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왕국 백제를 찾아서 : 공주, 부여 편 - 700년의 찬란하고도 슬픈 역사 고대 왕국 백제를 찾아서
백제문화기획 지음, 이상규 그림 / 아카넷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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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사 정리후 웅진 사비로 체험학습까지] 





얼마전 백제의 역사가 담긴 공주와 부여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가 아픈 바람에 가지 못해서 너무 아쉬움이 컸다. 이미 다녀온 곳이기는 하나 가볼 때마다 백제의 숨결이 새롭게 와닿는 장소라서 좀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실크로드 시리즈로 관심을 갖고 있던 아카넷주니어에서 이번에는 700년의 찬란하고도 슬픈 역사를 품고 있는 백제에 대한 책이 나왔다. 처음 제목을 보고는 공주와 부여편이라고 해서 이쪽의 역사만 다루는가 했는데 목차를 보니 한성백제, 웅진백제, 사비백제의 역사를 대략적으로 정리할 해준 다음 체험학습장소로 공주와 부여를 택해서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백제 유적지와 유물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 것이었다.


한셩백제 부분의 체험학습 가이드가 없어서 아쉽지만 대신 공주와 부여의 체험학습 장소에 대해서 좀더 세세한 많은 양을 다루고 있어서 그점은 마음에 든다. 공주와 부여에서 어떤 코스로 어디를 답사하는 것이 좋은지 대략적 그림으로 코스를 잡아주고 있다.



웅진백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공주를 찾아가면 꼭 봐야 할 곳이 웅진천도지인 공주산성과 무령왕릉, 그리고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공주박물관이다. 올 봄에 공주산성에 다녀와서 그런지 책을 보면서 기억이 새록새록 돋았다.
공주산성을 돌면서는 "왜 이런 산에 도읍을 정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위례성을 고구려에 점령당한 후 쫓기듯 이곳으로 왔기에 모든 조건이 좋은 터를 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고구려를 방어하려는 목적이 가장 강한 듯한 공주산성, 이곳에서 왕의 입지는 너무도 작았고 드센 귀족세력 때문에 왕이 암살되는 사건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왕권에 힘을 실어준 이가 있으니 바로 무령왕이다. 고구려나 백제의 능은 거의 일제감정기 때 도굴되고 남아 있는 것이 없으나 무령왕릉은 미처 드러나지 않았기에 지금 우리에게 남겨졌다고 한다.

무령왕릉의 내부를 찍은 사진이 책에 실려있다. 남중국의 영향을 받아 당시의 백제 무덤양식과는 사뭇 다른 양식의 무덤이다. 벽돌 하나하나의 모양새도 특이하고 무덤 안에 넣어둔 등잔이 산소를 제거해서 무덤의 진공상태를 유지하게 했다는 이야기에 새삼 놀라기도 한다.

백제의 무령왕릉이 유명한 것은 삼국의 릉은 대개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데 이 능에서는 묘지석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누구의 것인지 명확하기에 역사적으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 묘지석과 매지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대충 넘기던 아이들이 좀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산수문양의 벽돌에서 백제의 도교사상을 엿보았다고 하지만 난 이 백제의 은잔에 세겨진 산수문양이 더욱 아름다운 듯하다.

공주박물관에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살피면서 꼭 눈여겨 봐야 할 것이 바로 이 은팔찌이다. 은팔찌 안쪽에 다리라는 장인이 왕비를 위해 만들었다는 문구가 있기에 당시의 백제 장인에 대한 인지도도 알수 있다고 한다.

공주를 본 다음에는 다음 부여로 출발~ 부여는 공주와 달리 계획적으로 만든 도시였다. 그러니 웅진천도때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부여에서 가장 먼저 가볼 곳은 부소산성이다. 이곳을 오르면서 당시 백제인들의 토성을 쌓는 판축기법에 대해서도 알 수 있지만 무엇보다 높은 곳에서 한 눈에 부여시내를 내려다 봐야 한다. 한눈에 보이는 부소산성에서 보는 부여는 정말 반듯반듯한 계획도시임을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부소산성의 낙화암을 끝으로 고란사를 거쳐 선착장에서 황포돗배를 타고 백마강을 둘러보는 것이 부여체험의 백미이기도 하다. 금강의 줄기 중 이곳에서만 백마강이라고 불리는 유래에 대해서는 책에서 자세히 배우게 되었다. 대개의 왕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백제인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의자왕의 아버지였던 백제의 무왕이 용이 되어 지킨다는 것을 알고 소동방이 용이 좋아하는 백마고기로 유인해서 용의 기운을 몰아냈다고 하는 조룡대의 모습이다. 조룡대에 얽힌 이 이야기는 우리측보다는 당시 나당연합을 해왔던 당나라 입장에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듯싶다.

부여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것 중의 하나는 바로 금동대향로이다. 백제예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이 향로는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시 진흙속에 있었기에 지금과 같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책에서 관심있게 보았던 또 한가지는 탑의 변천사이다. 중국은 흙이 많아 전탑이 많고 일본은 나무가 많아 목탑이 그리고 우리는 돌이 많아 석탑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옮겨가는 단계를 보여준 다음 자료가 도움이 된다.

부여 평지 한가운데 위치한 정림사라는 절과 그곳에 웅장하게 서 있는 정림사지 5층석탑은 어떤 의미였을까? 정림사지 석탑은 석탑이면서도 목탑의 양식을 취하고 있어 아름답다. 직접 가까이에서 보면 사진과는 달리 굉장히 웅장한 맛이 느껴지는 석탑이기도 하다. 이 석탑에 새겨진 소동방의 전승문구 때문에 한동안 소동방이 세웠다는 오명을 안기도 했지만 이 탑은 백제인이 만든 위용있는 탑이다.



책 한권을 읽고 나면 백제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공주와 부여의 체험을 염두하면서 그곳에서 볼 것, 의미 등을 다루었기 때문에 방학을 이용해서 아이들과 1박2일 정도 계획을 잡아 탐방을 가면 정말 좋겠다.
아쉬움이 있다면 보충설명을 하는 노란 박스의 자료에서 도움이 되는 것도 있지만 아쉬운 자료도 몇몇 보인다. 보충설명 자료를 좀더 보강하고 편집의 세련미를 더하면서 아이들 눈높이에서 좀더 보기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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