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연히 영화 국제 시장을 보게 되었다. 넘쳐나는 광고 덕분에 한번 봐야 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보게 될줄은 몰랐다.
6.25때 아버지 그리고 막내 동생 막순이와 헤어져 어머니와 두 동생의 실질적 가장으로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동생들을 위해 독일 광부로 자원해서 죽도록 일했고, 또 다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인 베트남에 가야만 했던..그렇게 "니가 이제 가장인기라." 아버지와 헤어질 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이다. 영화 곳곳에는 감정에 북받치는 장면들과 웃음을 머금게 하는 장면들이 고루 배치되어 있다. 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먹먹했던 가슴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뭔가 틀에 박힌 공식대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으로 순식간에 잊혀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로 가득찬 영화는 이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사건들을 차례대로 배치하면서 공감을 끌어내려 하지만 그 의도가 너무 쉽게 드러나보여 마음이 편치 만은 않았다.
다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 내 머리속에 스친 것은 나의 아이들이었다. 나는 얼마나 헌신적인 가장인가? 나의 아이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 아버지 세대가 짊어 져야했던 무게 보다는 덜 할지 모르지만, 내 세대가 감당해야하는 무게는 그 나름대로 묵직하지 않은가? 그리고 또, 내 아이들도 그 아이들이 살아내야만 하는 날들의 무게를 이기며 살아가겠지. 오래전 읽었던 인터뷰 기사가 생각났다. 기자는 다독으로 유명하신 원로 비평가 김윤식 교수님께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데 못 마땅하지 않냐고 물었다.
"전혀, 우리에게는 우리의 필연이, 그들에게는 그들의 필연이 있소. 우리는 읽는 게 양식이었지만,
요즘 사람들은 다른 양식이 있겠지. 뒷방 늙은이가 관여하고 가르치는 것 염치없는 일. 나는 다만
내 일을 할뿐이오."
우리 아버지 세대에는 그럴만한 필연이 또 나의 세대에는 나의 필연이, 내 아이들이 사는 날들에는 그 아이들 만이 필연이 있을 것이다. 그저 내 아이들이 더 나은 날들을 살아가길 바래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