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서 - 250년 동안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침묵론의 대표 고전 arte(아르테) 에쎄 시리즈 3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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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나쁜 말일수록 문에 가장 가까이 있기 마련이고,

좋은 말들에 섞여 밖으로 튀어나오기 일쑤다.

따라서 그 문의 열쇠는 지혜로 관리해야 하며, 필요할 때마다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가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말과 관련된 속담들이 여러 개 생각났다.

침묵이 금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말 한마디 천 냥 빚 갚는다.

사실 침묵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면 다들 그렇겠지만 말실수가 떠오른다. 굳이 하지 않았어도 되는 말을 해서 분위기를 망치거나, 사이가 안 좋아진 경우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얼마 전 친한 지인에게 장난삼아 말을 건네고 후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말을 하면 기분이 안 좋겠다는 생각을 해놓고도 그 말을 건넨 이유를 굳이 따져보자면, 친분을 과시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물론 그와 관련해서 지인에게 사과를 전했고, 지인은 쿨하게 괜찮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있다.)

너무 잘 아는 이야기겠지만(이 책에도 등장한다.) 하나님이 사람의 귀는 두 개, 입을 한 개만 만든 이유는 말은 적게 하고 많이 들으라는 뜻이라는 말에 나 또한 공감한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게 침묵이 아닐까 싶다. 책 안에는 다양한 침묵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그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단다.

우선 책에서 말하는 침묵의 범주에는 단연 말뿐 아니라 글도 포함된다. 글이라고 해서 서평처럼 긴 문장을 뱉어내는 글만 뜻하는 게 아니라, 기사에 다는 댓글이나 연예인에게 다는 악플도 글에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말과 글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에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모습들 혹은 익명 속에 갇혀서 누리지 못한 것을 향해 반대로 비난을 내뱉는 일종의 부러움이 근원에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단지 침묵. 말과 글을 내뱉지 않는 것이 침묵이 아니라, 꼭 필요한 상황에 적절하게 조정된 말을 내뱉는 것이 진정한 침묵이라는 것이다. 막상 말을 해야 할 때 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용기 없는 사람의 행동이고 그 또한 다른 방식으로 왜곡된 침묵이라 할 수 있겠다.

첫 번째, 침묵은 언어를 자제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언어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두 번째, 침묵은 단순히 입을 닫는 것을 넘어 그 자체가 말과는 다른 어떤 표현 양식을 의미한다.

책 안에는 젊은이와 노인의 침묵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또한 권세가들과 민초들의 침묵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속 빈 강정 같은 얕은 지식으로 대단한 지식을 가진 척 뽐내지 말고, 세상을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얼마 전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는 말이 250년 전에도 유효했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온다.

무작정 입을 닫기보다는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지혜 있는 침묵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사실.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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