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 후 딸 '바이올렛'이 태어났고, 나는 내 딸을 사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아이 역시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나는 둘째 아들인 '샘'을 출산했다. 바이올렛과는 달리 너무도 사랑스러운, 내 삶의 빛과 같은 샘. 나는 처음으로 아이를 사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이들과 외출을 했던 어느 날, 바이올렛은 내 눈 앞에서 샘이 탄 유모차를 차도로 밀어버렸고, 나는 샘을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로 내 인생은 지옥으로 돌변했다.




이전에 당신은 나를 한 사람으로서 신경 써줬어. 내 행복, 내가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들에 신경 썼지. 이제 나는 서비스 공급자였어. 당신은 나를 여자로 보지 않았지. 나는 그저 당신 아이의 엄마일 뿐이었어.



소설은 오로지 화자인 '블라이스'가 자신의 남편 '폭스'에게 하는 이야기로만 전개가 된다.(중간중간 블라이스의 엄마인 '세실리아'를 화자로 하는 과거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일단 블라이스는 청자를 자신의 남편으로 설정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게 폭스에게 보내는 편지인지, 아니면 우리가 흔히 일기장에 이름을 붙이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적어나가는 글인지 독자는 구분할 수가 없다. 블라이스가 하는 이야기가 정말로 자신의 남편이 들어줬으면 하는 것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다. 그저 다른 누구의 시선도 아니고, 다른 누구의 생각도 알 수가 없는 채, 오로지 블라이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든 것들을 읽어내려가게 된다. 그렇기에 이 모든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지고 있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은 오로지 '여성'만이 할 수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해, 아니 이러한 과정이 없더라도 여성에게 '모성'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과거에는 더더욱 그랬을 테고) 어머니의 모성을 경험하지 못했던 블라이스는 자신 역시 모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첫째 바이올렛이 사랑스럽지 않고,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고, 그녀가 자신을 보는 시선에서도 애정을 느낄 수 없어 점점 아이를 키우는 삶 자체가 힘겹게 느껴진다. 밤낮으로 오로지 아이에게 온 신경을 기울여야 하고, 한밤중에도 아이가 울면 달려가야 하고, 내가 하던 일에 조금도 집중할 수 없고, 자신의 남편마저 자신을 오로지 아이의 엄마로 보는 듯한 느낌에 자신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주변의 엄마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를 보면 힘이 난다고 하는데 블라이스는 아이를 봐도 힘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듯한 바이올렛을 보면 미움이 더 커질 뿐이다. 그리고 바이올렛이 샘이 탄 유모차를 차도로 밀어 샘이 사망하면서 비극은 극에 달하게 된다.



소설 [푸시]는 오로지 블라이스의 이야기로만 전개되면서 읽는 내내 이 이야기의 진실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첫 번째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블라이스가 딸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고, 딸의 행동을 오해해서 이 모든 상황을 머릿 속에서 만들어 냈을 경우, 두 번째는 실제로 딸이 블라이스의 생각과 같은 아이였을 경우이다. 어느 쪽을 상상했든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강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내내 전자를 예상했다 어느 순간 후자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만약 첫째가 아들이었다면 블라이스의 삶이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첫째 딸을 사랑할 수 없었던 블라이스는 둘째 아들에게는 맹목적인 사랑을 보인다. 고전에서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나 엘렉트라 컴플렉스 등-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딸은 자신의 어머니를 경쟁 상대로, 넘어야 할 벽으로 보는 일이 흔히 보였던 것처럼 우연히 첫째가 딸이었기 때문에 비극이 심화된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생각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 이야기로 변모할 수 있는 게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제목인 '푸시'가 실로 소설의 내용과 어울리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덧붙여서 -뭘 이렇게 자꾸 더해나가는지 모르겠지만ㅋ- 이 소설에서 가장 섬뜩했던 것은 단언컨대 표지이다. 책을 1/3 가량 읽었을 무렵, 자야겠다 싶어 불을 끄고 어두컴컴해진 방에서 약간 새어들어오는 불빛에 비친 책표지를 봤을 때 소리를 지를 뻔했다. 두 사람이 그려져 있던 표지는 어디로 가고 어둠 속에 떠오른 것은 검은 색 '자궁'이었던 것이다. 표지 역시 제목이나 내용처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쓰다 보니 길어지고 말았는데.. 미혼인 나에게 '모성'은 아직은 어려운 부분이 많은 개념(?)이다. 길을 가다 아이를 보면 귀엽다고 느껴지는 것과 내가 낳은 아이가 귀엽다고 느껴지는 것에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찌 보면 임신과 출산을 여성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말하고, 어머니는 아이를 무조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어머니라면 당연히 자신의 모든 일상을 포기하고라도 아이를 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자꾸만 '완벽한 모성'에의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지. 술술 읽히는 가독성 좋은 책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또 그만큼 섬뜩했던, 앞으로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도 숱하게 생각날 것만 같은 그런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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