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극장에서 오래 전에 종영한 좋은 영화를 집에서 혼자 보는 것도 꽤 괜찮은 경험이다. '사피엔스'는 내게 극장에서 보지 못한 좋은 영화 같은 책이었다 . 주변 많은 사람들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이미 읽었다고 했다. '사피엔스'의 흥미로움에 대해서 내게 여러 사람들이 들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쉽게 이 책을 펼칠 수 없었다. 두껍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다. 어느 한가한 일요일 저녁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이 책 저 책을 살피다 더 이상 내 눈을 사로잡는 책표지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 앞을 가로 막은 책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였다. 늘 그렇듯이 저자의 이력을 살폈다. 이스라엘 태생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히브리대학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 두꺼운 책을 써 낼만한 컨텐츠를 갖춘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책의 제목이 전공과는 멀어보이는 사피엔스다. 사피엔스라는 단어에서는 생물학적 뉘앙스가 강하게 다가온다. 왜 중세전쟁사를 전공한 역사학자가 '사피엔스'란 말인가 ?  

사피엔스라는 단어에서 굵고 긴 푸른 줄기가 느껴지고 세찬 흐름이 생각난다. 최초의 인류로 여겨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시작해서 직립보행인 호모 이렉투스, 도구의 인간 호모 파베르, 그리고 네안데르탈인까지, 현생 인간을 가리키는 사피엔스라는 단어에는 진화론적 관점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진화의 연속선 상에서 사피엔스 이후를 생각하게 한다.  


 사피엔스는 재미있다. 책을 펼치고 나서 줄곧 다음번 이야기를 기대하며 읽었다. 번역자의 수고인지, 유발 하라리 교수의 특징인지, 문장도 명징해서 읽기가 좋았다. 네안데르탈인이 아닌 사피엔스가 지구를 장악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통해 풀어냈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P44)


인지혁명을 통해 사피엔스는 정보전달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었다.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은 사피엔스가 네안델탈인을 이기는 결정적 차이를 만들었다. 수렵 채집 활동을 통해 살아오던 사피엔스는 농업혁명을 통해 또 한번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정착생활, 계급의 출현과 같은 농업혁명의  진부한 면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농업혁명이 과연 수렵 채집 활동으로 살아가던 사피엔스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질문하며 농업혁명이 사피엔스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평균적인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P124)


유발 하라리가 생각한 농업혁명의 결과는 더 긴 노동 시간과 더 질 낮은 식사(고기/열매 등 다양한 섭취에서 농산물 중심으로 변화) 그리고 극소수 엘리트 지배층의 출현이었다. 


 농업혁명을 통한 지배층의 출현으로 인류는 '거대한 통합'을 향해서 나아가게 된다. 인간 집단 생활의 규모가 점점 커져갔다. 국가가 출현하고 엄청난 영토를 가지는 제국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제국이 나타나면서 인류는 최초로 보편적 질서를 만들어 내었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 (P246)


 거대한 통합을 이뤄낸 사피엔스는 과학혁명을 통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과학혁명은 이전의 전통적인 지식과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다르다고 유발 하라리는 주장한다. 1. 무지에 대한 인정, 2. 관찰과 수학 중심, 3 새 힘의 획득. 즉 기존의 지식도 새로운 발견을 통해 바뀔 수 있음을 인정하며 과학과 수학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며, 새로운 이론을 창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를 통해 새로운 힘, '기술'을 획득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사회질서를 지탱해준 요인 중 하나는 기술과 과학적 연구방법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믿음의 확산이었다. 이것은 절대진리에 대한 믿음을 어느 정도 대체했다."(P361)


 과학은 제국의 비젼과 결합을 통해 제국의 식민지 확장에 기여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 자본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 발전해 나갔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미래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과연 사피엔스 이후에는 누가 지구의 주인이 될 것인가? 인공지능을 포함한 새로운 종의 출현 가능성을 언급한다. 사피엔스가 인류의 궁극적인 최후의 종이 아닐 수 있다는 암시를 던져준다. 


 사피엔스는 흥미롭다. 우리가 접해보지 못했던 근본적인 질문과 그 답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사피엔스를 길고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한 때 지구를 지배했던 하나의 종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피엔스'는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기존 주류 역사학자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인류의 근본적이고 거대한 질문(Big Question)에 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왜 인간(사피엔스)이 지구의 주인이 되었으며, 그 과정이 어떠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연구의 자료가 부족하여 합리적 추론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그럴듯한 답을 제시하였다. 그것이 바로 '사피엔스'다.    


 물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많은 논란 거리를 지니고 있다. 그 중 주요한 세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인지 혁명의 원인에 대한 묘사이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P44)

인지혁명의 원인은 '우연'으로 설명되고 있다. 사피엔스가 다른 모든 종을 이기고 지구의 제왕의 자리에 오르는 시발점이 되는 인지 혁명의 원인은 '우연히'이다. 원인을 명확하게 밝힐 수 없는 상황에서 인지 혁명 그 자체에 대한 의구심은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유발 하라리는 인지혁명의 원인을 밝히는 연구에서 기존의 희미한 이론보다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둘째, 유발 하라리가 취하고 있는 '생물학적 관점'이다. 사피엔스라는 단어는 유발 하라리가 생물학적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피엔스' 전반에 걸쳐 인간은 철저하게 생물학적 측면으로 분석되고 묘사되며, 정신과 영혼, 종교에 관한 문제는 더 나은 협력을 위해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신화'로 치부된다. 이는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인간을 유전자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생존 기계'로 묘사한 것 만큼이나 많은 논란을 일으킨다. 아직도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서, 특히 정신과 영혼 심지어 생물학적 조직인 뇌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셋째, 오늘날의 사람들이 우리의 선조들보다 행복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유발하라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지난 2세기 동안 물질적 조건이 크게 개선된 효과가 가족과 공동체의 붕괴로 상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의 평균적 사람이 1800년보다 

더 행복하지 않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P539)


 동조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인간의 행복은 측정의 복잡성으로 인해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물질적 조건의 개선으로 인해 늘어난 행복의 총량과 가족과 공동체의 붕괴로 줄어든 행복의 총량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인간의 행복 총량을 늘려 준 다른 원인들도 많이 존재한다. 늘어난 수명, 범죄로부터 보호되는 비교적 안전한 생활, 유발 하라리도 언급한 전쟁의 감소, 다양한 오락거리의 증가 등이 있다. 제러미 밴담이 공리주의를 내세웠을 때에도 행복의 측정 방법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사피엔스가 계속해서 무조건적으로 진보하고 있다는 믿음이 틀릴 수 있다. 그러나 퇴보의 가능성을 논하되, 오늘날의 인류가 과거보다 불행하다는 결론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사피엔스'를 읽는 내내 즐거웠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비판적 읽기를 가능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명확한 답이 없는 문제를 들고 나와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유발 하라리는 대담하다. 그래서 '사피엔스'는 힘이있다. 고전이 고전이 되는 이유는 지속적으로 많은 이야기와 논쟁 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사피엔스' 오랫동안 사람들이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책이다. 유발 하라리 덕분에 짧지 않은 책을 정독할 수 있었다. 그에게 감사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스푼의시간 2018-08-2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께감과 방대한 양에 읽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음에도 아직 읽기를 도전하지 못했는데 리뷰를 보면서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