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다는 것과 늙어간다는 것 - 마음의 평정에 이르는 10가지 길
빌헬름 슈미트 지음, 장영태 옮김 / 책세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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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때부터인가 12월 31일과 1월1일에 특별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 여느때와 다름 없는 오늘이고 내일로 느껴진다. 오히려 나이가 한 살 늘어났다는 것이 거북스럽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에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면서 연말 연시의 흥분은 사라졌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 

  독일 철학자인 빌헬름 슈미트는 나이듬과 늙어감을 우리가 어떻게 맞이해야하는지 담담하면서도 실제적으로 얘기한다. 그 핵심은 "마음의 평안"이다. 노년세대가 아니더라도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은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하루 하루 자신의 능력이 줄어들고, 육체가 쇠약해져가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중요해 진다. 습관, 행복, 고통, 접촉, 사랑, 사색 등 저자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제시하는 구체적 방법들은 소위 "뻔"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진실이기에 거부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노년세대로 취급되며 살아가야할 수십년을 나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적어도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얻고 주면서 살아가길 기도해 본다.  

사랑과 우정으로 맺은 관계는 살아가는 데 있어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한 가장 아름다운 가능성들을 제공한다. 그러한 관계를 통해 정신적이고, 영적이며, 육체적인 측면에서 균형 있게 접촉하고 접촉될 수 있다

시간적 한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삶으로부터 긍정할 만한 가치가 담긴 무언가를 되도록 많이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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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감옥 - 생각을 통제하는 거대한 힘
니콜라스 카 지음, 이진원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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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자들은 왜 그렇게 차를 좋아해 ?" 와이프가 나에게 자주 묻는다. 늘 새로운 차의 정보를 찾아보고, 새차가 필요하기 몇 년전부터 차를 고른다. 왜 그럴까? 나 스스로도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건 차를 운전하기 때문이야." 남자들은 어릴 때 부터 아버지 혹은 버스, 택시 기사가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다. 그리고 나도 빨리 차를 운전해 봤으면 하고 되뇌인다. 그런 과정을 거쳐 차를 운전하게 되면 차와 나 사이에는 강한 유대감이 형성된다. 차를 운전하며 차와 내가 한 몸이 된 듯한 느낌을 갖게되면 그것은 더 이상 나의 외부가 아니다. 

  그렇게 사람은 도구를 사용해 왔고, 그 도구를 '이용해서' 더 많은 편리함을 누려왔다. 도구가 점점 발달할 수록 그 편리함은 커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편리함과 효율성을 극대화 하기 위해 인간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도구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도구를 다루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제거해서 더 높은 수준의 정확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다. 인간을 보조해서 생산 효율을 높여주던 기계들은 이제 인간의 간섭 없이, 지치지도 않고 24시간 돌아간다. 인간을 도와주던 기계는 이제 인간이 조금의 도움만 주면 그 기능을 훌륭히 수행해 낸다. 주도권이 인간에게서 기계로, 소프트웨어로 넘어간 것이다. 니콜라스 카는 이러한 현상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인간이 단순한 기계/소프트웨어의 조력자로 변하는 순간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 그리고 그것은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자동화는 우리를 부정적인 피드백으로부터 고립시킴으로써 경계심을 갖고 계속해서 주변 상황을 헤아리기 힘들게 만든다. 그 결과 우리는 더욱더 세상에 무관심해진다."


고도화된 자동화는 결국 인간을 퇴화시킬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 그럴까?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미 많은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친한 친구나 집 전화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면서 방향감각을 잃은지 오래다. 이제는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수년 간 지나다닌 길에서 헤멜지도 모른다. 인류 역사를 통해 기술은 지속적으로 진보해 왔다. 그러나 현재가 가장 살기 좋은 시대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는 없다. 인간이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수준에 도달한 자동화는 우리가 영화에서나 보던 끔찍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 허약하고 추한 육체로 어두운 방에 누워 젊고 멋진 로보트를 조정하며 살아갈 날들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한 상상이 현실이 되기 전에 우리는 우리 삶에 기술을 받아 들이는 일에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무심코 새로운 기술에 열광해 왔던 스스로를 반성해 본다. 더 빠르고, 더 강력하고, 더 새로운 도구가 내 삶을 진정 더 나아지게 하는가 묻고 또 물어야 할 때이다. 


컴퓨터 자동화는 우리에게 생성효과와 반대되는 퇴화효과(degeneration effect)를 일으킨다.

도보 이동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방식이다. 도보 여행자는 주변 환경과 그 느낌과 특징에 심취하고 동화되면서 행동과 지각이 긴밀하게 결합된 움직임을 경험한다.

도덕적 선택 역시 자동화하지 않고서는 복잡한 인간의 활동들을 자동화 하는 건 불가능하다

컴퓨터 스크린이라는 유리감옥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우리 몸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유롭게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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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해가 저물어 간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라는 노래가사가 가슴에 절절히 와닿기 시작한지도 꽤 오래되었건만 12월 31일이 어느 때부터인가 가슴 한켠을 무겁게 한다. 연말이 설레이고 마냥 즐겁기만 했던 때가 있었다. 12월 31일이면 어디건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 살아온 세월의 무게만큼 내 마음은 점점 더 가라 앉는다. 

 2014년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도 내 개인의 삶에도. 아직도 내 책상에는 '잊지 말자 0416'이라고 쓰여진 검정 스티커가 붙어있다.  점심을 먹다가 TV화면으로 본 세월호의 모습이 그렇게 비참한 이야기로 끝날 줄은...잊지 않아야 할텐데. 서로 돌아보고 반성하고 더 나아져야할 텐데. 너무 빨리 잊으면 안되는데. 14년은 세월호와 내 개인의 새출발로 기억될 날들이다. 커다란 결심을 하였다. 따뜻한 부모님 품에 늘 머물다가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어린 아이처럼 그런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꼭 해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도전해야 할 것이었다. 

 2014년은 그 어떤 1년보다 특별했고 가슴 아팠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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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연히 영화 국제 시장을 보게 되었다. 넘쳐나는 광고 덕분에 한번 봐야 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보게 될줄은 몰랐다. 


 6.25때 아버지 그리고 막내 동생 막순이와 헤어져 어머니와 두 동생의 실질적 가장으로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동생들을 위해 독일 광부로 자원해서 죽도록 일했고, 또 다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인 베트남에 가야만 했던..그렇게 "니가 이제 가장인기라." 아버지와 헤어질 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이다. 영화 곳곳에는 감정에 북받치는 장면들과 웃음을 머금게 하는 장면들이 고루 배치되어 있다. 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먹먹했던 가슴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뭔가 틀에 박힌 공식대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으로 순식간에 잊혀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로 가득찬 영화는 이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사건들을 차례대로 배치하면서 공감을 끌어내려 하지만 그 의도가 너무 쉽게 드러나보여 마음이 편치 만은 않았다. 


  다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 내 머리속에 스친 것은 나의 아이들이었다. 나는 얼마나 헌신적인 가장인가? 나의 아이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 아버지 세대가 짊어 져야했던 무게 보다는 덜 할지 모르지만, 내 세대가 감당해야하는 무게는 그 나름대로 묵직하지 않은가? 그리고 또, 내 아이들도 그 아이들이 살아내야만 하는 날들의 무게를 이기며 살아가겠지. 오래전 읽었던 인터뷰 기사가 생각났다. 기자는 다독으로 유명하신 원로 비평가 김윤식 교수님께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데 못 마땅하지 않냐고 물었다.

"전혀, 우리에게는 우리의 필연이, 그들에게는 그들의 필연이 있소. 우리는 읽는 게 양식이었지만, 

 요즘 사람들은 다른 양식이 있겠지. 뒷방 늙은이가 관여하고 가르치는 것 염치없는 일. 나는 다만 

 내 일을 할뿐이오." 


우리 아버지 세대에는 그럴만한 필연이 또 나의 세대에는 나의 필연이, 내 아이들이 사는 날들에는 그 아이들 만이 필연이 있을 것이다. 그저 내 아이들이 더 나은 날들을 살아가길 바래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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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겨울을 싫어한다. 날씨가 추워서다.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하고, 실내에 더 오래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계절이다. 그래서 나는 겨울보다 여름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더위로 받는 고통과 추위로 받는 고통은 많이 다르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서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이다. 노점에, 백화점 입구 주차장에, 시장에, 공사장에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일하고 있다. 오늘은 올 겨울들어 가장 추웠다. 세찬 바람이 얼굴을 스칠 때마다 얼른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오늘밤 기온이 더 내려간다고 한다. 추운 날들이 어서 지나고, 따스한 봄이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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